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누리 Oct 21. 2023

그냥 쓰면 안될까?

L.C.L.A!

발단은 아침 햇살 모먼트였다.


여름이 꼬리를 내리고,

공기에서 가을맛이 좀 섞여 올라오던 그 날

나는 유난히 일찍 일어났고

하필 아침 운동이 예정되어 있었다.


여느때보다 좀 이르게 운동 짐을 싸서

짧은 산책을 했다.

높고 푸른 하늘, 일상적인 전철역의 인파,

나는 오늘도 운동하고 출근한다.

별 일 없는게 가장 행복이라고 주장하고 다니는 내게, 이토록-완벽한 아침이었다.


아뿔싸.

이토록-완벽한 아침을 깨닫자,

나는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면의 청개구리가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개구리 주제에, 최근에 읽은 꼬부랑 글을 설파했다.

"L'enfer, c'est les autres."

("타인, 그것은 지옥이다." 장 폴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 1944> 대사이다.)




"그 날" 아침.




사선생님께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어찌되었건,

내게 그 문장은 "주체적인 삶을 살아라." 쯤으로 해석되었다.


이토록-완벽한 아침에,

하필 그 문장이 후크송 가사처럼 나의 심금을 때린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의미부여라면 서울바닥에서 1%가 아닐까.

나는 이내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 때가 왔구나.



내가 가장 많이 대화하는 대상은 나이다.

나는 나의 말을 잘 듣는 귀를 가졌다.

기질이 성가신 편이라,

나라도 내게 잘 귀기울여 주지 않으면 일상을 참 불편하게 꼬아버리는 녀석이기 때문이다.

그 목소리는 분명하고 강단이 있었다.






나는 운동 가방을 꺼내 장비를 확인했다.

내게 충분한 자원이 마련되어 있느냐.

앞으로 실천해내야 하는 주체적인 삶은

외롭기도 피곤하기도 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단단한 내면과 외면의 밑받침이 필요했다.



선택의 결이 대중적인 것일 때는 환영을 받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많은 댓글에 시달리게 된다는 사실을, 청개구리를 서른해 동안 키워온 본인이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지탱해줄 무엇 없이는 해낼 수 없는 여정이다.

나를 지탱하는 것을 점검했다.




< 2023년 10월 가방 검사 >


1. 날진 물통 500ml: 

백패킹을 다니면서 물이 생존의 필수 자원임을 여실히 깨달았다. 뜨거운 물, 차가운 물 전천후로 활용이 가능한 반려물통이다.


2. 아크테릭스 아톰:

산 정상에 도착하면 땀이 식어서 체온을 보존할 필요가 있다. 가볍고 따뜻한 점퍼를 휴대해야 한다. 값이 비싸 큰 맘 먹고 구입했는데 고도 없는 지면에서도 일상적으로 활용한다.


3. WSF 웨이트 스트랩: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정신력을 점검할 때 근육량도 함께 살피게 되었다. 몇십 킬로그램이 넘는 중량을 들어야 할 때 팔목과 손바닥에 도움을 준다.


4. 송길영-시대예보: 

"핵개인" 키워드가 마음에 들어, 연관된 유투브와 기사들을 섭렵하다가 이내 구입하고 말았다. 띄엄 띄엄 읽고 있지만 인간의 주체성을 조명하는 대목이 마음에 든다.


5. 밑미 리추얼 북 & 긍정카드:

긍정적인 마음들에 대해 적혀있는 카드와 그것을 필사할 수 있게 만들어진 노트이다. 내면의 힘을 단련하기 위해서 일상적으로 필사한다. 가장 좋아하는 카드는 "재치"이다.


6. 눅스 립밤:

프랑스에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선물해 준 뒤로 같은 제품을 구입하여 꾸준히 쓰고 있다. 친구가 준 립밥은 진작에 닳았지만, 꺼낼 때 마다 친구 생각을 한다.




- 충분하다. 든든하다.








나를 지탱해 줄 것들에 대한 점검이 완료되었다.

- 이제 나를 바깥으로 내보여도 될 것 같아.


내가 나를 돌보고 책임질 수 있게 하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나의 등을 떠밀었다.

드디어 누구의 손이 아니라,

나의 손이 나의 등을 밀었다.




한 발짝.

완벽히 준비된 순간은 없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던 나는 나를 믿는다.







< 인스타그램 스토리 포스팅 원문 >


스물 두 살!

원래 나의 꿈은 에세이 작가였다.

(그런데 돈이 없어서 그냥 취직했다.)

(물론 용기도 근성도 부족했다.)


나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내고 그 이야기를 조잘거리고 싶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사회의 다양성에 기여.

(이런 말을 하기에는, 나는 너무 울타리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렇게 유명세를 얻어서 각 분야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었다.

나를 성장하게 한 것은 늘 사람들이었으므로.

(나의 욕망을 마주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것은 출세욕이었다.)


그런데, 에세이를 쓰려면 우선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일개 직딩 완벽실화??!

(일개라고 하기에는 좋은 일개미이긴 하다.)


작가부터 되려고 소설쓰기를 몇번이나 시도했지만

짜임새 있게 긴 이야기를 못 쓰는 것은 나의 오랜 컴플렉스였다.

억겁의 빈 종이 앞의 막막함.

(핑계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냥. 에세이 쓰면 어떨까?

그닥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도?

(누가 쓰지 말래? 그래서 쓰기로 했다.)


* 회색 글씨는 이 글을 쓰면서 첨언했다. 원문이 너무 발칙해서 꼴 보기 싫더라.







인스타그램 스토리 포스팅이라니..

어이없는 한 보일지 모르겠지만,

온갖 얌전한 척이나 욕망에서 초월한 행세를 하다가

비로소 나의 컴플렉스와 욕망을 사회적으로 쌓아온 지인들 앞에 까발렸다.






청개구리 내면이 내게 해준 말의 첫번째 실천이었다.

L.C.L.A!  

*L.C.L.A: 불어를 어차피 읽을 줄 몰라서, 나 혼자 줄임말을 만들었다. 장 폴 사르트르의 “L'enfer, c'est les autres!”의 줄임이다.



이제 시작이야.








안녕하세요.

브런치북 프로젝트 마감이 내일입니다.

더듬더듬 적어놓은 글을 오늘부터 완성해서 발행할 예정입니다.


저의 벼락치기로 구독자분들의 알림이 성가실 수 있을 것 같아요.

휴식의 주말이 방해되지 않았으면 하는데요.

제가 직접 알림을 꺼드릴 수도 없고 참 마음이 어렵네요.

모쪼록 상황이라도 전달드려 놓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재치'카드라도 함께 첨부해요.


고맙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