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말이 가진 위력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아이 친구 엄마를 만나면 쓸데없는 얘기를 하는 것 같다. 특히 첫째는 자신의 얘기를 타인에게 하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그래서 말을 조심해야 하는데 오늘 괜한 말을 한 것 같다. 말을 많이 한다고 해도 친해지는 것도 아니고,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멀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런 관계에서는 굳이 말을 과하게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더욱 말을 조심하기로 했다. 이는 아이 친구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아이 친구 중 맘에 들지 않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매번 학교에서 만날 때마다 놀이터에서 끝나고 보자고 약속을 잡는다. 첫째는 응할 때도 있고, 싫다고 할 때도 있고, 응했다가도 맘에 변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다행히 자주 보진 않는다. 그런데 가끔 볼 때마다 그 아이의 말이 거슬릴 때가 많다.
"너는 축구 왜 그렇게 못하냐? 나봐. 잘하잖아. 이렇게 하는 거야"
"너는 나보다 힘 약하잖아. 내가 얼마나 힘센데."
"우리 아빠 차는 1000만 원이 넘어요"
"우리 엄마는 000에 다녀요"
"우리 집 비누는 좀 달라요. 000 비누예요"
이런 말들이 불편한 건 왜 일까?
첫 번째.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타인을 비난하는 말이 많다.
두 번째. 묻지도 않은 집의 경제적인 사정
세 번째. 우리 집은 특별하다는 의식
아이들이라면 충분히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말들을 과도하게 내뱉는 아이는 없다.
나에게는 특히 더 많은 말을 한다. 그것도 과시의 말들이다.
"어제 우리 아빠가 잠자리 잡아줬어요"
"우리 엄마는 곤충 잡기 선수예요"
곤충 잡기를 잘하는 첫째에 비해 아이는 곤충을 잘 못 잡고, 곤충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래서 첫째한테 어떤 곤충인지 자주 물어보니, 첫째가 짜증을 냈다. 그래서 내가 한 마디 했다.
"곤충 관련 책들을 보면 많이 알게 될 거야"
그때부터 그 아이는 곤충에 대한 책을 좀 읽은 것 같다. 그리고 전에 우리가 한 공원에서 개구리를 잡았다는 얘기를 해줬는데, 그 아이는 실제로 부모님들과 그곳에 다녀온 모양이다. 아이는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큰 만큼 남들이 하는 것들은 다 하고 경험해보고 싶은 모양이다.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순 있지만, 내가 너보다 우월해라는 잠재적인 말들은 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할 말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이의 불편한 언어는 어디서 오는 걸까? 내가 항상 반성하는 바이다. 나의 언어가 아이들의 언어로 고착화된다고 생각할 때마다 말을 조심하게 된다. 나의 날카로운 말이 어느 순간, 아이의 입에서 발화되는 걸 목격한 그때부터이다. 말이 가져오는 어마어마한 파장에 대해 말이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을 매일매일 퍼붓고 있는게 아닐까. 숙제해라, 밥 먹어라, 어서 자라, 양치 해라 등. 조금만 기다리면, 알아서 하는 것들도 많다. 아이의 마음이 지금 당장 하고 싶지 않다면, 굳이 강요의 말을 쏟아내지 않아도 된다. 어떤 면에서 아이의 생각을 존중해주는 것이다. 아이들인 존중한 만큼 크게 성장한다고 하지 않던가.
결국 긍정의 말로 나를 포장해야 한다. 긍정적인 말은 긍정적인 생각을 심게 한다. 긍정적인 삶의 씨앗이 바로 긍정의 언어라는 것을 나는 가끔 잊고 만다.
나의 말이 곧 내 삶의 비수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오늘도 반성한다.
그래서 다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