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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누리 Oct 21. 2023

Test 1.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조회수의 절반은 나였다.

나는 유투브에 글을 연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결국 이야기꾼이 되고 싶은 거라면

  그렇게라도 메시지를 전하는게 낫지 않겠어?

  나를 발견하는 사람들도 더 많아질 것이고 말이야.


실천에 옮겨야지.

구글 부계정의 비밀번호를 찾아내었다.

바야흐로 개인 브랜딩의 시대 아니겠나.

멋드러진 이름을 지어야 사람들에게 더 잘 소비되겠지

(오만이다.

일단 소비될 것이라는 가정 자체가 잘못되었다.

적당한 것으로 짓고, 소비된 다음에 바로잡아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이름짓기는 왜 그렇게 재미있을까?

시험공부 전에 청소하느라 진빠지는 중고등학생처럼

채널명을 한참 골똘하면서 도파민에 빠졌다.


나누리에세이 "수정"

나누리의say "수정"

나누리 작가  "수정"

나누리자까  "수정"


키득키득 웃으면서 B급 감성으로

일부러 "나누리자까"로 오타를 내어 이름을 설정했다.


빤히 보고 있으니, 역시 구관이 명관이다.

처음 설정한 "나누리에세이"가 담백하니 가장 좋겠다고 생각하여 수정한 그 순간,

너무 많이 이름을 바꾸어서, 2주간 이름을 바꿀 수 없다는 붉은 글씨가 출력되었다.


- 늘 나의 걸림돌은 나이구나.






'나누리자까' 계정이다. 다시 보니, "니뉴리자까"구나.



나는 구글로부터

이름을 그만 바꾸라는 제재를 받았고,

새로운 아이디를 만들 에너지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자의반타의반으로

그냥 원래 쓰던 구글 본계정 "Nuri Na"에 첫번째 영상을 업로드했다.



제목: Test1

내용은 담백하게 구성했다.

"성수동에 이사 와서 달라진 점"

1. 만나는 사람이 달라졌다.

2.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자타공인 인터넷 중독이라

수도 없이 본 숏폼들을 참고해서

쿨하게 찍어봤다.


는 개뿔.

처음 찍은 것 처럼 올렸지만

저 비디오의 이전에

비슷한 비디오를 여섯번은 더 찍었다.


무심한 각도인 척 했지만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나도 내게 거부감이 들지 않는

내 얼굴의 각도를 찾았다.


가만히 말만 하려니

손을 어쩔 줄 모르겠어서

평소에 화상미팅하듯이 키보드로 타자치는 척을 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찌질한 고백인데,

조회수가 그냥 생긴 것 처럼 했지만

몇개는 내가 "나뉴리자까" 계정으로 들어가서, 요샛말로 스트리밍 돌렸다. (라이크도 눌렀다.)

초기 조회수의 절반은 나였다.



유투브는 브런치와 달랐다.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조회수가 올라왔다.


4시간만에 조회수는 50을 찍었다.

나는 마치 블랙핑크 제니가 된 기분이었다.

- 50명이나 내 이야기를 들어주다니..!

글을 발행했을 때는 이삭줍기하듯

매일 다섯개씩 열흘은 모아야 하는 조회수였다.

(이렇게 말하니, 내 브런치가 너무 인기없어 보인다.

그건 사실이 맞다.)



다음날 나는 "Test 2"를 찍기 위해,

주변에 조언을 구했다.

- 나 유투브할건데, 내가 어떻게 하면 잘 될 거 같아?


조언은 다음과 같았다.

1. 얼굴을 보이지 말라

2. 말을 하지 말라

3. 너 특유의, 삼라만상 지식과 철학을 풀어라



나는 귓등으로 듣기 전문가다.

3번만 참고하였다.

주체적이기로 했으면 주체적인 스타일로 밀고나가야지.


결국 이 브런치 글이나 다름없는 내용을 그저 영상으로 찍고 있다.

차이점이라면 훨씬 다정하게 말한다.

나는 문체보다는 어투가 다정한 편이다.


(그게 장점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의 독자들은 이런 시니컬한 시선을 좋아해주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얼굴이 보이는 매체에서 나를 보호하기에는 더 좋은 습관인 것 같다.)



나는 스무개까지는 의식의 흐름대로 찍어보기로 했다.

대중의 취향의 온도를 피부로 마주해야지.


이내, 50까지 올랐던 "Test 1"의

(내 기준) 조회수 폭주는 금세 멎었다.

이후로 50-100 정도의 숫자만이 나를 반겼다.


심지어 크리에이터용 "유투브 스튜디오" 앱에서는

사람들에게 노출된 것 대비 내 콘텐츠의 조회율이랄지

실제로 내 콘텐츠를 몇분이나 지속해서 시청했는지가

적나라하게 수치화되었다.

조회수를 잡았다 하더라도, 비디오의 절반의 절반도 안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책으로 비유한다면,

책장에서 선택받을 확률이랄지

책을 구입한 사람이 실제로 책의 내용을 읽었는지 여부나 (나는 허영으로 책을 구매하기도 해서 뜨끔한다.)

구매자 중 중고판매한 사람들의 비율

같은 것이 저자에게 날아오는 꼴이다.





숫자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진정으로 경쟁이구나.

나는 비디오 콘텐츠의 매대에 나를 올렸다.

- 팔려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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