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새해 목표는 없습니다

by 찐테크


MBTI 검사를 하면 J 성향이 거의 90%에 육박하는 나는 항상 새해가 되면 새해 목표를 세웠다. 상반기가 지나면 얼마나 목표를 달성했나 회고하고 연말이 되면 처음 세운 목표 중 이룬 것들과 이루지 못한 것들을 점검하고 또다시 거창한 새해 목표를 세웠다. 나에게 새해에 목표를 세우는건 너무나도 당연한 연례행사였다.



이런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건 평소 친하게 지내던 회사 선배였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새해 목표를 세운 나는 선배에게 "선배는 올해 목표가 뭐에요?"라고 물었다. 운동하기, 독서하기 등 의례적인 새해 목표들이 대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전 새해 목표 같은거 안세워요."



시간이라는건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개념이고 12월 31일에서 1월 1일이 되었다고 달라지는건 아무것도 없는데 새해가 되었으니 다시 새로운 목표를 갖고 새롭게 태어난 자세로 새해를 맞이해야 한다는게 너무 이상하다고 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새해가 온다 해도 내 삶이 변하는건 없다. 새해가 된다고 해서 내가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냥 나고 어제와 같은 일상을 계속해서 살아갈 뿐인데 왜 새해가 되었다고 해서 달라져야 하고 왜 새로운 것을 해야 하는걸까. 2023년 1월이 되어도 나는 어제와 똑같이 회사로 출근하고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사람들과 함께 똑같은 일을 한다. 이직이나 팀 이동 등 일신상의 변화가 생기기도 하지만 내가 처한 상황이 달라질 뿐 나라는 사람 자체가 달라지는건 아니다.



몇 년 간 책 한 권 들춰본 적이 없는데 일주일에 한권씩 책을 읽어야겠다거나, 몸 움직이는걸 죽도록 싫어하는데 올해는 꼭 다이어트에 성공해야겠다며 매일 운동을 하겠다거나 하는 것들은 당연히 실패할 수 밖에 없다. 그 목표를 세운 동기가 내가 정말로 책을 읽고 싶어서, 운동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새해가 되었으니까, 새해에는 뭔가 달라져야 할 것 같으니까, 새해에는 다들 목표를 세우니까 남들 따라서 똑같이 세운 목표이니 성공하기 쉽지 않다. 책을 읽을거라면, 운동을 할거라면 목표를 세운 지금 이 순간부터 하면 되는데 왜 꼭 새해여야 할까.



그리고 보통 새해 목표는 거창하다. 책을 1년 동안 1권이라도 읽자는 목표는 목표라고 하기엔 뭔가 부끄럽다. 목표라고 하면 뭔가 달성하기 어렵고 그래서 달성했을 때 성취감도 큰 무언가여야 할 것 같다. 나는 늘 카테고리별로 나눠 나노 단위로 새해 계획을 세워왔다. 대학생 때는 학점, 대외활동, 구직활동 등등.. 취업을 한 후에는 자기계발, 운동, 금전, 블로그 등등.. 그리고 그 계획들은 내 의지만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 한들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을 수도 있고 취업이 안 될 수도 있다. 애초에 내 의지만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목표로 하다보니 실패했을 때 더 큰 좌절감을 느꼈다.



목표를 달성했을 때도 성취감과 기쁨은 잠깐 뿐이었다. 그 뒤에는 왠지 모를 허무함이 밀려왔다. 아마도 그 다음 스텝이 정해지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또 다시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목표를 세우고, 내 자신을 채찍질하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좌절하거나 달성해도 또다시 왠지 모를 허무함을 느끼고 다시 또 목표를 세우고.. 이걸 수도 없이 반복해왔다. 웃긴건 그렇게 수없이 많은 목표를 세우고 달성했음에도 한 해를 돌아보면 한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분명히 뭔가 꽤 많이 했고 아등바등 살았던 것 같은데 한 해가 지나 되돌아보면 여태 이룬 것들이 별 것 아니어 보였다.



왜 이렇게까지 나는 목표에 집착하는걸까. 초중고 시절엔 내가 목표를 세우지 않아도 '공부'와 '성적'이라는 사회가 준 지향점이 있었다. 대학생 때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여전히 학점, 취업 등 사회가 요구하는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취업을 하고 나니 매일 회사-집만을 반복하는 똑같은 무료한 일상이 반복됐고 그 안에서 내가 무언가를 억지로라도 찾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래서 이직을 해야지, 1년에 얼마를 모아야지, 언제 내 집 마련을 해야지 등등 또 다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목표들을 세웠다. 이제는 그 목표들이 내 마음대로 이뤄질 수도 없고, 설령 이뤄진다 해도 기쁨은 잠시 뿐 또 다시 불안해할거란 걸 안다.



그래서 올해는 목표를 세우지 않기로 했다. 그냥 흘러가듯이 살면서 그 순간 순간 내 앞에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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