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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Sep 28. 2016

미인을 사랑하면서 목숨처럼 고독했던 당신 (권진규)

그의 한철 머무른 사랑의 흔적, 그가 남긴 미인들을 보면 가슴이 무너진다

미인이 절벽 쪽으로 
한 발 더 나아가며
내 손을 꼭 잡았고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미인의 손을 꼭 잡았다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박준 <마음 한철> (시의 말미 부분)


권진규는 내가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조소(조각과 소조) 작가이다. 
내 인생의 그림 팔 할을 얇고 작은 미술 교과서에서 처음 만났다.
미켈란젤로의 대리석 작품과 로댕의 브론즈 작품, 수많은 서양 조소가 각자의 아름다움을 내세웠지만, 
가장 처연하게 내 마음에 와 닿은 것은 권진규의 테타코타 작품 <지원의 얼굴>이었다. 


그 갸녀린 목선과 허물어진 어깨, 텅 빈 공간을 만들어내는 눈빛이 나를 사로잡았다. 
아주 어린 나이이지만 뭔가 알 수 있었다. 이 작품을 만든 사람은 슬픈 사람이라는 것을. 


지금은 좀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쓴 재료인 흙이, 허무를 아는 인간을 만나서, 허무가 담긴 찰흙 작품이 되었다. 


나는 그가 슬프고 또 허무했고, 힘이 없었던 이유가 고독해서라고 생각한다.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결혼했으나 한일의 거리, 그리고 경제적 문제로 헤어져야만 했던 첫 번째 아내,
도모는 그의 예전 작품은 따스했으나 한국에 돌아가 만들게 된 작품은 고독했다고 표현했다. 

권진규는 수없는 작품을 만들었으나 대부분 여성을 모델로 했다. 
자신의 집에서 살림을 돕던 영희부터, 애자, 홍자, 경자, 제자였던 선자와 지원, 그리고 정제.

작가와 모델의 관계는 감독과 연기자의 경우와 같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상을 풀어내 줄 수 있는 이상의 매개로 작가는 모델을 선택한다. 
그리고 작업이 이루어지는 순간과 순간이나마 작가는 모델을 깊이 사랑한다. 

"虛榮과 宗敎로 粉飾한 모델, 그 모델의 面皮를 나풀나풀 벗기면서 진흙을 발라야 한다. 두툼한 입술에서 欲情을 도려내고 淨化水로 뱀 같은 눈언저리를 닦아내야겠다. 모가지의 길이가 몇 치쯤 아쉽다. 송곳으로 찔러보아도 피가 솟아 나올 것 같지 않다" (권진규)

나는 그 모델들이 권진규 인생의 "미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미인의 순간을 꼭 잡았으나, 번번이 한 발 물러나며 놓쳐버렸던 슬픈 사람. 그가 권진규였다고 생각한다.

"어는 해 봄, 異國의 하늘 아래서 다시 만날 때까지를 기약하던 그 사람이 어느 해 가을에 바보 소리와 함께 흐느껴 사라져 갔고 이제 오늘은 匹夫孤子로 진흙 속에 묻혀있다. 
여자는 원래 그렇게 차가운가" (권진규)


어느 날 권진규는 못 잊던 전처와의 재회를 눈물로 기록했다.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 
그것이 어떤 사랑인지는 다르겠으나 분명 사람에게는 사랑이 생명이겠다.
그리고 가장 절실한 것이 끝까지 와 주지 않는 슬픔은, 그 공허는 인간에게 대개 일상이다. 
어쩌면 그것이 보통 인간의 삶이다. 

그러나 권진규는 그것을 견디기에 사랑에 깊이 상처 입은 사람,
그리고 사랑을 허락해주지 않는 인생에 깊이 상처 입은 사람이었다.  


"이젠 기다리다 못해 지쳐버린 것 같다. 떠난 지 6일 만에 날아들어온 편지. 앗, 정제  것이 틀림없겠지, 주워 보니 그렇다. 나는 뛰었다." (권진규의 연서로 추정)

언제였던가 권진규의 마지막 엽서가 뜬금없이 떠올라 울컥, 눈물이 난 기억이 있다.

"感謝합니다. 나의 人生에 있어서 最後에 만난 힘이 되는 분이었습니다. 
遂信 高大 博物館 美術館 開館의 件, 感謝합니다." (권진규, 박혜일에게 마지막 엽서)

最後(최후)라는 단어를 쓰게 될 때면 조심스러워진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끝나는 시점에야 쓰는 단어이기에, 지금 이 단어를 꼭 써야 하는 시기인지, 
설령 그렇더라도 마지막 끝을 미루고야 만 싶어 두려움으로 자제하는 단어이다. 

슬프게도 권진규는 마지막 사랑을 놓치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최후를 맞았다. 

“고독이란 말처럼 진부한 말도 없다. 그러나 때때로 그것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경우가 있다. 바로 조각가 권진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의 마지막 행위도 이 바깥과의 단절을 고수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오광수, 월간 <공간>, 1973년 5월호)

그저 누군가에게나 대개 서러운 것이 삶인가 보다. 
사랑하는 미인 하나 품기가 어려운 것이 삶인가 보다. 
그 같은 천재에게도, 그리고 나 같은 미생에게도. 


미인을 사랑하면서 목숨처럼 고독했던 권진규를 생각하면 더없이 슬퍼진다. 
권진규의 한철 머무른 사랑의 흔적, 그가 남긴 미인들을 보면 더없이 아름다워서 가슴이 무너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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