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맥주의 세번째 배럴시리즈는 '초콜릿 맥주'라고?
좋은 술에는 언제나 기다림이 녹아있다. 명절에 집에 내려가면 찬장에서 날 맞이했던 아빠의 술이 그랬다. 저 술을 아빠가 마신 적은 있었던가?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자 아빠는 말했다. 좋은 술은 좋은 날에 마셔야지. 그게 무슨 소리야.
하지만 내게도 그런 술이 있다. 겨울을 맞아 제주맥주에서 나온 '배럴시리즈'다. 매년 컨셉에 따라 나오는 제주맥주의 고급스러운 맥주라인이다. 맥주라 부르기도 미안한 정성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좀처럼 손이 가지 않았다. 크리스마스가 오면 마셔야지, 연말이 오면 마셔야지, 새해를 기념해서 마셔야지.
사건은 어느 오후에 벌어졌다. '뻥' 코르크 마개 빠지는 소리와 함께 짙은 초콜릿 향이 마시즘 사무실에 퍼져나갔다. 짙게 내려앉은 스타우트 향기 위에 초콜릿의 느낌. 자린고비의 굴비처럼 마시즘 책상 한편에 있던 그 맥주가 개봉되고 말았던 것이다. 대체 왜 뚜껑을 연 것인지, 누군가의 생일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일단 마십시다."
제주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제주위트에일'보다 기다리는 맥주가 있다. 매년 겨울에 나오는 배럴시리즈다. 우리가 흔히 흑맥주라고 말하는 스타우트 맥주를 위스키 배럴(오크통)에 숙성한 제품이다. 첫 번째는 하이랜드 파크 위스키를 12년 숙성한 배럴에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숙성했다. 그다음 해에는 블루보틀과 콜라보를 하여 커피의 산뜻함 느껴지는 스타우트를 만들었다. 등장과 동시에 완판을 했던 맥주였다.
이번은 3번째다. 그리고 이번 배럴시리즈의 콜라보는 '삐아프(Piaf)'다. 이곳은 서울 가로수길의 수제 초콜릿 숍이다. 마치 프랑스의 초콜라티에 장인이 만든 초콜릿 같은 고급스러운 맛과 매장 내의 디자인과 경험적인 부분까지 너무나 마음에 드는 곳이다. 짙고 고소하고, 달콤한 맛을 내는 제주맥주 임페리얼 스타우트에 너무나도 어울리는 파트너다. 맥주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초콜릿 맥주라고 소개하면 좋다.
아, 알았다. 이 맥주... 이거 밸런타인데이에 마시려고 내가 이렇게 기다렸던 거구나. 어쩔 수 없지.
맥주를 잔에 따라본다. 짙은 고동색의 음료가 잔 위로 쏟아진다. 그 위로 잔잔하게 거품들이 쌓여가며 고소하고 달콤한 향기를 내뿜는다. 평소에 편의점에서 맥주를 자주 마셨던 사람에게는 낯선 모습과 향기다. 때문에 마신 누군가는 말했다. "이거 맥주 아닌데?"
맥주를 황금색으로만 아는 사람, 시원하게 마시는 사람에게는 낯선 비주얼이다. 맥주에서는 다크 카카오 초콜릿 향기가 나고 약간 상큼한 향기도 느껴진다. 첫맛에서 과하게 달콤하지 않아 좋다. 상큼한 맛도 느껴지는 게 신선한 장인의 초콜릿을 만난 기분이다. 그리고 알알하게 마무리...는 아 이 맥주 도수가 11%가 넘는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맥주는 아니다. 제주맥주 배럴시리즈 삐아프 에디션은 이런 맥주가 처음인 초보자들에게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균형감 있는 맛을 내고 있다. 또한 높은 도수에도 부드럽게 목에 넘어간다. 성인이라면 남성, 여성 가릴 것 없이 좋아할 맛이 난다. 아! 물론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끝까지 즐기고 싶은 매니아들에게는 조금 심심한 친구일 수도 있겠다.
제주맥주 배럴시리즈를 맛보며 흥에 겨운 사람들끼리 여러 이야기가 오간다. 무엇이 더 어울릴지로 음식을 토론하기도 하고(개인적으로 초콜릿이나 과자, 디저트류가 좋았다), 언제 누구와 마시고 싶다는 이야기가 오간다. 어느덧 이 자리는 맥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하는 자리가 되었다.
발렌타인데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열려버린 맥주지만 후회는 없다. 좋은 날을 기다리면서 참고 있는 술도 좋지만, 좋은 술을 마셔서 그 자리가 특별해지는 날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매일 같이 마시는 것 대신에 조금은 특별한 무언가로 오늘 하루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 추신 : 뚜껑이 코르크라... 아니 너무 맛있어서 결국 다 마시고 말았다. 그런데 제주맥주... 이 배럴시리즈는 3차까지 다 판매가 되었는데 발렌타인데이에 재오픈을 해주면 안 될까..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