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준비를 하면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던 말이자 내가 정말 싫어했던 말이다. 인생에 한 번뿐이라는 말은 모든 것을 합리화하고 무력화하는 말이다. 플래너나 업체 사장들은 '인생에 한 번 뿐'이라는 말로 예비 부부를 살살 꼬신다. 그 말을 들으면 '에이 그래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런걸 해보겠어!'라는 생각이 들면서 예정에 없던 지출을 너무나도 쉽게 하게 된다.
결혼식, 아마도 인생에 한 번뿐인 날이며 아주 특별한 날이기도 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부부의 연을 맺는다는 것을 가족, 친구, 지인들 앞에서 사회적으로 공인하는 날이니 중요한 날인 것은 맞다. 하지만 겨우 30분 남짓의 결혼식을 위해 몇천만원을 태워야 할 이유가 있을까?
대부분의 예비 부부들은 사회생활을 하며 모아둔 돈을 결혼 준비에 몽땅 태운다. 쓸 수 있는 돈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결혼 준비를 시작할 때부터 예산을 세우고 돈을 쓸 곳과 안 쓸 곳을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기준을 정하지 않는다면 결혼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어영부영 여기저기에 돈을 펑펑 쓰게 된다.
나는 처음부터 예물, 예단, 한복, 폐백, 결혼 앨범 추가비용, 야외 촬영, 고가의 프리미엄 드레스, 헤어변형 등 불필요하다 생각하는 것들은 과감하게 버렸다. 욕심이 없기도 했고 이런 것들에 돈을 쓰는 것보다는 차라리 가전 가구나 신혼여행에 투자하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확고한 나만의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플래너나 업체 사장들이 아무리 내 옆에서 '인생에 한 번 뿐인 날'을 외쳐도 다 무시할 수 있었다.
결혼식 당일은 1년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 준비한 것이 허무해질 정도로 한 순간이었다. 그 날을 위해서 수많은 것들을 준비했지만 정작 결혼 당사자인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 홀 내부가 어떻게 꾸며져있는지, 준비한 식전 영상은 잘 나오고 있는지, 포토테이블은 잘 놓여져있는지 그 어떤 것 하나 확인할 수가 없었다. 본식이 끝나고 1~2달 뒤 스냅 사진 원본을 받고 나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기껏 돈 들여서 찍은 스튜디오 사진은 본식이 끝난 이후로는 보지도 않는다. 스튜디오 앨범 역시 수령한 당일에만 한 번 펼쳐보고 바로 창고행이었다. 본식 사진과 영상은 가끔씩 보곤 하지만 이 역시도 1년만 지나도 안 볼게 뻔하다.
결혼식이 끝나고 몇 달이 지난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아도 남편과 나 모두 결혼 준비 과정에 후회가 없다. 만약 내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인생에 한 번 뿐'이라는 가스라이팅에 휘둘려 생각이 없던 항목들에 돈을 썼다면 집을 구하는 지금 시점에 땅을 치고 후회했을 듯 하다.
결혼식 준비 말고 진짜 결혼 준비
지금의 결혼 문화는 결혼'식'에만 지나치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결혼의 사전적 의미는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음'이다. 결혼식은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자리이다. 그래서인지 결혼 준비 과정은 결혼식을 어디에서 할 건지, 사진은 어디서 찍을 건지, 드레스는 뭘 입을건지, 예물을 뭐로 할 건지 등등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에 가깝다.
하지만 결혼식은 기껏해야 1시간 남짓의 짧은 시간이다. 화려한 결혼식, 화려한 드레스, 행복해 보이는 신랑신부의 모습이 중요한게 아니다. 정말 중요한 건 둘이 앞으로 남은 평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다.
결혼식을 어떻게 할 것인지, 가전 가구는 뭘 살건지, 집은 어떻게 구할 것인지 이런 것들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건 결혼 후의 삶이지 않을까. 결혼식은 인생에 한 번밖에 없는 날이지만 결혼은 반평생이다. 앞으로 나와 평생을 함께 할 배우자와 가족이 될 준비, 서로 맞춰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야 말로 진짜 결혼준비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