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둘 다 직장인이라 평일엔 집에 없었고 퇴근도 늦다보니 집을 보여주기 어려웠다. 그나마 집을 보여줄 수 있는건 주말이었는데 부동산이토요일에 격주로 쉬어서 주말에 오는 손님보다 평일에 오는 손님이 더 많았다.
집을 보러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워크인이었다. 물론 우리 집을 콕 집어서 보고 싶다고 약속을 잡고 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갑자기 부동산에서 전화가 와선 지금 손님 왔는데 집을 좀 볼 수 있냐 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평일 낮 시간, 집에 사람이 없고 우린 빨리 집을 팔고 싶은 입장이었으니어쩔수없이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집을 보여주는 일이 많았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점점 잦아졌고 몇몇 부동산 사장님들은 빈집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걸 너무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다.마치 우리 집이 '보여주는 집'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도 집을 보러 가면 중개사가 우리가 예약한 집 외에 다른 집도 더 보여주는 일은 늘 있었다. 하지만 매수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런 매물은 애초에 관심 대상이 아니지 않나 싶었다.
특정 매물을 콕 집어서 보여달라 하는 이유는 그 매물이 예산대에 맞고 층이나 동, 향 등이 마음에 들어서이다. 물론 간혹 중개사가 임장 당일날 보여주는 물건이 괜찮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우리 예산대에 맞지 않거나 집 컨디션이 좋지 않아 굳이 매수까지 생각하진 않게 된다.
이제 워크인은 받지 말까?
고민이 됐다. 워크인 손님을 매몰차게 거절하기엔 우린 빨리 집이 팔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워크인 손님이 적극적으로 매수 의사를 표한 적도 거의 없었다.
정말 관심이 있다면 처음부터 약속을 잡고 왔을테고 갑자기 오더라도 지금 볼 수 없다하면 나중에라도 약속을 잡고 올거라는게 우리의 판단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청소를 신경쓰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아무리 청소 상태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하더라도 집을 보여주는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였다. 워크인 손님을 대비하기 위해 매일 아침 바쁜 출근 준비 와중에도 집을 치워야하는 것도 일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그 중에 매수자가 있을 수도 있는데 안보여주는게 맞나.. 판단이 안 서는 와중에 또다시 손님이 왔으니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가서 집을 보겠다는 부동산의 연락을 받았다. 안그래도 그 부동산은 빈 집에 들어가는걸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데다 친절하지도 않아서 매물을 거둘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이제 더 이상은 사람 없는 빈 집에 와서 보는게 부담스러워서 보여주기 싫다고 말해버렸다. 집을 보려면 약속을 잡고 오라고도 얘기했다. 그랬더니 중개사는 나중에 다시 오라고 하면 손님들이 안 온다면서 짜증 아닌 짜증을 냈다.
오히려 그 말을 듣고나니 더더욱 집을 보여주기가 싫어졌다. 집주인 시간에 맞출 생각도 없는 사람이 집을 사겠어?어차피 안 살 사람한테 뭐하러 비번까지 알려주면서 집을 보여줘야해?란 생각이 들었다.
집을 보러 오는게 스트레스라니
한편으론 이런 상황이 웃겼다. 불과 한두달 전까지만 해도 보러 오는 사람이 없어서 스트레스였는데 이젠 너무 많이 보러와서 스트레스라니.
그래도 없는것보단 많은게 낫지 싶으면서도 더 이상은 빈 집을 보여주기 싫었다. 그 이후로는 부동산에서 워크인 손님 연락이 오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나중에 약속을 잡고 오라고 했다. 그러면 절반 정도는 다시 약속을 잡고 왔다. 그러다 딱 한 명, 임자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