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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구 Aug 18. 2020

말간 웃음

내가 알던 사람, U에 대한 기억

그 애를 수식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하나가 떠올랐다. 초딩같은 웃음.


좀 더 예쁘게 다듬은 말을 쓸 수도 있는데. 솔직히 말해 내가 그 애의 웃음에 반했다는 걸 부인하고 싶었다. U는 또래 애들 답지 않게, 엄마가 사다가 옷장에 넣어둔 것만 같은 티셔츠 쪼가리나 입고 다녔다. 그런데 내가 U를 주시하게 만든 건, 해사하고 말간 그의 웃음이었다. 예뻤다. 옷을 초딩처럼 입었어도.


U는 글재주가 있었다. 가끔은 이름을 보지 않고서도, U가 쓴 글은 태가 났다. 

한 번은 학교 전체 행사를 참여하고 감상문을 제출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제출물을 모아 문집을 만드는 게 내 일이었는데, U는 시를 썼다. 분명 걔나 나나 똑같은 델 가서 똑같은 걸 보고 듣고 왔는데, 그 시를 읽으니 머릿속에 분명하게 떠오르는 그림이 있었다. 그곳에서 들었을 법한 소리가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U는 국내 유명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학교 건물 앞엔 커다란 플래카드가 붙었다. 그 밑엔 자랑스레 U의 이름 석자가 적혀있었다. 부상으론 해외여행을 갔다고 들었다. 공모전 수상으로 그의 재능은 확실히 입증된 것처럼 보였지만, U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싶어 고시를 준비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는 같은 수업을 들었던 적은 있으나 딱히 개인적인 연락을 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졸업을 하고 한참이 지나서 다른 친구를 통해 U의 소식을 들었다. 고시 결과가 좋지 않았는지, 혹은 생각이 바뀌었는지, 혹은 내가 모를 또 다른 사정이 있었을지. 


U는 글 쓰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편집자와의 의견 충돌로 고충이 있단 얘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전해주던 친군

 "그래서 U가 요즘 정말 힘든가 봐."

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힘듦마저 부러웠다.


나는, 

아마도 넌 정말 모르겠지만, 

나는. 

다시 글을 써보려고 이렇게 타자를 두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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