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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Aug 04. 2020

생각날 때마다 울게 하는 당신

난 아빠가 생각날 때마다 박형준 시집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를 읽지

당신이 생각날 때마다 펼쳐 듭니다. 2017년부터 벌써 4년째입니다. 책 귀퉁이는 이미 찢어진 채 고스란히 시간의 풍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죽음은 늘 그렇듯 생을 아득하게 해요. 멀리 당신이 가신 길 끝을 보고 있자면, 이제는 소실점으로만 남아 작고 가물거리지만, 내게서 멀어진 그 길들의 자취들은 선명합니다.


시를 읽다가 봉분이 밥그릇 같다고, 망자가 차려준 밥, 죽은 자가 산자를 위해 차린 밥이라는 시인의 말에 울먹합니다.


논과 밭 사이에 있는 우리나라 무덤들은 매혹적이다.

죽음을 격리시키지 않고 삶을 껴안고 있기에,

둥글고 따스하게 노동에 지친 사람들의 영혼을 껴안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봉분들은 밥그릇을 닮았다.

조상들은 죽어서 산 사람들을 먹여 살릴 밥을 한상 차려놓은 것인가.

내가 찾아 헤매고 다니는 꽃과 같이 무덤이 있는 들녘

산 자와 죽은 자가 연결되어 있는

밥공기와 같은 삶의 정신


- 박형준 시인의 시집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중 '무덤 사이' 일부



장마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선뜻 갈 수 없는 거리에 당신이 있습니다. 둥근 외형에 제법 살이 통통하게 올랐던 당신의 봉분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난 한식 때 삼촌이 가보니 봉분 쪽으로 멧돼지들의 흔적이 있었다고 하죠. 멧돼지들이 주둥아리로 먹이를 찾아 헤맸지만, 먹을 게 없었나 봅니다. 당신의 밥그릇은 어쩌면 남은 우리들에게만 따뜻한 한 끼가 되어주는 것이겠죠.


그런데 비가 오니 걱정이 앞섭니다. 거센 비로 골짜기가 생겼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쪽 면이 소실돼 절벽처럼 경사가 급해진 건 아닌지 불안하기도 합니다. 만약에 골짜기가 생겼다면, 그 골 사이로 빗길이 생겼을 것이니, 길이 확장되지 않는 이상, 형체는 유지될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해봅니다. 이제는 멀어져, 가끔 내 꿈속에서 형체 없이 등장해 사라지는 당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멀리 있다는 이유만으로 당신이 차려준 밥 한 공기 먹으러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머리맡에 놓인

밀가루 떡 한 조각.

동구의 밭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점심 무렵 돌아와

막내를 위해 만들어주던 밀가루 떡


누군가의 머리맡에

그런 시 한 편 슬몃 밀어놓은 날 있을까.

골목의 빗속에서 아무 맛도 없이 부풀어가는


-   박형준 시인의 시집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중 '별식' 일부



술에 취한 당신의 품속엔 자식들의 먹을거리가 항상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사과였다가, 어느 날은 도넛이었다가, 어느 날은 시장 통닭이었다가. 먹이를 문 어미새가 자식들 입에 넣어주는 것처럼 당신은 맛있게 먹을 자식들을 상상하며 사 왔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술 취해 들어오는 게 싫었던 우리들은 그리 밝은 표정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자는 우리들을 깨워 먹으라고 할 때 오빠의 어두운 표정을 읽은 난,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맛이 좋았는지 어땠는진 모르겠습니다. 집안 공기를 감지하며, 눈치보다 당신의 말에 벌떡 일어나 먹고 또 먹었던 기억. 그래서인지 난 눈치도 빠르고, 굳이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사태 파악에 주력하죠. 지난 기억이 내게 남긴 생채기 같은 것. 상처지만 상처인 줄 모르는, 작디작은 생채기.




이제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 당신에게 고향은 처절한 가난의 기억.  가난을 꺼낼 때마다  번도 좋은 적이 없던 것처럼 고향을 외면했고, 지난 기억을 징그럽다 하시던 당신. 이름도 어쩜 사발굴이라고 불리던  동네를 둘러본 적이 있습니다. 살아생전 모시고 갔으면 좋았을까? 생각하다가도 싫다 하셨으니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다가도, 자식들이 신경 쓸까 싫다 좋다를 얼버무리던 당신의 말버릇을 되뇝니다. 물음에 대답이 없다는  좋다는 의미였을까?



시골 집터는 엄마 표현에 의하면 고구마 꽝이 되었습니다. 시골집을 소유하고 싶었던 작은 아버지는 매번 아빠에게 떠보곤 했죠. 형님. 형님. 하면서 그 속내를 나도 알고, 아빠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결코 내주지 않았던 시골집 땅문서는 작은 아버지에게 넘겨졌습니다. 당신이 언젠가 동생에게 주려고 했었지만, 쉽게 내주지 않았던 이유는 동생 하는 짓이 얄밉기도 하고, 그 드러나는 속내를 알고도 넘기려니 심사가 좋지많은 않았던 것이겠죠. 우리도 모두 시큰둥했지만, 엄마가 그냥 주고 말자고 했던, 그 땅입니다. 작은 아버지네 고구마 꽝엔 올해 고구마 작황이 그다지 좋지 않을 것 같아요. 장마가 길어지니 농작물들이 제대로 여물지 못해 올해는 풍년과는 거리가 멀 것 같습니다.


고향이 아니지만, 우리에게 고향이 두 곳이나 더 있죠. 전주에서 살다 서울로 정착했을 때 살던 산동네, 그리고 지금 아직도 언니와 엄마가 사는, 불과 2년 전까지 살던 나의 동네. 그 동네를 걷다가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언니는 당신을 보내고 외출하기가 겁이 났다고 합니다. 유독 노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서 당신의 모습과 유사한 이들이 걸어 다닙니다. 근데 저는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 노인들을 보며 생의 유통기한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얼마 남지 않는 이들의 풍채를 조금 알 것 같아요. 당신을 보며 그 징후를 이제야 깨닫습니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지나고 난 후에야 깨달았습니다.





당신의 하늘나라 길엔 무엇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을까요? 당신의 생업은 고단하기만 했고, 당신은 그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니. 다만 그 길에 당신이 먹던 알약들이 아니었길 바랍니다. 당신의 하루하루를 연명해 준 알약. 옆에서 지켜보던 자식들은 당신이 알약에 집착했던 이유를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아팠을까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생이 얼마 남지 않을 무렵, 나는 당신이 잠에 빠져든 이유를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당신의 겉모습이 굳건했던 이유는 당신의 정신력이 만들어낸 유형의 실체라는 것을. 하지만 그 속내는 계속 아팠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응급실로 실려가시고 일주일 만에 장례까지 다 치른 나에게 장례식장에 찾아온 후배가 한 마디 했다.

그 후배의 아버지는 요양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죽음의 그늘에서 살던 아버지를 보내고 많이 슬펐다고 한다.

나는 갑작스러워 힘들다 했더니 후배가 한 말이다.



"언니, 빨리 가든 어떻게 가든 다 슬퍼"


남은 자에게 죽음이란 슬픔의 정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어쩌면 더.더.더. 조여 오는 족쇄 같은 것.

시간이 지나서야 조금씩 서서히 놔줄 수 있다는 것을



긴 장마, 무사히 잘 버텨주세요.

비 그치면,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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