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병부터 NON-GMO PROJECT인증까지, 테라 연대기
세상은 독특함을 주목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진실한 녀석뿐이다.
아 물론, 이것은 맥주 이야기다
솔직히 말하겠다. 편의점 맥주의 시대가 열리고 나서 마시즘은 '세상에 없는 다양한 맛의 맥주'들이 생기길 바랐다. 그것이 한국맥주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그런데 왜 다양하게 생기기만 한 맥주들만 보이는 거야?
‘본질’이 아닌 ‘껍질’에만 집중한 무분별한 맥주들에 속상한 마음이 들던 중 전화가 울렸다. 오랜만이지만 매일 보는 반가운 브랜드였다.
그곳은 '테라(TERRA)'다. 담당자는 테라가 원재료(전분) NON-GMO 인증을 획득하였다고 기쁘게 소식을 전했다. NON-GMO라니. '유전자를 변형한 작물'을 사용하지 않은 맥주로 인정받았다는 것은 소비자들 입장에서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데 맥주에서는 말이죠.
국내법상 맥주에는 NON-GMO 인증마크를 달 수 없다. 한때 수입되던 유럽맥주에 붙어있는 NON-GMO 인증마크조차 국내에서는 스티커로 가려야만 하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 기는 하지만, NON-GMO를 NON-GMO라고 부르지 못하다니!
하지만 동시에 기분이 좋아지는 소식이었다. "테라가 가야 할 길을 계속 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테라의 시작을 보면 이들이 왜 청정에 진심인지를 알 수 있다.
지금은 어딜 가도 즐겁게 테라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작은 굉장히 비장하고 긴장되었다. 2019년 출시 간담회에서 ‘필사즉생’의 각오를 말할 정도였으니까. 다행히도 시음평가들은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쏟아지는 해외맥주를 감당할 수 있을까?
봄날의 미세먼지처럼 뿌옇던 테라에 대한 전망은 곧 사라지게 되었다. 최단기간 100만 상자 출고를 기록하고, 100일 만에 1억병, 1년 만에 6억 8,000병을 판매했다. 지난해(2022년)에는 무려 10억병을 돌파하며 최고 판매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들은 한국에 없었던 초록색 병 때문이라고 말하고, 맥주의 맛이 좋아서라고 말한다. 느낌적인 느낌, 미각적인 느낌으로도 좋은 재료를 써서 만든 것임은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재료를 찾기 위해 2년간 세계여행을 다닐지는 몰랐지.
좋은 맥주를 만드는 필수조건은 좋은 재료(보리, 홉, 물 등)라는 것은 맥주순수령 시대부터 내려온 진리다. 하지만 맥주순수령도 좋은 농산물을 찾아 세계여행을 시키라고는 하지 않았다. 테라는 맥주에 들어갈 핵심재료 '맥아'를 찾는 데에만 2년 가까운 시간을 쏟았다.
그렇게 찾은 곳이 세계에서 가장 청정한 호주였다. 미세먼지 없이 깨끗한 공기, 적당한 강수량과 일조량, 그리고 비옥한 토양이 있는 곳을 찾아내었다. 국내 검사기준보다 200종은 넘은 잔존농약, 중금속 검사를 해서 고르고 고른 청정한 맥아의 마스터피스였다. 테라의 성공에는 이런 핵심컨셉에 맞는 재료를 찾기 위한 불철주야가 숨어있다.
심지어 지난 연말에는 그걸 넘어 단일 농장과 제맥소의 맥아로 만든 싱글몰트 맥주도 시도했을 정도다. 대중들은 뭔가 맛이 다르다!라고 느끼겠지만 매니아 입장에서는 이거 청정한 원재료에 미친(이 글은 하이트진로의 유료광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고집스러운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좋은 재료를 사용하면 좋은 맥주가 나올 수밖에 없는 두 번째 이유. 그것은 만드는 마음가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맥주를 만드는 공장에서는 발효탱크의 탄산을 배출한 뒤에 나중에 탄산을 첨가한다. 발효탱크가 샴페인이 되어버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테라는... 그것을 거부했다.
테라는 발효탱크 안의 탄산의 양을 체크하고 조절하면서, 자연적으로 생긴 탄산을 그대로 맥주에 담았다. 그리고 그것을 ’리얼탄산’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마시는 사람 입장에서는 맥주 안에 탄산이 많고, 잘 사라지지 않아 청량감을 더 느껴서 좋다. 하지만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다. '청정라거'라는 말은 가벼운 컨셉이 아니라, 재료부터 양조과정까지 결정하는 테라의 기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이번 NON-GMO PROJECT 인증은 뭐랄까? 그 모든 과정을 인증할 수 있는 영어공부만렙의 첫 번째 토익시험 같은 것이라고 할까.
그렇다. 이번 테라의 NON-GMO PROJECT 인증은 청정한 재료와 생산과정을 걷는 테라에게는 꼭 거쳐야 하는 길이었다. 이쪽에서 가장 공신력이 높은 미국의 비영리단체 'NON-GMO PROJECT'의 인증을 받았다. 테라에 들어가는 모든 원재료부터 2차 성분, 생산공정까지 전체를 아우르는 검사였다. 여기에 무려 7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재미있는 점은 국내 식약청에서는 여섯 가지의 한정된 농산물로만 NON-GMO를 인증한다는 점이다. 이는 NON-GMO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들과의 과도한 경쟁이나 오해를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작게는 칼로리와 카페인부터, 비건, NON-GMO 여부를 알고 싶은 소비자의 관심은 제품에 적힌 정보 이상을 원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소비자들이 알아차리기 한 발 앞서 좋은 맥주를 만들어 두는 것. 이를 지켜가는 것이 테라가 단순 유행이 아닌 '청정라거'라는 맥주의 미래를 만드는 길이 아닐까?
우리는 아직 맥주의 맛에 대해서, 가격에 대해서, 조금 더 들어가면 건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다음 시대의 맥주는 나 자신을 넘어서(물론 맛이 참 중요하다) 이 맥주가 추구하는 길이 무엇인가가 중요해지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미 어떤 맥주들은 자신들의 철학을 제품에 담아서 내고 있다.
결국 맥주의 현재, 그리고 미래는 우리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오늘 밤 여러분이 마실 맥주는 어떤 미래를 가져다줄까?
번외 : 시각장애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맥주가 테라라고?
재료와 만드는 과정, NON-GMO PROJECT 인증 만큼이나 사람들이 모르는 테라의 모습이 있다. 바로 캔맥주 중에 유일하게 테라만이 제품 이름을 점자로 표기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맥주제품들은 이름이 아닌 종류로 '맥주'라고 점자표기를 남긴다. 테라는 출시 때부터 '테라맥주'라는 점자를 새겨놓았다. 모두가 알지는 못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과 감동이 되는 것. 우리의 친절한 맥주 테라가 되기를 응원한다.
※ 참고문헌
·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 "신제품 '테라' 성공 위해 필사즉생 각오", 박효주, 뉴스핌, 2019.3.13
· "대한민국 대표맥주를 만들자"…청정라거 테라의 특명, 이정봉, 중앙일보, 2019.5.22
· '테라' 100일 만에 1억병…"하이트진로 턴어라운드 청신호", 김영주, 중앙일보, 2019.7.2
· [기자칼럼] 시각장애인들이 찾는 맥주, 조미덥, 경향신문, 2021.7.6
· 위스키도 아닌데 싱글몰트?...‘테라’ 스페셜 에디션 출시, 이상현, 매일경제, 2022.11.16
· '1,000,000,000병'..테라, 출시 후 가장 많이 팔았다, 유엄식, 머니투데이. 2023.3.21
· 'Non GMO' 마크 가린 수입맥주, 이유는?, 강승만, 오마이뉴스, 2017.3.14
· 하이트진로 테라, '비유전자변형' 인증 획득, 김현경, 서울파이낸스, 2023.03.16
· 하이트진로 "테라 ‘NON-GMO PROJECT’ 인증 획득", 이승택, 한국일보, 2023.3.20
· 유전자변형식품등의 표시기준, 국가법령정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