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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Dec 28. 2017

일상이라는 문학  

영화 <패터슨>

언젠가는 나도 직장인이 되겠지. 아침에 눈을 뜨면 회사에 출근하고, 퇴근하고 나면 소소한 여가를 즐기다가 내일을 위해 일찍 잠이 들 것이다. 야근이 잦은 직장이라면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기도 어려울 거야. 일에 치여 살면서도 주변 사람들과 가정을 챙기는 사람이 되어야겠지. 어른이 되려면 자유나 낭만이라는 단어와는 작별을 해야 하는 걸까. 혹시라도 그런 일상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지면 어쩌지. 어느 순간 내 삶의 풍경을 바라봤을 때 그 안에서 어떤 의미도 발견할 수 없다면. 그런 순간이 온다면.





짐 자무쉬의 영화 <패터슨>을 봤다. 주인공 패터슨(아담 드라이브)의 직업은 버스 운전사다. 그의 일상은 단조롭다. 매일 6시 15분쯤 일어나서 아침을 먹는다. 출근하면 버스를 몰고 시내를 돌면서 사람들을 태우고 내린다. 퇴근하면 아내가 차려주는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개를 산책시키며 바에 들러서 맥주 한잔을 마신다. 영화는 월요일에 시작해서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월요일 아침이 되어서야 끝난다. 영화 속 일주일이 앞으로도 패터슨의 인생에서 계속 이어질 거라고 말하는 듯이.


패터슨은 취미로 시를 쓴다. 아침을 먹다가 눈 앞에 놓인 성냥갑을 보고 영감을 얻어서 시를 쓴다. 버스 승객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시를 쓴다. 주말이면 노트 한 권을 들고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향한다. 그는 쏟아지는 폭포를 바라본다. 가끔 노트에 글귀를 끄적이기도 하면서. 시집을 출간해서 유명 작가가 되려는 게 아니다. 그냥 자기만의 비밀 노트에 시를 적어둔다. 별다른 목적 없이. 



아름답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난생처음으로 시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시를 쓰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에 가깝다. 시를 쓰면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도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 걸까. 이런 삶을 꿈꾼다면 욕심일까. 이런 삶을 가질 수 있다면 무엇이든 포기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직업이 무엇이든, 돈을 얼마나 벌든 괜찮을 것 같은데.


물론 영화는 영화일 테다. 짐 자무쉬는 패터슨의 일상에서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려고 노력했으리라.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패터슨이 저렇게 아늑한 집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또는 아내의 컵케이크가 잘 팔리지 않았다면? 그런 상황에서도 지금처럼 서로의 꿈을 응원할 수 있을까. 낭만은 가난이라는 현실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패터슨은 몇십만 원짜리 기타를 구매한 아내에게 화를 낼 지도. 



그럼에도 자꾸만 꿈을 꾸게 되는 것은 왜일까. <패터슨>은 너무 아름다운 영화라서, 그저 영화일 뿐이라고 스스로 되뇌지 않으면 정신을 잃을 것만 같다. 패터슨은 일상이라는 문학을 시로 써 내려간다. 그래서 그의 일상은 반복되지만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똑같은 듯 미묘하게 변주되는 하루하루의 삶. 문학과 함께할 때 일상은 예술이 되고 예술은 일상이 된다. 문학은 무미건조한 일상 속에서도 항상 의미를 건져 올린다. 


10년 후 나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부디 바쁜 와중에도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글을 쓸 여유를 잃지 않았으면. 현실은 영화처럼 아름다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감히 영화같은 삶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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