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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May 20. 2020

유의미한 라면의 맛

- 왕뚜껑과 아빠

                              

아주 가끔 라면을 먹는다. 아이가 있어 라면을 먹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아서이다. 주로 작은 컵라면을 숨어서 먹는데 일단 최단 시간 허기를 채울 수 있어 가끔 요긴하게 사용한다. 그런데 가끔 편의점에 가면, 매번 어떤 컵라면을 고를까 고민하다 순간 나는 멈춘다.


기억의 흐름은 거역할 수 없다. 여전히 내 머릿속 한편에 자리 잡은 컵라면을 오늘도 마트에 갔다가 만지작거리다 두고 왔다. 더는 맛보고 싶지 않은 맛, 더는 입에 넣을 수 없는 그 맛이다. 


아빠는 돌아가시기 3일 전, 입맛이 없다고 왕뚜껑 컵라면 두 개를 사다 놨다. 하지만 3일 후, 급작스러운 비보를 들었다. 중환자실 앞에서 동동거리던 4개월 된 임신부의 마음은 내내 불안했고, 결국 일주일 후 아빠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 후 친정집을 갔을 때 왕뚜껑 컵라면을 발견했다. 언니에 물으니 아빠가 사다 둔 거라고 했다. 나는 갑자기 그 맛이 궁금해졌다. 아빠는 수없이 많은 컵라면 중에 왜 왕뚜껑을 골랐을까? 임신부였지만, 라면을 개봉해 먹었다. 분명 라면은 짜야하는데 잘 모르는 맛 같았다. 매콤한 맛도 강했던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미각이 갑자기 둔해진 것 마냥 라면에 흥미를 잃었다. 그때 내가 잠시 세상에 흥미를 못 느꼈던 것처럼.



나는 아직도 왕뚜껑 컵라면을 먹을 수 없다. 그 맛을 보면, 아빠의 몸 상태에 둔감했던 나 자신에 대한 책망이 떠오를 것 같기 때문이다. 갑자기 목이 매여오던 그날의 오후, 나는 먹고 있었지만 식욕은 채워지지 않았던 기억의 이유가 불현듯 나를 뒤흔들 것 같기 때문이다.


한식에 맞춰 근처 사는 작은 삼촌이 아빠 산소에 가서 벌초한 사진을 밴드에 올렸다. 아빠는 여전히 그곳에서 편히 계시는 건가? 웅크리고 있는 것 같은 봉분의 자세가 불편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우리나라 봉분들의 모양은 동일하고, 둥글게 허리를 웅크리고 자식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한 친구가 아빠 장례식에 와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아파서 오래 병원에 입원해서 돌아가시는 거나 급작스럽게 돌아가시는  거나 다 똑같이 슬프다고. 죽음의 정서가 슬픔임이 분명하다. 어쩌면 아빠의 죽음이 내게 슬픔의 정서를 더욱 강렬하게 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뼈저리도록 아픈 마음이 가슴에 새겨져 있다.


5월 10일, 아빠의 산소에 가족들과 함께 가기로 약속했다. 현재 남편의 상황을 보니 동참이 힘들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게다가 두 아이와 긴 자동차 여행은 다소 무리이기도 하니깐. 이번에 미루면 또 언제 아빠를 볼 수 있을까. 어느 시인이 봉분을 보고 했던 표현이 생각난다.



논과 밭 사이에 있는 우리나라 무덤들은 매혹적이다.

죽음을 격리시키지 않고 삶을 껴안고 있기에.

둥글고 따스하게 노동에 지친 사람들의 영혼을 껴안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봉분들은 밥그릇을 닮았다.

조상들은 죽어서 산 사람들을 먹여 살릴 밥을 한 상 차려놓은 것인가

내가 찾아 헤매고 다니는 꽃과 같이 무덤이 있는 들녘.

산 자와 죽은 자가 연결되어 있는

밥공기와 같은 삶의 정신


- 박형준 시인의  '무덤 사이에서'


눈이 많이 내리던 날, 비행기재를 넘어 아빠의 장지로 가던 11월의 어느 날. 나는 실감하지 못했던 생과 사의 경계에서 당황해했다. 보내야 하는 심정이 가야 하는 마음보다 애틋할 순 없겠지만, 보내고 싶지 않아 아직 현실 감각을 애써 둔화시켰던 나는 지금도 마음속 어느 한편에서 매일매일 울고 지낸다. 죽음을 애도하는 일은 길고도 지난한 일이다. 그것이 내 육체의 전신이었던 부모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눈물을 머금고 왕뚜껑 하나를 다 비웠을 때 아빠의 허기가 생의 허기임을 알게 된다. 나는 마치 어떤 비밀의 문은 연 것 마냥 순간, 멈춰 뒤돌아본다. 멈춰서 나를 지긋이 바라볼 것만 같은 아빠가 환영처럼 되살아난다. 나는 아직 놓아버리지 못한 채 그 환영을 붙들고만 싶어 진다. 이제 그만 외로웠으면 좋겠다고...


컵라면 하나로 인해 기억의 단상들로 밤은 깊어간다. 기억은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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