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찐테크 Oct 23. 2023

아니 산다고 하셨잖아요


호가를 2천만원 내리고 장마철이 끝나자 신기하게도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둘 다 직장인인지라 집에 사람이 없는 평일 낮 시간에 집을 보러 오는 경우가 꽤나 있었는데 급했기 때문에 비밀번호를 알려주고서라도 집을 보여줬었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예비 신혼부부 아니면 갭투자를 생각하는 5~60대였다. 예비 부부와 갭투자자 모두 시간이 많고 급하지 않은데다 비교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다보니 쉽게 매수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한 아주머니가 집을 보러왔다. 그 날도 집에 사람이 없어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집을 보여줬었다. 금요일이라 일찍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아까 집 보고 가신 분이 남편분이랑 한 번 더 보고 싶다 하는데 집에 있어요?"



집을 두 번 본다는건 살 생각이 꽤나 있다는거 아닌가?들뜬 마음에 후다닥 집을 치우고 손님을 맞이했다. 집을 보면서 굉장히 마음에 들어하셨기에 잘 하면 팔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집을 보고 나간 후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매수 의사는 확실히 있는데 주말 동안 자금 계획을 생각해보고 연락을 준다 했다. 와 이거 진짜 팔리려나 보다 싶어 희망회로가 타들어갔다.



월요일 오전,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조금만 깎아주면 사겠다고 한다. 이럴수가. 진짜 산다고?? 믿기지 않았지만 일단 금액 조정을 1천만원 했다. 그런데 매수자가 원하는 금액은 2천만원을 깎은 금액이었다. 이땐 우리가 덜 급했는지 그렇게까지 매수자에게 다 맞춰주고싶진 않았다. 애매하게 3백만원을 더 내린 금액을 제시했다. 매수자는 총 1,300만원을 내린 금액에 오케이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다른 B 부동산에서 2,500만원을 깎은 가격에 사겠다는 사람이 있다고 연락이 왔다. 이미 매수 협의를 하고 있는 상대가 있었기에 우린 콧방귀를 뀌면서 거절했다.



예비 매수자는 우리 집에 전세를 세팅할 생각이었다. 샷시 수리가 안 된 집이었기에 전세 세팅 전에 샷시 수리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추가로 세탁실 확장도 이야기했는데 집 구조상 세탁실 확장은 불가능한지라 뭐지 싶었지만 본인이 하겠다니 별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매도 금액과 잔금일, 각종 특약사항들이 거의 확정이 되어가나 싶었는데 갑자기 사지 않겠다고 말을 바꿔버렸다. 계산해보니 영 자금이 안되고 전세 맞추는게 힘들거 같아서 안 사겠다는거였다. 그때 느낀 허탈감이란.. 협상이란 협상은 다 해놓고 마지막 순간에 안하겠다 하니 맥이 탁 풀리면서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다음날 B 부동산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집이 팔렸냐 묻더니 매수자가 샷시 교체와 세탁실 확장을 해야 한다 하는데 중개사가 우리 집을 볼 수 있냐는거였다. 매수자가 우리 집을 본적 있냐 물으니 없다 했다. 아니 집을 본적도 없는데 세탁실 확장이 웬말이지? 거기다가 여태껏 집을 본 사람 중 단 한명도 세탁실 확장을 이야기한 사람이 없었다. 애초에 집 구조상 세탁실 확장은 불가능했다. 세탁실 확장을 이야기한 사람은 매수 직전에 포기한 그 사람 하나였다.



결국 찔러보기였다. 이 부동산 저 부동산에 다 찔러보고 매도자인 우리가 안달나서 본인이 원하는 가격대로 훅 깎을 생각이었나 싶었다. 그 뒤로 한두번 더 연락이 왔지만 그 가격에 팔 생각은 없다 했다.



다 끝났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엎어질 줄이야. 그 덕에 그 뒤로는 누가 집을 보러 오더라도 희망회로를 돌리지 않게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