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 이 한마디, 참 좋은말"
마루는 오늘도 생긋생긋 웃으며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이들은 율동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마루를 바라보며 다음 소절을 따라불렀다.
"우리 식구 자고나면 주고 받는 마알.
사랑해요 이 한마디. 참 좋은말.
엄마 아빠 일터 갈 때 주고 받는 말."
이말이 좋아서 온종일 신이나지요, 이말이 좋아서 온종일 일맛 나지요
이말이 좋아서 온종일 가슴이 콩닥콩닥 뛴대요-
사랑스러운 노랫말을 화려한 율동과 함께 행복한 표정으로 부르고 있는 마루였다.
하지만 표정과 달리 사실 마루의 속은 속이 아니었다.
감기. 몸살. 두통.
갑자기 찾아오는 병처럼, 마루에게 갑자기 우울과 무기력이 찾아왔다.
항상 해오던 일이 의미 없이 느껴지고, 교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겁지 않았다.
1n년차.
번아웃인 것 같기도 했다. 항상 해오던 똑같은 일에 염증을 느낄 때가 된 것 같기도 했다.
지랄 총량의 법칙처럼, 지난 십수년 동안
어딜가나 꼭 있는 힘들게 하는 아이 한명쯤.
별것 아닌걸로 속을 긁어놓는 학부모 한명쯤.
결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은근히 거슬리는 동료 한명쯤은 꼭 있어왔다.
반대로,
티는 낼 수 없지만 유난히 눈이 가는 최애 아이 한명쯤.
별것 아닌 일에도 꼭 감사하다며 마루를 존중해주는 학부모 한명쯤.
대화도 생각도 잘통해서 함께 일할 때 손발이 척척 맞는 동료 한명쯤도 꼭 있었다.
문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좋은 것들에 감사하며 살고 있었는데,
요즘따라 감사한 일 아홉가지보다 거슬리는 한가지가 나타나면
마음이 겉잡을 수 없이 힘들어진다는 것이었다.
알 수 없는 울렁거림에 속도 좋지 않다가 결국 어제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다.
퇴근 후.
유치원에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몸 속에 있는 모든 에너지와 기력을 다 쏟아붓고
텅 빈 거실에 쓰러지듯 털썩 주저앉았다.
씻을 힘도, 마음도 들지 않았다.
퇴근 후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퇴근 후에 무언가를 할 힘이 남아있지 않은 것도 슬펐다.
시달리기 위해 출근을 하는 것도 슬펐고,
에너지를 모두 쏟아버린 후에 텅빈 몸으로 깡통로봇처럼 집에 터덜터덜 들어오는 자신의 모습도 슬펐다.
마루는 자신이 안쓰럽고 애처로웠다.
한동안 거실 쇼파에 멍하니 앉아있던 마루는
눈에 촛점이 없이 슬금슬금 침대로 기어들어가서 이불을 뒤집어 써봤다.
아무도 보고있지 않는 마루만의 공간.
아이들도, 학부모도, 동료 선생님도, 친정 식구들도 아무도 없는 좁은 공간.
심지어 짝꿍도 퇴근 전이었다.
누군의 눈도 마루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그렇게 마루는 한참을 음소거 해놓은 티비처럼 한점의 소리도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며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불을 뒤집어 쓰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울음을 울던 마루였지만
지금은 방긋방긋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영화 미션임파서블의 유명한 장면 같았다.
가면을 쓰니, 그 가면이 얼굴에 달라붙어 진짜 마루의 얼굴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웃는 가면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있자니 마루 스스로도 혼란스러웠다.
'혹시 이게 진짜 내모습이고, 어제 잠깐 우울의 가면을 썼던건 아닐까?
어떤게 진짜 모습이고, 어떤게 가면이지?'
이불 속에서 울던 마루와, 행복한 모습으로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마루의 모습이
번갈아가면서 마루의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혼란은 수업을 마치고 연수실에 와서도 계속 되었다.
동료 선생님들은 마루의 농담 한마디에 뒤집어지며 웃었고,
오늘도 마루는 힘없이 쳐지려는 연수실 공기를 밝게 만들었다.
마루는 자신의 우울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전염병처럼 나의 기분을 남에게 묻히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고 4시 20분.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가면을 쓰고 있었던 마루는 퇴근을 위해 차에 타며 비로소 가면을 벗을 수 있었다.
억지로 짓고 있던 미소를 얼굴에서 지워도 되고,
평소 좋아하던 노래를 들으며 우울을 지우려 애써볼 수 있었다.
기나긴 시간을 자신의 감정과 분리한 채로 하루를 보낸 마루는
어김없이 속이 텅- 비어 깡통이 된 몸으로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마루가 잠시 벗어놓은 가면은 아직도 저기 바닥에서 누군가를 향해 웃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