김주영-1976년

by 백건우

1976년

가족들과 서울로 올라와 면목동에 자리 잡음. 경향신문사로부터 연재소설 의뢰를 받았고 거기에서 나오는 고정 수입으로 생활함. 이때 그가 집필한 연재소설이 첫 장편이 되는 '목마 위의 여자'. 이즈음 그는 주로 이문구, 김원일, 정규웅, 이근배 등과 교류함. 또한 중편 '여자를 찾습니다'가 영화화되는 것을 계기로 영화감독 하길종 등과 교류하기도 함. 조해일, 조선작, 황석영, 이문구, 이청준, 박태순, 송영 등의 글을 즐겨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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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8일 경향신문에는 김주영 작가가 영화 ’여자를 찾습니다‘에 출연한다는 기사가 났다.

작가 김주영 씨가 하길종 감독이 연출하는 세태 풍자영화 ’여자를 찾습니다‘에 출연한다. 10신에 달하는 조연급 출연인데 영화 속에서의 김씨의 역할은 세련된 플레이보이. ’여자를 찾습니다‘는 김씨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하는 것으로 소설에서 자기가 묘사해 놓은 인물을 원작자가 직접 실연하는 것이 된다. 극중에서의 플레이보이(김주영 분)는 불건전한 처녀도둑. 뭇여성으로부터 원성을 사는 1미터80의 미남형 인물인데 김씨의 용모와 신장이 플레이보이에 맞춘 닮은꼴(?)이어서 연출자로부터 출연권유를 받았다는 것.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하감독의 끈질긴 설득에 못이겨 팔자에 없는 배우노릇을 하게 됐다는 것이 김씨의 얘기. 수락은 했으나 카메라 앞에 설 생각을 하니 지금부터 떨린다고 엄살. 한편 하감독도 이 영화에 직접 출연할 예정이다. 하감독 역시 작품 속에서 여대생 애인이 자기 이미지와 비슷해서 그 배역 선정을 자기로 정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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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7일 경향신문 ’문화시평‘에 문학평론가 구중서가 ’70년대 소설의 반성‘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에 김주영 작가도 언급되어 있다.

이른바 ’70년대 작가‘라는 말이 요즈음 유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칭은 문단의 신예들에 대한 칭송의 뜻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의 뜻으로 쓰이는 것 같다. 여기에서 대상이 되는 작가는 더 엄밀히 말해서 ’75년대 작가‘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70년대 초에 황석영의 ’객지‘ 이문구의 ’장한몽‘ 신상웅의 ’심야의 정담‘을 비롯하여 신예급이 전개한 작업은 주제의식의 넓은 폭과 작가적 사명감에 따른 성실성으로 인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소설들은 오늘날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과 열망을 예리하고 깊이 있게 파헤쳐 알려주었으며 우리의 역사가 지향해야 할 미래에 대한 관심까지 보여 준 모처럼의 성과였다. 그리고 이 소설들은 75년 무렵에 와서 사회를 주름잡기 시작한 또다른 신예급의 소설들과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75년대 작가의 성격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이들은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많이 쓰고 있다. 예를 들면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경아)‘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 ’여자 줍기‘ ’미쓰양의 모헙‘ 조해일의 ’겨울여자‘ 김주영의 ’여자를 찾습니다‘ 등이 있다. 둘째 이들은 신문 연재소설면에 일제히 진출하여 연재소설 작가의 연령을 20대 내지 30대가 지배적이게 하는 이변을 가져왔다. 셋째 이들은 작가라기보다 연예계의 스타와 비슷하게 인상지어져 있다. 이 요소들을 종합해 볼 때 이들 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여 다시 다음과 같은 견해가 가해질 수 있다.

첫째, 이들은 모두 문단에서 신인 작가로서의 재질을 인정받았다. 둘째, 두세편의 본격적 작품을 완성하기도 전에 통속적인 성격의 연재 지면에 너무 빨리 진출했다. 셋째, 결과적으로 이 젊은 작가들이 돈을 더 벌 것이다. 상업주의 사회에 살면서 돈에 대해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인간은 각기 사회적 직능에 따른 성격과 사명을 지니고 있다. 경제성을 올리자는 자체가 목적이라면 시장에서 순수하게 장사를 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라는 견해가 생기게 된다.

넷째, 한국현대문학의 한 전초세대가 일제히 통속화의 길로 내닫는 경주에 열중하게 된 경향을 역사의 발전과 사회의 올바른 완성이라는 과제에 연관하여 생각할 때 깊은 실망을 맛보게 된다는 점이다.

여기에 첨가해서 언급해야 될 것은 76년도 신춘문예를 통해 나온 신인들의 소설마저 그 분위기가 75년대적 풍조에 많이 물들어 있는 것 같다는 사실이다. (중략) 그러면 75년대적 여자소설류의 문제점은 과연 무엇인지를 더 진전시켜 생각해보아야 되겠다. 이 소설들은 대체로 술집과 창가를 비롯하여 사회 저변지대의 떠돌이 젊은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그리하여 언제부터, 그리고 오 하눅의 젊은 딸들이 이처럼 뿌리뽑힌 인생이 되었는가를 경각케 하는 점도 있다.

그러나 상처받은 인생지대의 비애와 악을 그릴 때 작가는 작품의 전체적 구도를 생각해야 한다. 때로는 악이 스스로 즐거운 듯 번성하는 듯한 장면도 그릴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장면은 작품 전체 속에서 필요한 부분품이어야 하며, 다만 인생을 깊이 이해하고, 인생은 어떻게 보호되어야 할 것인가를 올바로 판단하게 하는 윤리적 정신과 사회정의 향상을 위해서 그려져야 한다.

이와 같이 전체를 위한 부분, 선을 위한 악의 대비라는 완성의식이 없이 여자의 육체가 비천하게 향락되는 부분을 너무 크게 길게 그리며, 거기에다 개인적이고 소시민적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의미의 동정과 이해를 주인공에게 모으려한다면 소설은 실패하고 무가치한 퇴패화만 조장될 뿐이다. 75년대적 여자소설류의 통폐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돋까는 아니며, 예술은 윤리기준으로부터 독립된 기능과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예술과 윤리의 상이성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서로를 보완하는 원리를 지니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오늘날 우리가 생존하고 있는 상황은 사회의 폐쇄성, 기계주의적 사고, 배금주의 등으로 인해 상실된 인간 본성을 회복해야 하는 과업을 안고 있다. 이 과업은 우리의 문학이 가는 길에 놓여져 있다. 그리고 퇴패주의는 이 과업을 방해하는 마취제 구실을 하게 된다. 실상 문학이 인간사회를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건전한 인간 본성을 그리는데에서도 흡족하지 못하고 인간의 생명 저 너머에 있는 영광스럽고 신비로운 빛의 세계가 더 내다보이는 것이다.

문학은 인간의 이 높은 가치세계를 그리는데만도 늘 시간과 능력이 부족한 실정에 있다. 오늘날 한국 문학의 젊은 세대는 그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여건이 불행하다하더라도, 그럴수록 가치 창조의 세계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이 있다. 이 사명감과 긍지를 동반할 때에만 한국 문학에 발전과 영예가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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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7 동아일보 신간 안내에 김주영의 소설집 ’여자를 찾습니다‘가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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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7일 동아일보에 ’쏟아져 나온 20여권의 창작집‘으로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 출간된 작품집은 김주영의 ’여자를 찾습니다‘, 이청준의 ’가면의 꿈‘ 송상옥의 ’흑색그리스도‘ 정을병의 ’화원 속의 인형들‘ 손장순의 ’공지‘ 김문수의 ’성흔‘ 조해일의 ’겨울여자‘ 홍성원의 ’주말여행‘ 윤행묵의 ’몸전체로‘ 홍석형의 ’피서지‘ 현재훈의 ’자욱한 강변‘ 최인호의 ’우리들의 시대‘ 조선작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등.(중략)

출판의 대종이 창작문예 출판임에도 불구하고 번역소설전집이나 비소설전기출판 등에 몰려서 창작문예작품이 상품적 가치를 잃고 뒷전에 밀려 있는 것이 우리 출판계의 실정이다. 그러나 출판인치고 문예작품에 향수가 없는 이가 드물고 제한된 숫자이긴 하나 수준 높은 문예작품의 독자도 엄존해 있다. 이번 15권 이상의 창작집을 모두 합산하면 3만권(권당 평균 2천부)이나 되어 독자층의 양이 적은 것이 아니다. 동화출판공사 임인규 사장은 ’잠재적 문예작품 독자가 상존해 있는데다가 작년 하반기의 경기침체로 중단됐던 제작이 신춘을 맞아 다시 계속됐고 학습참고서 사건으로 의욕을 잃은 업자들이 출판의 방향을 바꿨기 때문‘이라고 이번 문예 작품 출판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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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 경향신문 기사에 김주영 작가가 한진영화사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는 기사가 있다.

인기작가 김주영 씨는 한진영화사와 앞으로 6년 동안 그의 작품의 출판권과 영화권에 대한 전속계약을 맺었다. 요즘 ’목마 위의 여자‘로 계속 인기가 높아가고 있는 김씨는 전속보증금 3백만원에 앞으로 출판되거나 영화화하는 작품에 대해 그때그때 가격을 결정하여 받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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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3일 동아일보에 새로운 영화를 소개하고 있다.

대학가의 풍속도 ’여자를 찾습니다‘. 새로운 고급 코미디를 표방하고 만들어진 ’여자를 찾습니다‘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유머러스한 문체와 날카로운 사회풍자로 각광을 받고 있는 김주영의 동명 원작소설을 ’바보들의 행진‘으로 히트한 하길종 감독이 특유한 영상감각으로 묘사, 화면에 옮겨 놓았다. 신촌대학가가 주 무대로 거기에 펼쳐지는 젊은이들의 풍속도를 포착하느라고 빌딩 점포 때로는 하수구에까지 숨어 촬영하기도 했다는 하감독은 몽타주를 활용한 연출수법과 세미다큐멘터리적인 카메라 처리로 시정 깃든 하이 코미디를 만들었다고 자긍. ’투에이스‘의 ’참치잡이‘, ’물개의 꿈‘이 삽입곡으로 흘러나와 무드를 돋운다. 하수영, 윤미라, 김형자, 추송웅, 황해가 출연하고 신인 서나미, 송필연이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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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일 경향신문 신간소개에 김주영 소설집 ’여름사냥‘이 소개됐다. 특이한 언어구사와 예리한 풍자로 주목을 받고 있는 문제작가의 단편집으로 ’여름사냥‘ ’무동타기‘ 등 12편의 작품이 실렸다. (영풍문화사 4.6판 243면 9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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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2일 경향신문 신간소개에 꽁뜨집을 소개하고 있다.

[주머니 속의 꽁트]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젊은 작가 11인의 꽁트집으로 짧은 시간에 우리시대의 풍속과 작가의 세계를 알 수 있다. 수록작가는 김승옥, 김주영, 박완서, 송영, 이제하, 이청준, 조선작, 조해일, 최인호, 홍성원, 황석영 제씨.(열화당 신46판 237면 9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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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0일 경향신문 연재소설인 ’목마 위의 여자‘ 마지막 회가 실렸다. 모두 333회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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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은 11월 9일 경향신문 지면에서 ’목마 위의 여자‘ 연재를 마치고를 썼다.

소설을 쓰기 이전에 나는 항상 재미라는 것을 먼저 생각한다. 소설이 지녀야 할 일차적인 책임이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독자에게 재미를 부여해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이런 태도는 얼핏 내 문학수업의 중후감을 잃게하고 약간은 천덕스럽게 느껴질지는 모른다. 그러나 소설에 있어서 재미의 본질이란 어디까지나 감동에 있는 것이라 생각해볼 때 소설의 재미란 결코 무시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마 위의 여자‘를 연재하면서 나는 항상 이 점에 대해서 악전고투해 왔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이고 바탕적인 이 문제가 실은 가장 어려운 작업임을 실감했다. 두 번째로 내 자신을 괴롭히던 것은 소위 소설의 문학성과 독자의 재미를 어떻게 잘 부합시켜 나가서 어느 한편도 다치지 않고 이 연재를 끝마쳐주느냐에 있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이 점에 있어서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나 자신이나 독자의 편에서나간에 감동을 받아들이는 감성의 바탕이 굳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생활에 찌들고 무엇보다 거짓된 사랑에 너무나 많이 속아오고 있는 것이다. 남녀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헤어져 애틋한 사랑에 빠지기보다는 잠깐 달콤하고 잠시 즐거운 경양식같은 사랑이기를 우리는 원한다. 자기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남에게 속기를 원하지 않는다.

’목마 위의 여자‘를 연재하면서 내가 생각보았던게 이런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사랑하는 ’김정미‘를 통하여 도대체 사랑의 본질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가를 탐색하고 추적해보려했다. 그리고 결혼이란 것이 결코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문제같은 걸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사랑이란 것도, 결혼이란 것도 어차피 배회하는 것이며 볼을 스쳐가는 한줌의 바람이란 것이 건방지지만 나래도 내린 지엽적인 결론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병을 얻고 말았다. 이 소설을 써가면서 이 미지의 김정미라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순전히 내가 만들어 낸 여자주인공에 불과하다. 그런데 나는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된 병을 얻게 된 것이다.

다수의 독자들이 정미라는 여자에게 가벼운 저항을 느낀다는 반응을 보여왔으니 나는 일단 그런 반응을 무시해버리기로 한 것은, 정미라는 여자의 바탕이 착하다는 데 있었다. 착한 여자를 통하여 사랑의 의미를 캔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노릇이었다.

그동안 많은 독자들로부터 항의도 받았고 격려도 받았다. 나는 처음 독자들과 이 소설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볼 것을 원했었다. 그러나 배가 산으로 올라갈 공산이 컸으므로 우둔한대로 내 고집으로 밀고나가기로 맘 먹어버렸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한 여성독자가 내게 지적한 게 있었다. 이소설에 나오는 최석규란 남자의 성격이 생판 흐리멍텅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깨끗이 승복했다. 왜냐하면, 나는 최석규를 그런 인간으로 그리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우리들의 시대에는 너무나 많은 최석규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생을 적당히, 편안하게 적당히 상처 덜 받고 살고자 하는 그런 최석규가 우리들 주변에 너무나 많기 때문이었다.

1년 1개월간 이 소설이 연재되는 동안 미우나 고우나 열심히 읽어주신, 특히 많았던 여성독자들에게 참으로 감사드린다.

단편 '아내를 빌려줍니다'(창작과비평), '차력사'(한국문학), '달밤2'(대화), '옛날이야기'(한국문학), '어디가 아프십니까'(문학사상), '목마 위의 여자'(경향신문 연재).

이즈음 주로 이문구, 김원일, 김용성씨 등과 자주 만나서 술을 퍼 마심. 서울로 이주해서 자식새끼들 학교도 전입학시킴. '여자를 찾습니다'를 영화화했는데 이때 하길종씨 등과 명동의 술집을 안 간 곳이 없고 외박을 상식화시킴. 틈틈이 젊은 문인들의 소설, 시 등을 읽었음. 조해일, 조선작, 황석영, 이문구, 이청준, 박태순, 송영 등의 글들을 즐겨 읽었음.

'아내를 빌려줍니다' '차력사' '달밤2' '옛날이야기' '어디가 아프십니까' 발표.

단편 '구두 벗은 여자'를 부산일보에 연재

장편 '목마 위의 여자' 경향신문 연재 - 10월 30일 333회로 끝.B42

장편 '머저리에게 축배를'을 주간중앙에 연재(1976년 4월 18일자에서 확인)

08-05 창작집 [여름 사냥](영풍문화사), [머저리에게 축배를](한진출판사) 간행

08-28 고은, 신경림과 술자리-김주영이 술 마시자 해서 함께 술집으로 가는데 신경림을 만났다. 소주 서너 병 마셨다. 심심한 두메산골처럼 부담 없는 술판이다.

거나한 김에 조정래 만나 원고료 받았다.

유종호 최인훈과 함께 민음사에 앉아 있었다.

가락지로 내려갔다. 이문구가 어서 오라고 환영이다. 헤어진 김주영이 거기 있었다.

불역락호(不亦樂乎)아, 불역락호아. 대낮 대취. (고은 일기)

10-27 '부산일보'에 '구두 벗은 여자' 단편 연재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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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7일 경향신문 ’주말 응접실‘에서 객원기자 김주영은 김갑수 변호사와 영감 호칭을 두고 대담을 나누었다.

겨울비가 흩뿌리던 25일 하오2시경. 비는 그쳤지만 검게 웅크린 하늘은 아직도 이 도시를 덮쳐내릴 듯 무겁게 드리워져 있었다. 필자가 취재해야 할 분은 필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인 1935년에 26세의 젊은 나이로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이후 30여년간의 법관 생활 끝에 지금은 신문로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고 있는 김갑수 씨.

질척거리는 진문로 골목길을 몇 개 돌아 어떤 빌딩의 2층으로 올라갔다. 약간 어둑한 기분이 드는 조그만 사무실. 금방 장기를 두다가 일어서는 ’복덕방 영감‘처럼 김갑수 씨가 반백의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거리며 객원기자를 맞는다. 사진부의 요구대로 필자는 이 법조계의 원로와 소파에 나란히 앉는다.

이 대담의 실체가 한 마디의 호칭상의 문제 때문이라는 것에 조금은 맥빠진다는 기분이 들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잘 아시겠지만 지금 문제시 되고 있는 ’영감‘이란 마땅히 타기되어야 할 꼴불견의 호칭이 물론 사회 전반에 쓰여지고 있습니다만 특히 법조계에선 아직도 개선의 여지를 보여주지 않은 채 스스럼없이 쓰여지고 있다는 현실상의 문제와 이 호칭에 대해 별로 저항을 느끼지 않게 된 우리들 의식구조의 바탕을 캐내는 일도 정신적 부조리를 척결하는 일로 생각해 봅니다. ’영감‘ 호칭은 아무래도 우리 사회의 신분이나 계급의식과 권력에의 외경심이 얼마나 뿌리깊은 것인가를 보여주는 가장 전형적인 호칭인 것 같습니다. 특히 일제 강점기 때 정신적 주종관계를 엄격히 구획지으려했던 그들의 잔재라는 것에 저 자신도 이 호칭에 대해서 평소 저항을 느껴왔었는데 김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권력에의 외경심이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오히려 이 호칭은 이조시대 때 정3품과 종2품의 벼슬을 높여서 불렀던 말인데 문화재의 보호전승을 우리가 꾀하는 것처럼 그런 면에서 본다면’영감‘ 호칭은 말의 문화재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다시 반백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김갑수 씨는 웃는다. 필자는 오히려 건너오는 질문에 잠시 당황한다.

-선생님께서는 26세의 약관으로 법관이 되셨는데, 그때 처음 영감이란 호칭을 받으셨을 때 저항을 느끼진 않으셨나요? 물론 저희는 선생님과는 성장과정이나 교육의 배경이 다르겠습니다만...

=저항을 느꼈다거나 기분 나쁘다는 생각은 없었지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저항을 느껴야 한다는 태도에 오히려 문제가 있는 느낌입니다. 이런 간단한 호칭 문제가 말썽이 되어야 할 까닭이 문제에요. 이런 호칭이 문제되어야 한다면 판,검사를 ’곶감‘이나 ’미꾸라지‘라고 호칭단대도 역시 문제는 생길 거니까요. 가령 장관을 영감으로 호칭하지도 않고 대법원장을 영감의 호칭으로 부르지도 않습니다.

그때, 감쪽같이 예쁜 여비서가 탁자 위에 찻잔을 날라놓는다. 필자는 언뜻 목이 마르다는 기분으로 차를 들어 얼른 마셨다.

-실례지만 김선생님께서는 현재 변호사 개업을 하고 계시니까 법원 출입도 하시게 될텐데 그때 선생님께서는 젊은 법관들에게 ’영감‘의 호칭을 쓰십니까?

=물론이죠. 그럼 젊은 사람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김군 박군 할순 없잖아요? 내가 나이를 먹었다해서 작가이신 김선생을 보고 지금 내가 김군이라고 부른다면 아마 기분이 썩 좋으시진 않을 겁니다.

-예...그렇겠습니다. 허허

=바로 그 점입니다. 간단한 한마디의 호칭으로 상대의 기분을 그르치지 않는다면 서로간이 호감도를 높이는 데도 좋은 일이겠지요. 영감 호칭은 일제의 잔재가 아니고 이조의 잔재라고 볼 수 있겠어요.

-문제는 바로 그 호칭에서 권력을 올려놓고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오만과 수치와 비굴의 냄새를 진하게 풍김으로 해서 우리에겐 아직도 깊이 뿌리박은 관료의식이 작ㅇㅇ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는 호칭으로서의 비민주성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마을의 웃어른이나 복덕방 노인에게, 혹은 남편을 부르는 아내의 말로 들릴 적에 우리는 오히려 친근감을 느끼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새파랗게 젊은 판,검사에게 머리가 하얀 군수, 서장이 허리를 굽신거리면서 ’영감‘의 호칭을 불러야 한다는 데 필연코 꼴불견이라는 소리를 들어서 마땅하지 않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1962년에 대법원에서 이 호칭을 부르지 말라고 지시한 일이 있지 않겠어요?

=그건 알아요. 그러나 그런 지시가 내려진다고 해서 이 호칭문제가 간단히 없어지진 않을 겁니다. 법관 자신들도 서로간을 ’영감‘으로 호칭하고 있습니다. 왜 예술가들에게도 ’호‘라는 것이 있어서 즐겨 부르고 있잖아요?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되겠죠.

-선생님께서는 법관생활 30여년간 이 호칭을 받아오시면서 혹은 호칭을 해오시면서 일어난 에피소드 같은 건 없으신지요?

=없습니다...허허

필자가 맨처음 김갑수 씨를 찾아온 기분 그대로라면 필자와 그이는 서로 의기상통, 죽이 맞아서 ’영감‘ 호칭을 사이에 두고 서로 내가 질세라 난도질하며 이건 정신적 부조리다, 권력에의 외경심이다, 군림하려는 권위의식의 소산이다하며 칼질될 줄 알았었다. 그러나 필자는 잠시 배반당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것은 내편에서의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다시 말을 꺼내본다.

-이 호칭이 그렇게 문제시 되어야 하는 가장 큰 이면의 이유 중의 하나는 이 호칭으로 불리어지는 법관들이 권력의 핵에서 군림하고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지요. 말하자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판,검사가 권력의 핵에 있다는 거지요. 아까도 말했지만 이 호칭문제가 그렇게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만큼 등장되어야 할 까닭도 없거니와 또한 판,검사가 관료의식을 버리고 진정한 공복으로 내려와서 개방적으로 관민이 화합될 적엔 자연히 소멸되어 갈 호칭으로 봅니다. 하나의 지시로 없어질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정히 뭐하다면 다음 세대에선 이런 호칭을 쓰지 말면 되겠지요. 김선생의 세대에선 말입니다.

필자는 다소곳이 고개숙여 인사하고 그 분의 사무실을 떠났다. 그 분이 지으신 ’헌법30년‘이란 책을 한 권 받아 들었다. 그분의 법관생활 30년의 희로애락도 한 권의 책으로 남는 것처럼, 이런 호칭 문제도 우리 후손에겐 야사 한 모퉁이에 남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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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일 경향신문에서 ’창작집 출판 활기‘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창작소설과 시집출판 붐이 일고 있다. 민음사, 현암사, 문리사, 성음사, 영풍출판사 등 크고 작은 출판사가 창작단행본을 출판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창작과비평사와 문학과지성사 이외엔 창작단행본을 꺼리던 이들 출판사들이 창작출판에 경쟁을 벌이고 있는 거은 창작집들이 재판을 거듭하면서 잘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중략)

창작집이 잘 팔리는 이유는 그동안판치던 번역문학이 한계에 이른데 반해 국내 창작수준과 독자수준이 향상된 데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략) 현재 1만부 이상(5판) 파린 단행본에는 황석영의 ’객지‘(창작과비평사), 황순원의 탈, 조해일의 장편소설 ’겨울여자‘(문학과지성사) 등이 있다. 재판 또는 3판 이상을 기록한 창작집은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최인훈의 ’광장‘ ’구운몽‘ 홍성원의 ’주말여행‘(이상 문학과지성사) 방영웅의 ’살아가는 이야기‘ 이문구의 ’해벽‘ 송영의 ’선생과 황태자‘ 이정환의 ’까치방‘(이상 창작과비평사) 등이 있다. 이밖에 김주영의 ’여름사냥‘ 최정희의 ’찬란한 대낮‘ 등도 재판 3판의 호조를 나타냈다.(중략)

시의 경우 소설보다는 출판 붐이 덜하지만 1만 부 이상 팔린 시집들이 있어 시단에도 자극을 줬다. 신경림 ’농무‘(창작과비평사)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민음사)가 각각 1만 부 돌파에 성공, 서정주 시집이나 소월 시집 이후 최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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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7일과 29일 동아일보에 새로운 연재소설 ’위대한 악령‘을 알리는 예고 기사가 실렸다. 여기 실린 작가의 말은 다음과 같다.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악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이나 감각 따위도 체질적으로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시대에 일컬어졌던 여자의 칠거지악도 지금에와서 되씹어보면 저항도 느껴질테고 혹으 모순도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윤리관도 흘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사회적으로 지탄받아야 마땅하고 배척되어야 할 야망에 찬 한 청년의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늑대처럼 이 도시를 헤집고 다니면서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불사르며 아낌없이 먹어버리는 멧돼지 같은 이 30대 사나이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가 저지르고 잉태해내는 모든 악을나는 변명해 나갈 것이다. 그런데 둔필인 내가 그 엄청난 것을 어떻게 써나갈 수 있을 것인지는 사실 내 자신도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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