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구 Mar 21. 2021

알던 사람

내가 알던 사람, D 이야기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내 모습으로 친구들과 관계 맺을 수 없을 때, 원하지 않아도 분위기에 휩쓸려 함께 할 무리를 찾아야 했을 때, 진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아 외로움을 느끼곤 했다.

 사춘기 소녀의 마음에 스산한 바람 불던 시절이라 그랬겠지만, 이 세상의 모든 관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무용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무렵 블로그를 통해 만나게 된 친구가 D였다.


 가뜩이나 새로운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내가 아무런 연고 없이 D를 만나게 된 것은 아니었다. '실친'이라고 부르곤 했던, 실제 이 세상에서 나와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던 친구 하나가 D를 먼저 알고 있었다.

 D는 내가 활동하고 있던 온라인 세상에서 꽤 유명한 블로거였다. 당시 내 세계의 시야에서 유명한 사람인 D와 친해진 실친이 나는 부러웠고, 나에게도 D를 소개해 달라고 말했다. 

 처음엔 그의 블로그에 올라오는 포스팅에 댓글로 소소한 인사를 하거나, 그의 시시콜콜한 일상에 호들갑 떨며 환호와 격려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다 기회가 생겨 나는 D와 홍대에서 밥을 한 번 먹기로 했다.


 우리가 만난 장소는 홍대 놀이터 근처의 멕시칸 요리 전문점이었다. 멕시칸 요리 자체가 낯설기도 했거니와 이런 음식점의 존재를 알고서 나를 데려갔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D는 이 음식점이 처음은 아닌 듯 했다. 능숙하게 메뉴를 고르고,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나는 난생처음 보는 메뉴들에, 낯선 향신료 맛에 놀라긴 했지만 그럭저럭 식사를 마무리하고 계산서를 받았다. 계산서에 찍힌 금액을 보고 1인당 만원이 넘어가는 금액에 당혹스러워하는 나와는 달리, D는 덤덤하게 내 몫의 밥값까지 계산했다.

 나와 같은 나이라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늘 D는 나보다 훨씬 어른 같은 기분이었다.


 그 후로도 우리는 몇 번 오프라인에서 만나 밥을 먹었다.

 한 번은 내가 그가 사는 동네까지 갔다. 대중교통을 타고 2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나는 늘 그에게 뭔가 얻어먹는 것 같은 기분에 미안해서 작은 선물을 챙겼다. 깨끗하게 본 책 한 권과 손편지를 챙겼다. 예상치 못한 내 선물에 D는 살짝 놀라긴 했지만 무척 좋아해 줬다. 나는 기뻤다.


 어느 주말 아침, 늦잠 때문에 눈을 뜨지도 못한 내 머리맡에 엄마가 편지 한 통을 던져두고 갔다. D가 나에게 보낸 편지였다. 발신자 주소에는 D가 블로그에서 사용하던 닉네임만 적혀있었다. 그래도 우표가 붙어있어서였는지 수신자인 나에게 제대로 도착한 듯했다.

 편지엔 나에 대한 감사와 칭찬이 그득해서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다. 정성스레 답장을 써서 보낸 D의 격려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가 나에 대해 묘사한 모든 것이 정말이길 믿고 싶을 정도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대입을 준비하는 수험생이 되자, 현실세계가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나는 D와의 관계가 흐릿해지고 있다는 걸 미처 깨닫지도 못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D의 블로그에 새로운 포스팅이 하나 올라왔다.

 그 글은 D가 직접 쓴 게 아니라고 했다. 하얀 국화가 올려진 책상을 찍은 사진과 그 아래에 나는 다 이해할 수 없었던 D의 상황이 적혀있었다. 글 아래에는 D의 명복을 정중하게 비는 댓글들이 있었다. 나는 그 포스팅을 읽고서 한참을 그냥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았다.


 지금 당장 내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와는 아무런 연결성이 없는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한동안 낯선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이 진정 슬픔인지, 혹은 당혹감인지, 혹은 이질감인지 쉽게 정의 내릴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종종 D를 생각했다. 눈물이 난 적은 없었지만 어딘가가 뚫려 바람이 드나드는 기분이었다. 삶이 허망하다는 표현이 유치한 사춘기 소녀의 감정, 그 이상의 실제로 다가오곤 했다.


 일 년쯤 지났을까, 나보다 먼저 D와 알고 있었던 실친에게서 문자가 왔다.

 D가 살아있다고. 연락해보라고.

 그 문자를 처음 받았던 날, 나는 실친에게 몇 번이고 다시 물어봤다. 물음표와 느낌표를 수없이 많이 찍어대면서, 혹시라도 장난이 아닌지, 거짓말이 아닌지 다시 물어보면서.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아직 지우지 못했던 D의 전화번호를 휴대전화 주소록에서 찾아냈다. 잘 지냈느냐고, 걱정 많이 했다고, 보고 싶었다고, 잠깐 어디 여행 다녀온 사람에게 연락하듯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D에게서 답장이 왔다.


 다시 D와 연락을 하고 만나게 되었을 때에 나는 단 한 번도 왜 그런 글을 블로그에 올렸었느냐고 직접 물어본 적이 없었다. 실친에게 전해 들었던 몇 가지 소문만으로 제대로 말 못 할 사정이 있었겠거니, 추측하고 덮어둘 뿐이었다. 다시 D가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 

 D는 남들보다 조금 뒤늦게 전문대학에 가서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나 역시 대학생이 되어 가끔 D의 실습대상이 되기 위해 D의 학교에 놀러 가기도 했다. 그때도 나는 먼 길을 찾아 D를 만나러 갔다. 역시 대중교통으로 2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D의 삶은 복잡했던 것 같다. 그는 우리가 다시 만난 뒤에 한 번 더 편지를 우편으로 보냈다. 이번에는 그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그동안 삶이 참 힘들었다고. 그런데 내가 보냈던 그 편지가 참 따뜻했다고. 

 자신의 형편이나 상황에 대해 직접적인 묘사나 표현 없이, 그는 나의 존재가 그저 그에게 힘이 되었다고만 말했다. 그때는 그것이 너무나 소중한 격려였고 위로였다. 그 말이 다른 말로는 내 글의 따스함에 대한 이야기였으니까.


 시간이 흐르며 우리의 관계는 다시 희미해졌다. 이번엔 온라인 포스팅이나 댓글 같은 뻑적지근한 사건은 없었다. 그냥 이십 대 중반의 청년들이 흔하게 겪는 인간관계의 가지치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래도 나는 그의 번호를 지우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내가 휴대전화 관리를 잘 못해서 그의 전화번호가 날아갔었다. 하지만 메신저 어플에 이미 저장되어 남아 있던 그의 프로필 사진을 숨기거나 차단하거나 삭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먼저, 또다시 연락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렇게 D는, 내가 알던 사람이 되었다.


이전 19화 표면장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