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던 사람, A 언니
습관 혹은 굴레처럼,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에 바이올린 학원에 가서, 하기 싫은데 해야 할 것만 같은 바이올린 레슨을 받고서 집에 갈 때. 가끔 A언니와 집 가는 길이 겹쳤다.
같은 버스를 타고 가는데, 의자 손잡이를 하나만 잡지 말고 양손으로 다 잡아야 한다던 잔소리가 날 어리게 보는 것 같아서 싫었다. 나도 어엿한 초등학생이라 달리는 버스에서 무게중심쯤은 거뜬히 잡을 수 있다고! 마음속으론 그렇게 외쳤지만, 겉으론 언니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한 손엔 버스 의자 손잡이를, 다른 한 손으론 의자 옆 기둥을 붙잡았다.
왜인지 모를 우정을 느껴서였을까, 나는 뜯어진 머리끈에서 나온 구슬로 내 인생 첫 수제 팔찌를 만들어 A언니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내가 가졌다. 언니의 손목 사이즈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지만 일단은 내가 좋아하는 구슬을 가득 담아서 만들었던 팔찌였다. 언니는 기쁘게 선물을 받아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학원을 옮겼다. 언니는 일반중학교에 다니다가 예고에 들어간다고 했으니 그랬으리라 싶었다.
옮긴 학원의 선생님이 이미 A언니를 알고 있었다. 언니가 나갔던 콩쿠르에서의 연주를 보셨던 것 같다. A는 꽤 실력이 좋던데? 하던 선생님의 평을 듣고 나는 괜히 뿌듯했다. 그러나 나는 그 선생님에게 레슨 받기 싫어서 배 아프다고 꾀병 부리는 학생일 뿐이었다.
자기보다 한참 어린애가 바이올린을 한다니까 예쁘고 기특하게 보였으려나. 아님 그 나이 때의 자기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을까.
특별할 것 하나 없던 내가 그저 선망의 대상처럼, 막연히 동경하고 좋아했을, 멋지게 보고 부러워했을, 내가 만약 계속 음악을 했다면 어쩌면 어디선가 다시 만났을지도 모를, 그러나 이미 흘러가버린.
상냥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A언니와의 기억.
나는 A언니가 다닌다고 했던 중학교를 기억해두었다가 똑같이 그 중학교에 들어갔다. 내가 중학교에 올라갔을 때 언니는 이미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또 A언니가 다녔던 중학교에서 기악부를 했었단 기억도 떠올라서 나도 기악부에 들어갔다. 기악부에 더 이상 A언니와 관련된 어떤 흔적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야말로 내가 '알던' 사람. 사실은 정확한 이름도 이제는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 그런 사람.
하도 오래전 일이다 보니 어쩌면 내 머릿속에 남은 몇몇 사람들에 대한 파편적인 기억 구슬을 모아 엮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A언니에게 선물하고 나서 남은 재료로 만든 내 몫의 팔찌는, 아직까지도 보물 상자에 고이 담아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