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영국, 강한 맥주 전쟁
맥주가 술이냐? 물이지!
술 조금 마신다는 고래들은 맥주 도수를 우습게 여긴다. 주변에서 쉽게 구하는 맥주는 아무리 높아도 알콜도수 7%를 넘지 않기 때문이다. 몇몇 술꾼들은 금주기간에 음료로 맥주를 마시는데, 네덜란드는 해장음식으로 맥주를 꼽는다고 한다. 맙소사!
하지만 여기 강한 맥주들이 있다. 어디 소주는 명함도 못 내밀 강력한 맥주. 이들은 대부분 독일과 영국 두 양조장의 대결에서 태어났다. 오늘은 전 세계 맥덕들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던 고도수 맥주전쟁에 대해서 다룬다.
사건은 2009년 쇼르쉬(Schorschbräu)라는 독일의 작은 브루어리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전례 없는 강한 맥주를 만들었는데 알콜도수가 무려 31%. 이 맥주는 브루어리 이름을 따 '쇼르쉬복 31%(Schorschbock 31%)'라고 붙였다.
알콜도수 30%가 넘는 맥주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가? 자연상태 효모가 만들 수 있는 알콜은 15%가 한계다. 이러한 술을 끓여 물에서 알콜만 빼내 만든 것이 위스키다. 하지만 쇼르쉬는 맥주를 끓이지 않고, 얼린다. 물이 알콜보다 일찍 언다는 점을 이용해 맥주 속의 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를 아이스복이라 한다.
쇼르쉬복 31%는 기네스 북에 ‘World Strongest Beer’로 등재된다. 라벨에도 당당히 쓰여있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맥주. 하지만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 영국의 브루어리가 있었다.
바로 돌아이 브루어리 브루독(BrewDog)이다. 잠깐 브루독의 소개를 하자면 이들은 "사업이 아닌 혁명을 시작한다"라는 문구 아래 맥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미친 일을 한다. 맥주에 비아그라를 넣는 것은 애교. 트럼프와 푸틴을 풍자한 맥주를 만들어 본인들에게 배송하고, 사장 둘이서 런던 시내에 탱크를 타고 퍼레이드를 하는 등 세계에서 가장 힙한 브루어리다.
그런 그들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맥주' 타이틀을 탐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만들었다. '택티컬 뉴클리어 펭귄(Tactical Nuslear Penguin)'. 한국에서는 '전술 핵 펭귄'이라고 불리는 녀석이다. 사장들은 직접 펭귄 옷을 입고 알콜도수 32%짜리 맥주를 마시며 기네스 기록을 빼앗아 온다. 하지만 그 영광은 1달도 가지 못했다.
쇼르쉬에서 무려 알콜도수 40%짜리 맥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쇼르쉬는 "고도수 맥주를 만드는 우리의 기술을 사지 않겠냐?"라고 브루독에게 제안을 하기도. 이런 도발을 거절한 브루독은 다시 양조장으로 돌아간다. 그들이 이 전쟁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있는지는 다음 맥주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다.
바로 '비스마르크 침몰(Sink the Bismarck)'이다. 알콜도수 41%짜리 쿼드 루펠 IPA. 비스마르크 침몰이라는 이름은 2차 세계대전 때 영국과 독일의 전쟁을 다룬 영화 이름에서 따왔다. 사상 최대, 최강의 전함이었던 비스마르크는 영국 해군에 의해 침몰당했다. 브루독은 이를 비유적으로 맥주전쟁에 끌어온 것이다.
물론 사진도 빠질 수 없다. 사실상 이 코스프레가 없으면 브루독 신제품 출시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쇼르쉬복 40%의 명성은 이제 해저로 가라앉는다. 잘가라.
허나 쇼르쉬는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 손오공이 계왕권을 쓰듯 알콜도수를 끌어올렸다. 알콜도수 43%의 쇼르쉬복 43%(Schorschbock 43%)을 어디에 비교할 수 있을까. 아마 위스키 정도에 비견할 것 같다. 얼음을 타서 마시지 않으면 목이 탈 정도. 맥덕들은 경악한다.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을까?
말 그대로 끝판왕.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만든 브루독의 최종병기 '엔드 오브 히스토리(the End of History)'다. 알콜도수는 무려 55%. 과연 이것을 맥주라고 불러도 좋을까라고 생각 될 정도로 맥주를 초월했다. 사실 외관만 봐도 이미 이 세계의 맥주가 아니잖아.
엔드 오브 히스토리는 교통사고에 치여 죽은 다람쥐와 청설모를 박제해 병의 외관을 감쌌다. 이 끝판왕 맥주는 딱 12병만 생산이 되었다. 가격도 역대급. 한 병에 80만원이 넘는 가격이다.
브루독은 가장 비싼 알콜도수, 가장 비싼 가격, 가장 엽기적인 디자인이라는 3관왕을 차지하고 맥주 전쟁에서 내려온다. 엔드 오브 히스토리는 여전히 브루독의 미친 짓 중에 단연 첫 번째로 꼽힌다.
끝판왕은 떠나갔다. 하지만 여운은 계속되었다. 네덜란드의 작은 브루어리 Koelschip은 엔드 오브 히스토리가 나온 지 일주일 만에 '스타트 더 퓨쳐(Start the Future)'라는 알콜도수 60%짜리 맥주를 만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양조 과정 속에서 위스키를 많이 혼합하였다는 비판이 많아 왕관을 인정받지 못했다.
브루독과 전쟁을 벌였던 쇼르쉬도 화답을 한다. 알콜도수 57%의 쇼르쉬복. 예외적으로 쇼르쉬복 57%에는 finis coronat opus’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이를 (구글번역이) 해석하면 the ending crowns the work. 즉 쇼르쉬가 영원한 승리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브루독과 쇼르쉬의 전쟁은 쇼르쉬의 우위로 끝을 맺게 된다. 마신 이의 리뷰를 훔쳐보면 영혼까지 불타는 맛을 느낄 수 있다고.
고도수 맥주전쟁은 끝이 났다. 이 싸움을 지켜보던 스코틀랜드의 브루마이스터(Brewmeister)는 그들의 뒤를 이어 '아마겟돈(Armageddon)'이라는 괴물 맥주를 만든다. 무려 65%의 아이스복. 도수로만 덤비면 중국 고량주도 제압할 수 있다.
하지만 아마겟돈은 도수를 인정받지 못했다. 이 맥주를 마신 사람들은 아마겟돈의 맛이 끔찍할뿐더러, 목에 느껴지는 감각이 알콜도수 65%라고 믿어지지 않다고 했기 때문이다. 결국 아마겟돈은 등장한 지 얼마 안 되어 빠른 퇴장을 한다.
그리고 브루마이스터는 더욱 강한 맥주를 만들었다. 무려 67.5%의 '스네이크 베놈(Snake Venom)'이다. 맥주, 위스키, 보드카를 포함하여 시판되는 술 중에서도 미친 도수를 자랑한다. 스네이크 베놈은 온라인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몇몇 국가에서는 알콜 도수가 너무 높아 들여오는 것이 불법인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악명 높은 맥주'다.
쇼르쉬와 브루독의 맥주전쟁은 자칫 관심종자(?)들의 미친 짓이라고 볼 수 있다. 자연에서 만들 수 있는 최대 알콜도수가 15% 남짓인데 반해 40%가 넘는 맥주를 맥주라고 블러도 좋은지에 대한 논란도 일어났다. 하지만 이런 걱정과 비난 속에서도 두 브루어리의 맥주 전투는 맥덕들에게 최고의 흥밋거리였다는 것이다.
또한 두 브루어리는 이것이 선한 경쟁이었다고 말한다. 독일과 영국은 분명 맥주 강국이지만 오랜 전통만큼 제한된 종류의 맥주를 즐기는 국가다. 쇼르쉬와 브루독은 틀에 박힌 맥주의 카테고리를 깨트렸다. 알콜도수를 높이기 위해 맥주를 얼리기도 하고, 여러 재료를 첨가해보며 창의성을 극대화했다.
독일과 영국의 맥주전쟁은 유럽 사람들에게 다양한 맥주가 생길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음주용이 아닌 공예품으로 맥주의 가능성을 보여준 의미 있는 사례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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