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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Nov 05. 2021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친구를 사귄다

아련한 베스트 프렌드의 기억 

친구를 사귀는 방법은 언제, 어떻게 배우는 걸까. 나는 언제 처음 친구를 사귀게 되었을까. 또 그 친구는 누구였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들게하는 아이가 있다. 첫째와 같은 나이인 8살 남자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또래 아이들에게 한 마디씩 한다.



" 나 잡아봐라~"



그 말을 듣자마자 첫째는 킥보드를 타고, 그 아이를 쫓아간다. 그러면 그 아이는 페달을 거세게 밟고 빠르게 달린다. 그 아이에게  '나 잡아봐라'는 '함께 놀자'와 같은 의미였다. 그런데 놀라운건 항상 같은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첫째는 컨디션이 나쁘거나 다른 친구들과 놀 때는 그 아이를 외면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 아이는 꾸준히, 같은 방식으로 '나 잡아봐라'를 고수한다. 결국 그 방법이 지루한 또래 아이들은 잠깐 같이 돌다가 다른 놀이에 빠지고 만다. 어느날은 아이 뒤를 쫓아다니는 아이들이 6~7살 여자아이들이기도했고, 동생 또래 4살 아이들도 있었다. 볼 때마다 해맑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목까지 차오를 때도 있다. 너도 좀 다른 방식으로 친구에게 놀자고 제안하는건 어떠니?라고 말이다.



그런데 놀이터를 관찰하다보면,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한때 놀이터 욕쟁이였던 한 아이는 가을바람이 불어옴과 동시에 갑자기 외로움을 타는건지 말수가 줄어들었다. 5시쯤 학원을 마치고 돌아올 친구들을 기다리며 외롭게 포켓몬 카드를 바닥에 깔고 혼자서 놀고 있다. 그 아이는 누군가에게 다가가 놀자고 하지 않는다. 여름 한 때, 같이 놀 친구들을 찾아다니다가 결국 유치원 동기인 친구와 절친을 맺었고, 그 아이가 올 때까지 1시간 넘게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딘다. 5시가 지난 그 친구가 오면, 그 친구와 같은 반 친구들이 또 무리를 지어 포켓몬 카드 놀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켓몬 카드 놀이는 사실 정적인 놀이이다. 카드를 교환하거나 동그란 모양으로 딱지치기인 정도이다. 스마트폰을 켜서 어떤 카드가 더 센지 등을 확인하면서 무료하지만, 진지하게 아이들은 포켓몬 카드 놀이를 즐긴다. 그 모습에서 나는 중국인들이 카페에서 마작 놀이를 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뭔가 하나의 놀이에 집중하면서 그들은 친구가 되고, 시간을, 그 시절을 함께 보내는 동료가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왔다갔다한다. 쌍둥이 반친구들과 셋이 모여서 하는 일은 사실 별게 없다. 아파트 놀이기구에서 놀거나 그네를 탄다. 하지만 주된 놀이는 편의점 가기이다. 편의점에서 젤리를 하나 산다. 30분 후 다시 가서 껌을 산다. 친구들과 돈을 모아 과자나 음료수도 산다. 2+1 상품을 사면, 셋이서 풍족하게 먹을 수 있다. 집에 들어가는 7시 전까지 달달구리한 주전부리를 먹으면서 노는게 그 아이의 놀이 방식이고, 그런 방식이 좋은 아이들과 친구가 된다.



나도 초등학교 1학년 때 베스트 프렌드가 있었다. 김지연이란 친구였고, 내 옆자리에 앉았다. 짝꿍은 아니었지만, 집으로 가는 방향도 같아서 우리는 같이 하교를 했다. 집으로 가는 길목엔 여러 가게들이 즐비해있다. 지연이네 집은 군만두 노점 옆길로 올라가는 언던배기에 있다. 중간 골목골목마다 가게들이 많았는데 구제옷가게가 특히 기억이 난다. 집으로 가다 헤매던 그 골목길이 아스라히 지금도 마음에 새겨두고 있는 이유는 그 아이 옆집에 사는 아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는 내게 아기를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아기는 귀여운 동물 같았다. 뽀송뽀송했고 희멀건 호빵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언덕배기를 같이 내려오면서 그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그런 방식이 이 친구가 친구를 사귀는 하나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우리 베스트 프렌드하자. 베스트 프렌드"



그때 말줄이는게 없었므로 우리는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다. 그 이후, 살면서 꽤 많은 베프를 양산했다. 



베스트 프렌드~

너와 나는 특별한 사이야라고 공표하는 것이다. 



그 말의 느낌 속엔 풋풋한 사과향이 난다. 요즘은 절친이란 표현을 많이 쓰고, 베스트 프렌드도 베프라고 줄여 쓰기 때문에 가끔 이 말을 조용히 내뱉어보면, 뭔가 내밀한 감정들이 솟아난다. 베스트 프렌드를 만들기엔 나는 너무 멀리 떠나온 것 같은 느낌이다. 학창 시절, 그 시절의 느낌을 떠올린다. 그 때 나는 어떤 친구들과 인연을 맺었던가.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은 어떤 기억으로 내 안에 스며들었나.



가을 낙엽들이 거리에 가득차면, 떠오르는 친구들이 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 정문 옆 은행나무는 유난히도 키가 컸다. 가을마다 노란 은행잎이 바닥 가득채운다. 크기만큼 이파리도 많이 떨어져 우리는 그 아래서 은행잎을 주워 책갈피 사이에 끼웠다. 그날, 햇살의 색감은 노란 황금빛이었다. 우리들의 청춘도 노랗게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은행잎의 모양이 최대한 살려 책갈피에 끼워 넣고 있을 때 지나가던 한 어른이 한 마디한다.



"참 좋을 때다. 좋을 때야"



그 시절엔 몰랐던 참 좋은 시절이란 말의 의미. 가을볕이 유난히도 노란 빛을 낼 때면 그 시절이 떠오른다. 꽤 어렸고, 순수했고, 세상 물정에 대해 잘 몰랐던 그 때 나는 은행잎만 봐도 넘쳐나던 감성을 가진 친구들이 있었다. 우리의 시작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의 끝은 고등학교로 진학함과 동시에 멀어졌다. 시작은 불분명해도 그 끝만큼은 명확했던 그 시절이 친구들이 그립다. 그리운건 사실 그 시절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알고 있다. 가을 낙엽을 같이 감상하는 두 아이들이 있는 지금 이 시절,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내게 참 좋은 시절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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