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절기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델리러브 Oct 25. 2021

편의점 맥주에 대한 단상

스물아홉, 문득 

편의점 앞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는 기분을 떠올릴 때면 내 피는 뜨거워진다. 특히 한 여름,맥주를 마신다는건 내 몸에 기름을 붓는 것과 유사하다. 그래서 가끔 나는 잊고 싶다. 그 때를, 그 시절의 기억들을. 


첫 직장에서 우리팀원은 3명이다. 팀장과 두 명의 직원. 메인 피디와 조연출, 막내작가를 각각의 직책을 갖고 대하는 사이였다. 그런데 진전이 없는 일을 하다보니 다들 좀 지쳐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시간이 넘쳐나니 매번 퇴근과 함께 술판이 벌어진다. 술판이 한 차례 거하게 펼쳐진 다음 날, 사무실엔 알코올 냄새가 진동하다. 앉아있는 사람들이 숨을 내쉴 때마다 숙취가 몰려든다. 알코올은 쉽게 기화되지 않았고, 그 공기 안에 있는 것 만으로도 술에 취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날에 하루 쯤은 쉬어야 자신의 몸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밤만되면 승냥이떼들처럼 어디서 어떻게 술을 마셔야하나 배회하던 시절이었으니. 하지만 몸은 아직도 숙취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셔야했다.


피디님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오늘은 간단하게 편의점 앞에서 맥주 한 캔 씩 마시고 가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 편의점으로 다다다 ~ 달려갔다. 골목은 어두웠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편의점은 적당히 한산했다. 편의점 파라솔 의자를 독차지하자마자 술이 당겼다. 피디님이 먼저 캔을 하나씩 돌렸다. 캔맥주는 금방 바닥을 보였고, 여기서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엔 조연출이 맥주를 사왔다. 안주도 사왔다. 새우깡은 맥주와 궁합이 좋다. 오징어를 씹을 땐 맥주로 기름칠을 해줘야한다. 그렇게 또 마셨다. 이번엔 얻어먹기만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내가 일어서서 맥주를 사왔다. 아무도 거부하지 않고 계속 들이킨다. 그러면서도 하는 말.


"오늘은 좀 쉬려고 했는데... 계속 술이 들어가네"


우리의 말은 뇌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명령하는 것이 아닐까. 자연스럽게 일어나 돌아가면서 차례차례 맥주를 사오는 센스. 그렇게 계속 맥주를 들이켰다. 뇌가 아딸딸해진다. 골목엔 짙에 어둠이 깔렸다. 아무래도 오늘도 택시를 불러 매봉터널을 지나 집으로 갈 것 같다. 휘청대는 두 다리로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맥주 사오기. 이것 말고는 몸이 말을 들지 않자 우리는 각자 마신 캔맥주 수를 세었다. 


1인당 캔맥주 7개를 마셨다.


당시엔 빅사이즈 캔맥주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라고 생각했는데 있었다. 그렇다면 ....

(기억 어렴풋이 편의점에서 500 7잔 마신 것과 같다는 대화가 생각남)


500 x 7 = 3,500

호프집에서 인당 500cc 7잔 마신 양과 동일하다!!! 미쳤다!!!!!


어쩐지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우리의 대화는 점점 줄고, 화장실 가기 바빴던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다들 헬레레하다가 집에 갔다.


그리고 1년동안 주말을 제외하고 거의 쉬지 않았던 나의 알코올 대잔치도 회사의 도산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다들 각자 도생을 위해 갈길을 갔다. 피디님은 지방 방송사로 들어가서 아예 그 지역으로 이사를 가버렸고, 조연출이었던 그분과 나는 유사한 업종으로 이직해 업을 이어갔다.


가을 어느 날이었던가. 그날 나는 조연출의 비보를 들었다. 새벽 1시경 강남 도로로 진입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그 자리에서 운명을 했다는 것이다. 그 무렵 나는 동기 오빠의 객사 소식을 들었다. 그 둘 모두 29살이었고, 아홉수를 넘기지 못한채 생과 작별한 그들의 생에 대해 그 어떤 말도 덧붙일 수 없었다.


그래서 가끔 편의점 의자에 앉으면 맥주를 들이키던 당시 기억과 함께 했던 이의 죽음에 대해 떠올린다. 편의점 앞 맥주는 맛있다. 전주 가맥집 못지 않은 운치도 있다. 그 운치를 처음으로 발견했을 때 함께 했던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다가 생을 떠난 그분을 아주 가끔 떠올린다.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선한 웃음 안에 주어진 어떤 음울한 기운들은 나만 느꼈던 것일까. 


뭔가 아쉽기도 하고, 씁쓸하기만 했던 첫 직장의 기억은 내 청춘의 전반에 깔린 기조를 형성했다. 그래서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리면 쓸쓸하다. 뭔가가 되고 싶었지만, 별다른 능력이 없어보였던 나에게서 어떤 미래를 찾아야할지에 대한 고민들이었다. 그 시절에 맞는 고민일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유효한 고민일 수도 있지만, 지금의 나는 방황하지 않는다. 그 차이일뿐, 나는 나, 별다른 능력도 대단한 능력도 없지만, 적당히 삶을 영위해가는 존재 그 자체로 성장했고, 지금도 성장 중이다. 그 성장 속엔 무수히 많은 기억들과 추억들이 남았고, 그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나는 나의 그 시절을 인정하고, 좋아한다.


 그때 무모했던, 순수했던 열망으로 가득찬 나를 떠올린다. 

캔맥주 7개를 마시고 집으로 향하던 택시 안과 매봉터널의 뜨거운 그 공기가 동시에 나를 휘감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어디에 나의 할말을  두고 왔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