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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구 Dec 09. 2020

피어싱

내가 알던 사람, C에 대한 이야기

학교가 끝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각자 뿔뿔이 흩어져 정해진 학원을 향해 가곤 했다. 영어, 수학, 그 뒤엔 사회나 과학. 학교에서 배운 학문을 더 잘 알기 위해, 혹은 더 먼저 알기 위해, 혹은 더 잘 맞추기 위해서. 나는 학원에 다닌 경험이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데, 학원에 다니지 않고도 알아서 잘하는 학생이라는 좋은 핑곗거리도 있었지만 사실은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학원이라는 또 다른 인간관계의 세계. 그 세계에 몸 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눈치껏 재가며 생존하기 위해 애쓰는 본능적인 과정이 내겐 너무나 힘들었다. 학교 교실에 펼쳐져 있는 관계망 사이에서 버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꼈던 나는, 혼자 책을 읽고 공부하며 조용히 중학교 시절을 마감했다. 가끔 외로운 마음이 들 때면, 또 다른 교실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나와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면 그만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 속으로, 현실을 도피하며 재미있게 노는 것이 삶의 낙이었다.


 고등학교는 친한 친구들과 다른 학교를 지망했다. 친구들이 간 학교보다는 좀 더 면학분위기가 자유로운 편이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예체능 계열의 진로를 희망했기에 그게 더 나을 거란 판단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나 막상 고등학교에 처음 가니 또다시 사람과 사람의 관계망이라는 정글에 나 홀로 뚝 떨어져 버린 기분이었다.


 새 학기 첫날, 이미 같은 중학교에서 온 애들은 서로서로 붙어 앉아 까르르 웃으며 대화 중이고, 그나마 이름과 얼굴만 아는 사이였던 애들도 이날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친한 사이가 된다.

 나는 꼼꼼히 교실 안의 얼굴들을 훑어도 아는 얼굴이 없어 멍하니 책상에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옆에 혹시 자리 있니?"

 아마도 나와 비슷한 처지였을 C가 내게 건넨 첫인사였다.


 새하얀 피부에 길고 가느다란 눈, 차분하게 스트레이트 펌을 하고 눈을 거의 덮을 만큼 긴 앞머리. C는 그냥 평범하게 착해 보이는 학생이었다. 첫날 끼리끼리 앉은자리를 담임 선생님은 그대로 한 달간 지내보자며 바꾸지 않으셨고, 나는 C와 친해졌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우리 말고 다른 애들은 이미 그룹이 지어져 있었고, 그 그룹들에서 제외된 나머지 사람들끼리 뭉쳐야 했다. C 말고도 그렇게 비슷한 친구들 둘을 더해서, 한동안 우리 넷은 같이 급식실에 가서 밥을 먹곤 했다.


 고등학교 친구는 평생 간다던 사람들의 말을 믿고 나는 새롭게 생긴 나의 친구들에게 내 비밀을 한 가지 알려줬다. 그러자 어느 날 C도 나에게 자신의 비밀을 알려줬다. 일부러 보여주지 않으면 눈치챌 수 없는 C의 몸 어딘가에 피어싱이 있었다. 학교에 올 때는 화장도 지우고 피어싱도 가장 작은 걸로 걸어 눈에 띄지 않지만, 하교 후에 C는 또 다른 세계에서 만나는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화려한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사진을 찍고, 그 세계를 만끽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C는 흡연자였다.

 처음 그 사실을 내게 알려줬을 때, 솔직한 마음으론 우린 미성년자이니 안 되는 거 아냐?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뱉진 못했다. 그저 건강을 잘 챙기라고 말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나와 C 사이의 거리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간섭이었다.


 매일 점심과 저녁을 같이 급식실에 가서 먹고 돌아와도, 우리들 사이의 거리는 마치 자석의 같은 극을 붙여 둔 것처럼 일정 거리 이상 좁혀지질 않았다. 그 거리가 더 멀어진 계기는 기억도 안나는 어떤 사소한 일들로부터, 어쩌면 한 두 달 지나고 짝꿍을 바꿨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뒤로 우리가 같이 급식실에 가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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