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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May 10. 2020

나의 시작, 나의 글

- 글쓰기, 원초적인 슬픔을 건드리는 일

멀쩡하던 당신이 갑자기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병원으로 갔을 때 나는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병원 신세를 워낙 많이 졌던 당신에게 응급실행은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의 일부였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당신은 나를 보자마자 얼마 안 돼 바로 의식을 잃었다. 내가 1초라도 늦었다면, 나는 의식이 살았던 당신이 보내는 생의 마지막 신호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아빠, 나야 막내”

“으음~~~”


고통의 밑바닥에서 나오는 절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은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고, 역시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의사가 말하길, 이미 상태가 좋지 않아 수술을 종결했다고 한다. 수술로 해결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선 상황이었다. 단순한 사고인 줄 알았으나 이미 당신은 생 저편의 강으로 향하고 있던 것이다.


그때 당신은 잠시 아직 숨이 멈추지 않은 식물인간 상태였다. 의사는 가족들에게 연명치료에 대해 물어보면서, 치료의 장단점을 설명을 했다. 듣는 내내 울음이 차올랐다. 하지만 눈물은 이미 반쯤 말라 얼굴이 따끔거릴 정도였다. 큰언니는 결국 병원을 나와 오열했다.


“그동안 계속 아팠는데 연명치료를 하면 또 얼마나 아프겠어.

 피멍이 들고,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라잖아. 그냥 보내주자”


하루 한 번 있는 면회시간이 다가왔다. 면회실 앞에 서면, 생과 사이 경계선에 선 기분이다. 나는 생 안에, 당신은 생 밖에서 서성이고 있다. 발을 동동 구르다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갔다. 그렇게 다시 당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한 문장이 나를 스쳐갔다.


육식을 즐기던 당신이 식물이 된 순간을 지켜보는 것만큼 잔인한 건 없었다.
 

결국 3일 후, 당신의 장례가 치러지고, 또 3일 후 당신은 고향으로 향했다. 가족 친지들과 함께한 여행이었지만, 당신에게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는 생의 마지막 여행길이었다. 포근한 산기슭에 당신을 묻었다. 위쪽으론 살아생전 당신이 그토록 경멸했던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묻혀있다. 다시 부모 품으로 돌아간 당신의 봉분은 마치 붉은빛을 띠는 아이의 통통한 볼 같았다. 이제 시간이 지나면, 흙과 물과 땅속의 미생물들과 여러 자연발생적인 현상이 일어나면서 당신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는 혹시나 당신이 폭우나 태풍에 의해 파헤쳐질 경우를 대비해, 관속에 빨간 천을 올려두었다. 그 천은 당신이라는 존재가 머물던 자리라는 걸 알리는 생의 유일한 징표이다. 존재의 마지막 흔적을 땅 속에 파묻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5개월 후, 둘째가 태어났다. 또 하나의 우주가 내게 찾아왔다. 출산 후, 몇 달 동안 생과 사를 직시했던 나는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생을 너무 직시했고, 사를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머릿속에서 명징하게 떠오르는 어떤 단어들과 표현들이 자꾸 내게 말을 걸었다. 그렇게 다시 글이 내게 찾아왔다.


글을 쓰기로 결심을 하고 나서 나는 나의 루틴을 다시 만들었다. 먼저, 시간 활용이다. 나는 새벽 4시가 되면 하루를 시작한다. 일단 먼저 글을 쓰고, 그다음 책을 읽는다. 7시가 되면 아침 준비와 집안일을 한다. 기상시간의 변동은 있었지만, 지금도 새벽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처음 목표는 소설이었으나, 지금 토해내는 글들은 내 감정을 토로하는 글에 불과하다. 1차적인 감정을 처리하고, 2차로 남은 감정들을 추스릴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3차가 되면, 당신을 보내고 난 후, 내 목소리가 나올 거라 믿는다.


결국 글쓰기는 고독과 싸우는 작업이다. 나는 홀로 등을 켜고, 동굴 속을 헤맬 것이다. 가다가 박쥐도 만나고, 동굴의 다양한 생태계도 직면할 것이다. 하지만 이 동굴을 통과하면 저 끝에서 환한 빛이 나를 기다려준다는 걸 안다. 그 믿음 속에서 꿈은 피어나고, 삶은 생기를 얻고, 생은 새롭게 빛난다


해를 보듯, 구름을 보듯, 달빛에 젖듯, 글을 쓰고, 나를 보는 작업은 이제 시작이다. 그리고 그 곁엔 항상 당신이 있다는 것을, 내 글쓰기의 동기가 오롯 당신에게서 시작됐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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