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021년 부동산 시장을 가장 크게 달궜던 키워드인 GTX. GTX 노선이 지나가는 지역들은 호재에 힘입어 엄청난 가격 상승을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시장이 침체되면 이러한 호재는 집값에 큰 힘을 실어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낙폭을 더 키우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GTX와 같은 교통망 신설이나 재건축, 리모델링 같은 이슈들은 매매가에 '희망'을 얹어주는 호재이다. 매매가는 실거주가치에 미래가치라는 꿈을 얹은 가격이다. 부동산의 실제 거주 가치는 전세가에 반영되어 있다.
GTX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먼 미래의 일이지만 만약 실현된다면 해당 지역의 교통 편의성을 비약적으로 높여줄 수 있다. 그 꿈의 가치에 프리미엄을 얹어서 매매가 거래되는 것이다. 하지만 전세는 다르다. 아무리 미래에 GTX가 들어온다 한들 지금은 출퇴근이 편도 한 시간 반이 넘는 교통이 불편한 지역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가는 현재의 실거주가치를 반영해서 낮게 형성되어 있다.
GTX노선은 현재 A노선만 착공되었고 B,C노선은 언제 착공될지 미지수이며 D노선은 김부선 이슈로 착공이 과연 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최근 정부에서 GTX노선의 조기 개통을 주문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워보인다.
B노선의 경우 정부가 예산을 삭감한데다 재정구간 입찰에 건설사 참여율이 저조해 유찰되면서 사업자 선정이 계속해서 지연되고 있다. C노선은 도봉구간을 지하화하는 기존 사업계획과 달리 지상으로 변경하면서 주민 반발이 심해 미뤄지고 있다. 만약 원안대로 지하화를 한다면 공사비 부담도 더 늘어나고 실시협약, 실시설계, 승인 절차가 모두 뒤로 미뤄지면서 착공 자체가 지연될 수 밖에 없다.
이미 착공한 A노선 역시 조기완공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공사기간을 줄이려면 공사비 증액이 필요한데 국토교통부에서 공사비 증액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리고 A노선 입찰 당시 이미 최저 공사기간으로 사업을 따낸 것이기 때문에 통상적인 공기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공사기간을 줄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GTX 호재로 2020년에 집값이 크게 뛰었던 곳들의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현재 교통이 썩 좋지 않은 지역이라는 것이다.
GTX호재로 엄청난 상승을 보여줬고 최근에는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는 동탄, 운정, 인덕원의 주요 단지들 실거래가이다. 천장이 없는 것처럼 가파르게 상승하던 곳들이 지금은 20년 하반기의 가격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최근 1년간의 실거래가 변동을 보면 운정과 인덕원은 18%, 동탄은 30%나 빠졌다.
이 지역들의 또다른 공통점은 매매가에 비해 전세가가 한참 낮다는 것이다. 인덕원 대우는 최고점이었던 21년 8월 즈음에 전세가율이 43%였고 현재는 전세가율이 60%이다. 동탄은 21년 8월 전세가율이 33%였고 현재는 38%로 아직도 매전갭 차이가 매우 크다. 3곳 모두 전세가가 3억후반대인데 매매가는 11억이 넘는다. 물론 전세가는 계약갱신청구권 매물과 섞여있긴 하지만 신규 계약 전세가 5억대라고 해도 전세가율이 50%가 채 되지 않는다.
그나마 인덕원은 지하철 4호선이 있기 때문에 강남까지 30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아 이들 지역 중에서는 현재 교통이 가장 편리하다. 하지만 동탄이나 운정은 지하철이 없다. 서울로 출퇴근을 하려면 광역 버스를 타거나 자차를 이용해야 하는데 1시간 이상 걸린다. 문제는 자차의 경우 지옥같은 러쉬아워를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고, 버스는 배차간격이 너무 길다는 것이다.
신도시의 버스 배차로 네이버에 검색해보면 거리두기 해제 이후 버스 배차가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 더 늘어나서 출근이 지옥같다는 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특히나 빨간버스는 입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리가 날 때까지 무한정 대기해야 한다. 배차간격은 20분인데다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다보니 출근만 2시간씩 걸려 남들보다 일찍 출발해도 늦게 도착한다. 지금과 같은 불편한 교통이 전세가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셈이다.
GTX가 개통되면 사정이 나아질 수는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건 절대로 GTX가 수도권 지하철 1~9호선과 같은 효용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현재 공개된 GTX-A노선의 운임체계이다. 통합환승할인제를 적용해 이용수단과 상관없이 이용거리에 비례해 요금을 부과하고 사후 정산한다. 총 이용거리 10km까지는 기본운임을 적용하고 10km를 초과하면 5km 당 100원의 추가요금을 부과한다. 단, GTX는 민자구간이 들어가기 때문에 별도의 추가요금이 또 붙는다.
위와 같은 운임체계 하에서 동탄에서 강남역까지 간다면 경기버스-GTX-수도권전철 3번 환승 기준 하루 편도 4,500원 왕복 9,000원의 교통비가 든다. (동탄역이 신설된다 하더라도 실제 동탄역 역세권 아파트는 얼마 없기 때문에 경기버스를 타고 역까지 이동해 GTX를 타야 한다.) 한 달 교통비가 18만원 정도 수준이라 생각보다 싼데?라는 생각이 들지만 문제는 이게 확정 운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통합환승할인제는 지자체와 각 기관들이 운임을 정산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지자체 협력이 필요하다. 현재 안보다 더 비싸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민자 구간이 있기 때문에 개통 이후에 운임이 점점 비싸질 수도 있고 구간마다 추가요금을 차등할 수도 있다. 신분당선을 예로 들면 신사-판교는 2,950원, 신논현-판교는 2,850원, 강남-판교는 2,350원으로 출발지에 따라 요금이 차등 부과된다.
물론 교통비가 아무리 비싸도 지금처럼 편도 2시간 걸리는 지옥같은 출퇴근 길을 43분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면 그 정도의 교통비는 충분히 지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GTX 역을 도보로 이용할 수 있는 초역세권 단지는 얼마 없기 때문에 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들은 또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해 GTX를 타야 한다. 지금보다는 낫지만 교통이 비약적으로 편리해졌다고 하기엔 단지마다 편차가 큰 것이다. GTX의 배차 간격 역시 1~9호선보다는 뜸할 것이기에 역시 한번 지하철을 놓치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부동산 시장이 과열됐을 때는 이런 호재가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무럭무럭 키워 집값을 뻥튀기하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시장이 침체될 때는 거품이 빠진다. 물론 지금 시장에서는 반포, 잠실 등 주요 지역들도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지역들의 집값이 빠지는 것이 단순히 GTX 때문만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GTX가 사람들의 꿈을 너무 많이 키웠고, 지금은 그 꿈이 점점 작아지면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동산을 볼 때 호재 하나만 보면 안된다. 호재는 하락장에서 큰 힘을 쓰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