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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Sep 01. 2020

진정한 이야기의 고수를 만나다

떡국은 아직 끓지도 않았는데... 

평일 오전 시간, 카페는 동네 사랑방이 된다. 그 시간, 카페에서 나는 이야기를 수집한다. 한때 그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카페로 출근한 적이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하지만 떡국이 도마 위에 오를 줄은 몰랐다. 화려한 만찬을 상상했던 건 아니지만, 떡국은 의외였다. 설날이 다가오는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점점 더 궁금해졌다. 초가을 한복판에 떡국 타령이라니 도대체 무슨 대화가 이어질까. 노트북을 켜놓고 몰래 도청을 준비한다. 이 은밀한 의식은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된다. 


다행히 중년의 두 여인은 나의 음모를 알지 못한 채 쉬지 않고 대화를 이어간다. 


오늘은 떡국 레시피에 관한 대화가 시작될 거라 짐작한다. 나는 상상했다. 어슷썰기 과정에서 동일한 형태로 재탄생한 떡살이 소고기 양지머리를 푹 고아 만든 국물 속으로 투하될 것이라고. 그들의 조화가 곧 맛을 좌우할 것이라고. 어떤 양념을 넣고, 나만의 레시피는 이것이라는, 보통의 대화. 그런 얘기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대량 방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총알은 과녁에서 완벽하게 벗어났다. 아주 보기 좋게. 게다가 처음 내가 쏜 총알은 탄피조차 멀리 날아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떡국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


드디어 대화의 포문이 열렸다. 떡국을 아침으로 차려주면, 집안 식구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간편하게 만들 수 있으니 요리하는 입장에서도 편하다는 논리다. 허나, 그분의 가장 큰 관심사는 떡살이었다. 그분의 말을 의역하면, 떡살이 떡국 맛에 팔 할을 차지한다고 한다. 떡살을 잘못 샀더니 맛이 없더라, 그냥 먹어봤을 때 달달하고 쫀득한 떡살로 끓여야 맛이 좋다더라는 반복해서 강조한다. 그래서 자기는 생산지를 확인해본다고 한다. 떡살도 국내산이 아니라 중국산으로 만들면 맛이 없다고 한다. 작년에 집사님한테 공동구매로 떡살을 샀는데 맛이 없었고, 아마도 중국산으로 만든 것 같다고 의심을 했다. 올해 집사님한테 사지 않고 따로 구매했는데, 그걸 어떻게 아는 건지 자기를 대하는 게 쌀쌀맞다며, 그럼에도 나는 떡살의 질을 포기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펼치고 계셨다. 떡살은 그녀에게 포기할 수 없는, 자존심의 한 형태 같았다. 


하지만 아직 떡살은 봉지 안에 그대로 있다. 육수는 불 위에 오르지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계란 지단은 언감생심이다. 파, 양파 등 각각의 재료들이 도마 위로 오르지도 못한 채 방치돼 있다. 그럼에도 나는 궁금했다. 그분의 떡국 레시피가.


하지만 대화는 떡국 주변을 빙빙 돌아 아직도 떡살에 포커스가 맞춰져있다. 갑자기 떡살 공구로 얘기가 이어졌다. 나는 답답했다. 아직까지 주인공인 태양이 아닌 소행성에 초점을 맞춰져있다. 언제까지 태양 궤도만을 빙빙 돌 것인가.


“자기도 나랑 같이 사자. 하나 사서 반으로 나누면 돼”


시계는 11시를 넘어 11시 반으로 향하고 있다. 떡살을 어떻게 구매하는지에 대한 장황한 설명은 끝나지 않고 있다. 다시 떡살의 투명성으로 불똥이 튀었다. 떡들은 아직도 대기발령 중이다. 양지머리는 상할 수도 있으니, 어쩜 명퇴를 할지도 모른다. 채소들은 이미 포기한 모양이다. 수수방관 자세로 누워있다. 


나는 나의 뇌피셜로 떡국이 보글보글 끓는 모습은 상상한다. 육수 위로 다시마가 거침없이 향해 중이다. 진간장이 아닌, 집간장, 속칭 조선간장을 넣어 간을 맞춘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거품들은 중세 시대 마녀의 수프가 끓고 있는, 동그란 형체와 유사하다. 괜한 상상에 빠져 달걀지단을 태워먹었다. 접시 위에 올려놓으니 살짝 누렇게 탄 누룽지 같다. 파들도 2열 종대로 눕혀 떡살처럼 어슷 선다. 같은 부대의 부대원임을 입증하기라고 하는 것처럼, 한배를 탄 공동체처럼 말이다. 


아직도 저쪽에선 떡살 얘기 중이다. 떡살로 1시간이 넘게 장시간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 어쩌면 그녀가 진정한 이야기의 고수일 수 있다. 고수는 별거 아닌 일도 별일인 것처럼 적절하게 포장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녀의 능력은 무명의 떡살이 떡국의 주연으로 포장할 수 있는, 언어의 연금술사, 아니면 대화의 소분 능력이 뛰어난 능력자이다. 아니면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 떡국의 주연은 떡살이 맞다는 것. 나는 '떡'이 아닌 '국'에 집착한 모양이다. 국물맛에 집중한 나와는 다른, '떡'에 대한 집중은 완벽한 타자의 시선이다. 그녀의 입에서 재탄생된 떡국은 나와는 다른 결의 놀라운 발견이었다.


플라나리아의 꼬리를 자르면, 두 마리의 플라나리아로 재생된다는, 까마득한 시절, 생물 시간에 배운 내용이 순식간에 머리를 스쳐갔다. 이날 카페에서 만난 떡살도 아무리 귀를 막고, 거부해도, 계속해서 재생되는 플라나리아처럼 그녀의 입을 통해서 자동 번식 중이었다. 


노트북을 닫는다. 내가 나오는 와중에도 떡국은 아직 조리 전이었다. 허기가 진 나는 식당으로 발을 옮겼다. 메뉴판을 둘러본다. 그럼에도 나는 떡국이 쳐다보기 싫어졌다.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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