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껏 한번도 집을 보러 온 적이 없던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오늘 집을 좀 볼 수 있냐는 연락이었다. 워크인 손님에 질렸던 우리는 집에 아무도 없고 금요일 오전 아니면 주말밖에 시간이 안되니 약속을 잡고 오라고 말했다. 그렇게 4일 정도 뒤로 약속을 잡았는데 갑자기 우리 일정에 맞춰 금요일 오전에 오겠다고 했다. 어차피 그 날은 남편이 집에 있는 날이었기에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집을 보러 오기로 한 날 오전, 예비 신혼부부가 집을 보러 왔다. 그날 남편은 휴가였고 나는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었다. 집을 보고 간 후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여태까지 집을 본 사람들 중에선 가장 꼼꼼하게 이곳저곳 보고 부모님께 보여드린다고 사진도 찍어갔다고 했다. 잔금일이나 매매 가격 조정까지 어느정도 하고선 대출이 되는지만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연락을 준다고 했다.
에이 역시나 또 불발인가보다 싶었다. 어차피 바로 그 다음날 오전에 집을 보러 온 다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기에 안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었다. 약 3시간 정도 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 집 산다는데?
심장이 쿵쿵거렸다. 정말로? 진짜로? 오늘 집 처음 봤는데 고민도 안하고 3시간만에 산다고? 그럼 내일 집 보러 오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하지? 괜히 중간에서 간 보다가 이도저도 아니게 될까봐 고민이 되었다. 회사 일은 바쁜데 일은 하나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매수자는 자금 여력이 좋지 않아 중도금을 많이 낼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이 최대로 낼 수 있는 건 계약금과 중도금을 합쳐 15% 정도였다. 계약금이 10%이니 집값의 5%만 중도금으로 내는 셈이었다. 우리도 이사를 가려면 매수자에게 받은 돈을 보태서 이사갈 집의 중도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중도금은 많이 받을 수록 좋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다음날 집을 보러 오기로 한 부동산에 연락을 했다. 지금 계약하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혹시 예비 매수자가 중도금을 많이 낼 수 있는지 확인을 해달라고 했다. 아쉽게도 그쪽 역시 자금 여력이 좋지 않다고 했다. 그렇게 그 다음날 집을 보러오기로 한 사람은 약속을 취소했다.
가계약금을 받았다
그 날 저녁, 부동산에 다시 전화를 걸어 매도 의사를 밝혔다. 가계약금을 받기 전 복비 협상까지 마쳤다. 부동산에서 계약 진행에 관한 문자를 받고 계약서 쓰는 날짜까지 정했다. 가계약금을 받았지만 실감이 나진 않았다. 집을 보고 간게 불과 몇 시간 전인데 하루만에 이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진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계약서를 쓰기 전까지 우리는 특약 사항 작성 방법과 계약금 배액배상 등 계약에 관한 것들을 미친듯이 찾아봤다. 매수자가 자금 상황이 좋지 않고 대출 의존도가 높다보니 과연 잔금을 잘 치룰 수 있을지도 많이 걱정되었다. 혹시라도 잔금을 치르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주말 내내 엄청나게 찾아봤었다. 이런 것 좀 미리미리 알아둘걸 후회가 되기도 했다.
진짜로 팔렸다
그렇게 며칠 뒤, 계약서를 작성하는 날이 되었다. 칼퇴 후 빠르게 부동산으로 향했다. 계약서 작성은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계약서에 적힌 내용들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도장을 찍고 마침내 매도 계약이 체결되었다. 부동산 매매 계약서를 품에 안고 부동산을 나오는데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매수자가 집을 보고 계약서를 작성하기까지 불과 4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마저도 휴일이 껴있었기에 휴일을 제외하면 2일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5개월 동안 집이 팔리지 않아 그렇게 마음 고생을 했는데 집이 팔리는 건 이렇게 순식간이라니. 약간은 허무하기도 하고 속이 후련하기도 하고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집이 팔렸지만 우리에겐 더 큰 숙제가 남았다. 바로 이사 갈 집을 찾는 것. 매수는 매도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