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던 사람, G선생님
어깨선 아래로 내려오는 굵은 펌 머리카락, 진한 쌍꺼풀이 있는 동그랗고 예쁜 눈, 웃으면 입가에 패이는 보조개, 그리고 나이를 슬쩍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눈가와 볼의 주름.
G선생님은 40, 그 언저리의 나이인데 미혼이라고 했다. 얼핏 봐도 선생님 또래의 사람들은 이미 대부분 결혼을 하고 아이가 하나, 혹은 둘 쯤 있을 것 같았는데. 멀리서 찾아보지 않아도 선생님이 계신 교무실만 둘러봐도 그럴 텐데, 선생님은 왜 결혼을 안 하셨을까.
이런 생각 정도는 누구나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걸 공공연히 말하는 건 무례한 것인 줄 몰랐던 여고생들은 가끔 G선생님에 대해 이야기했다.
"G선생님 참 예쁘게 생기셨는데."
"맞아, 성격도 넘 좋아. 착하고 똑똑하고."
"직업도 선생님이면 엄청 좋은 편 아냐? 안정적이고, 월급도 꼬박꼬박 나오고. 교육공무원이잖아."
"그치. 근데 왜 아직도 결혼 안 하셨지?"
"그러게, 궁금하다."
국립대 한문교육과를 나오셨던 G선생님은 수업의 완급 조절이 좋은 탁월한 실력의 소유자였다. 논어나 사서삼경 같은 고전의 명문을 멋들어지게 칠판 가득 분필로 적어두기도 하셨고, 언어영역 3점짜리 문제를 맞히기 위해 독음만 외워 알고만 있었던 사자성어에 얽혀있는 이야기들을 재미나게 들려주시곤 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시험에 나오기 좋은 문법 요소들도 빠짐없이 정리해서 칠판에 적어주셨다. 한문은 필기하는 재미가 있는 수업 중 하나였다.
암기에 워낙 자신이 없던 나는,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옛날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 얘기 끄트머리에 슬쩍 사자성어를 얹어서 기억하곤 했다. 한문 선생님을 좋아했다. 멋있어 보였다.
G선생님은 우리들과 꽤 나이 차이가 있으셨지만, 거리감이 느껴지는 옛사람 같은 기운을 풍기지는 않으셨다. 이상한 일이었다. 경로당에서 바둑이나 장기를 두고 있는 할아버지에게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고사성어 얘기를 재미나게 술술 들려주는 사람이 예쁘고 착한 미혼의 여자 선생님이라니.
"G선생님은 왜 결혼을 아직 안 했을까? 예쁘고 착한데. 안정적인 직업도 있는데."
"야, 그거, 첫사랑 때문이래. 2반에서 쌤이 그 얘기해줬다더라."
"첫사랑? 그게 누군데?"
"대학생 때 첫사랑이랑 만났다가 잘 안됐대. 그러고서 지금까지 쭉 그렇다는데?"
"그래도 좋은 사람 만나면 결혼하시지 않을까?"
"아냐, 결혼 생각 없대. 결혼 안 하고 싶다고 했대."
"진짜? 그럼 선생님은 결혼을 못하는 게 아니라 진짜 안 하신 거네."
그때 왜 G선생님이 결혼을 안 하신 게 궁금했을까? 그렇게까지 친한 사이도 아니었으면서. 그렇게까지 친한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
내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하기 시작하고, 아이도 하나 둘 낳고 있는데, 나는 결혼을 안 한 지금에야.
동그란 안경을 쓰고 시원한 입매가 매력적이었던 인상의, 자기 직업에 좋은 실력을 갖고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했던, 그러나 기혼자는 아니었던. G선생님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