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워도 치워도 끝이 보이지 않는 정리의 늪
육아에 대부분의 시간이 소진되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육아로 인생 수련 중이라고 생각을 바꾸며 살고 있는데 사실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육아 안에 포함된 집안일 때문이다. 특히 나는 청소와 물건 정리가 가장 어렵다. 애들이 자고 난 후, 거실로 나가면 온갖 집안에 물건들이 나에게 손짓하는 기분이다. 어서 정리하라고, 어서 제자리에 자신을 갔다 놓으라고 채근한다. 어지르는 아이들과 치우는 엄마, 그 속도가 현저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밤이 되면 난장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건들은 계속 재촉한다.
"나 밟으면 아플걸?"
"여기다 두면 넘어질걸?"
아이들처럼 물건들도 익살스럽게 나를 놀리는 것 같다. 숨을 고르고 견적을 내기 시작한다. 몇 시간 분량짜리인지 알아야 취침시간과 기상 시간이 정리된다. 얼마 안 되면 그냥 잔다. 다음날 좀 일찍 일어나 얼른 치우면 되니까. 하지만 잠이 고픈 엄마에겐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 보통 1시간 이상의 분량짜리가 많다. 너무 피곤해 잠이 오면, 꿈에서도 청소 꿈을 꾼다. 그러다 눈을 뜨면, 새벽 2~3 시인 경우가 많다.
슬슬 둘러본다. 분명 안방에 있던 로션인데 부엌 바닥을 뒹글고 있다. 부엌 수납장에 있던 냄비가 거실에서 굴러다닌다. 물건들은 분명 발이 달린 것이 분명하다. 아이들은 안방에서 풍선을 발로 차면 놀고 있는데, 가위와 테이프, 색종이는 왜 거실에서 뒹굴기 시합 중인 건가! 나는 분명 아침에 이들을 원래 위치로 갔다 두었던 장난감 음식들도 거실을 굴러다닐 이유가 없다.
장난감들이 발이 달려 제 발로 돌아다니지 않는 이상, 이런 상황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물건들이 대꾸한다.
"얼른 정리나 하세요!"
나의 한숨은 깊고도 깊은 절망의 결과 비슷하다. 땅이 꺼져라 숨을 내쉰 후, 한 숨 돌리면, 뒤쪽으로 다시 펼쳐진 물건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말처럼 어디다 갔다 붙여도 말이 되는 명언은 없는 것 같다. 우리 집 청소, 정리는 진심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물론 나는 범인을 알고 있다.
요새는 집안에 테이프란 테이프를 다 가져와, 실제 밴드도 가져와 공룡 병원 놀이를 한다. 80개짜리 밴드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마법의 손은 바로 첫째와 둘째. 실제로도 약간의 상처가 생기면 밴드를 찾는 놈들이다.
그런데 병원놀이에도 실제 밴드를 쓰기 위해 나와 눈치작전을 펼친다. 결국 어젯밤, 식탁에 올려놓은 밴드 뭉치는 다 소진했다. 그 후, 거실엔 밴드의 잔해가 수북하게 쌓였다. 피자 위에 치즈가루를 뿌리듯 하얀 조각 종이들이 매트 위에서 흩날리고 있다. 속으로 말한다.
'잘 놀았냐 요놈들아!'
자 이제 흩날리는 치즈가루 같은 종이들을 모아서 쓰레기통에 넣는다. 물건들에게 묻는다.
"알아서 제 발로 쓰레기통에 들어갈 순 없겠니?"
"만만의 말씀, 천만의 콩떡"
쓰레기통에 넣자 콧방귀 뀌듯 사라지는 종이조각들. 늦은 밤, 정리의 늪에 빠진 엄마는 결국 대충 때려 박기 신공을 펼친다. 이놈이 저놈 같고, 저놈이 이 놈 같은 장난감들. 그들의 정체성을 찾아주기엔 나는 너무 지쳤다. 나아가 정체성에 맞게 라벨링 된 통 안에 넣어두어도 내일이면 다시 정체성에 혼란이 올터이니 신경 끄기 기술로 마무리한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겠지. 오늘보단 내일은 더 나아지겠지. 육아로 마음수련 중이라 생각하면 세상 힘들 일도 없다. 그나저나 아들의 방은 점점 더 아마존 정글이 되어가고 있다. 그들에겐 또 언제 그들의 정체성을 찾아주어야 할까. 아들은 나 혼자 절대 치우지 말라고 하고 학교에 갔다. 같이 치우다 보면, 나는 알고 있다. 종이 쪼가리 하나에도 정체성을 부여하는 아들로 인해 청소는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집안의 온갖 물건들은 물론, 아이들까지 포함에 그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마흔이 넘어도 나란 정체성도 확립 못했는데 자아 찾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니 자유롭게 맘껏 놀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