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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구 Dec 04. 2020

교내 음악회

내가 알던 사람, T에 대한 기억

 중학교 3학년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내가 음악가가 될 줄 알았다. 유치원을 다니던 5살 때부터 시작한 바이올린 때문이었다. 즐거워하진 않았어도 꼬박꼬박 레슨을 받았고, 감이 좋다는 칭찬도 몇 번 들은 탓에 나는 영락없이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특별한 고뇌나 갈등 없이 예술 고등학교가 아닌 뺑뺑이를 돌려 들어가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나는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 공부를 시작했다. 그래야 할 것만 같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아쉬움은 남았는지 나는 작곡가나 음악치료사 같은 직업을 진로계획서의 빈칸에 적어냈고, 학교 음악 선생님에게 작곡을 배우기로 했다. 화성학 수업의 첫 번째 숙제는 오선지 가득 높은음자리표와 낮은음자리표를 그리는 것이었다. 때마침 선생님은 교내 음악회의 참가자를 모집 중이셨고, 나는 독주가 부담스러워 함께 연주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 선생님이 피아노를 칠 줄 안다며 동급생인 T를 소개해주었다. 

 교회에서 오래 반주한 경험은 있으나 음악을 전공할 생각은 없는, 그런 친구였다. 나는 바이올린, T는 피아노, 그리고 지금은 기억에 없는 누군가가 첼로를 맡아서 피아노 삼중주 곡을 공연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겨울 방학에 나는 희망 진로를 바꿨다.


 살짝 방향을 틀었던 진로가 정말로 내게 알맞은 것이었는지 적당한 대학교에 수능을 한 번 보고 들어갔고, 동아리 생활도, 학교 수업도 적응해 갈 즈음, 대학에서도 교내 음악 경연이 있었다. 참가자를 모집 중이었고, 상금이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 바로 옆 전문대에 다닌다던 T가 떠올랐다. 학교 후문가에서 어쩌다 마주쳐서 다음에 밥 한 번 하자던 약속을 지킬 겸, 겸사겸사 연락을 했다.

 이번엔 나의 독주에 T의 피아노 반주가 곁들여졌고, 내 연주는 엉망이었다. 음대가 없는 학교임에도 실력자는 어디선가들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게 T와의 연도 적당히 끝나겠거니 짐작했다.


 어느 날, T에게서 밥을 먹자고 연락이 왔다. 동아리 생활과 학과 수업을 꽉꽉 채워 살기에도 바빴던 나는 매몰차진 않더라도 은근하게 거절 의사를 표현했다. 그런데도 T는 포기하는 내색 없이 끈질겼다. 돈이 없단 노골적인 말에도 변함없이 그냥 밥만 먹자고, 자기가 사겠다고 했다. 밥을 사준단 말에 정말로 밥만 먹고 와야겠다, T가 정말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나 보다 생각하고 나갔다.


 한 번 밥을 먹은 뒤에 또다시 밥만 먹자는 약속이 생겼다. T를 상대할 에너지보다 밥 사 먹을 돈이 더 없다고 판단한 나는 또다시 T를 만났다. 그리고 난생처음 보는 어떤 언니를 소개받았다. 속내 모를 호의가 가득한 언니였다. 그 언니는 나와의 두 번째 만남에 편지를 써왔고, 작은 선물을 줬다. 그다음엔 그 언니가 또 다른 언니를 소개해줬다. 그 당시 내가 희망하던 진로의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결국엔 또 전혀 모르는 어떤 동갑내기 친구와 함께 셋이서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그때쯤엔 이미 T와 나 사이의 연결은 흐릿해져 있었고, 나는 알게 모르게 내 삶에 침투해온 낯선 사람들과의 관계에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도 모를 만큼 정신없이 지내고 있었다.


 최근 유명세를 탄 바로 그 사이비 종교단체였다. 내 개인정보가 정말 다 털리기 직전에서야 나는 이상함을 깨닫고 엉엉 울면서 그곳에서 뛰쳐나왔다. 뛰쳐나오며 다니던 교회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자 걱정 어린 질책을 들었다. 며칠 뒤에 정말로 그만둘 거냐고 재차 물어보던 포섭 마지막 단계의 언니를 만나 마지막 식사를 했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T가 이 모든 일의 시작점이었단 게 떠올랐다. 아직 그의 전화번호를 지우지 않았기에 연락을 했지만 아무 데에도 닿지를 못했다.

 T는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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