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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Nov 12. 2020

몸의 언어는 정직하다

최소한의 액션으로 그림에 해를 입히지 않았던 두 직업인을 보면서

녹화를 하다가 뒤에 걸린 그림이 뚝! 하고 떨어졌다. 이때 가운데 있던 MC가 손바닥으로 그림이 넘어가는걸 막았다. 천만다행이다. 그 그림은 100호 짜리로 호당 50만원 작가의 작품이다. 즉, 그림 한 점 가격이 5천만원인 고가의 그림이었다. 그림에 손상이라도 가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런데 내 감동의 지점은 여기가 아니다. 미술투자에 관한 프로그램이었다. 엠씨 포함 3명의 방송인과 두 명의 미술 관련 직업인이 출연한다. 미술이 과연 투자가 될지 말지 뭐 그런 얘기를 한다기보단 미술 관련한 역사학적인 접근과 관련한 정보들을 소개해주는 방식에 가깝다. 투자성을 강조하기가엔 심의의 영역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살짝 투자를 스칠 뿐이다.


그런데 그림이 떨어지는 순간, 우리는 모두 정지상태가 되었다. 몇초도 안 되는 찰나의 시간동안 출연진 및 제작진 이하는 어~하고 놀라다 끝났다. 그런데 이때 홍길동처럼 나타나 쓰러지는 그림을 지탱해준 두 명의 의인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출연자인 한 명의 아트딜러와 또 한 명의 도슨트.  특히 도슨트 출연자의 자리는 그림과 가장 먼 거리였다.. 게다가 그의 평소 생활 속도를 가늠해봤을 때, 이날 행동은 기적에 가까웠다.


순식간에 달려와 각각 그림 한 귀퉁이 잡고 있던 두 명의 (미술 전문 직종) 직업인들을 보다가 울컥했다. 가끔 출근하던 소방관이 화재 현장으로 달려가 불을 끄고, 주민들을 구했다거나 길에서 만난 도둑을 잡기 위해 몸을 던진 태권도 관장의 사연을 뉴스로 접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까라며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의 몸은 위험을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은 뼛속까지 스며든 직업의 소명 의식이 몸에 베여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그림의 가치를 알고 있다. 그림에 상처에 생기는 순간, 벌어질 여러 상황듫에 대해 이미 몸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머리의 부름이 아닌 몸의 반응으로 판단가능한 그림에 대한 애정도. 그런 면에서 그 두 사람의 그림에 대한 애정도는 이미 만점에 가깝다.


순발력은 강했지만, 그림을 투박하게 잡은 엠씨에 비하면(이 역시 무조건반사적인 행동이므로 문제될 건 없다), 그 둘은 섬세하게 그림을 잡아끌었다. 그림을 집어서 올리는게 아니라 살짝 당겨서 다시 세우는 느낌이다. 이것은 평소에도 그들이 그림을 대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최대한 그림에 해를 입지 않는 선에서 그림과 접촉한다. 접촉면은 최대한 적게해서 몸을 움추린다. 비싼 그림이어서가 아니다. 평소에도 그들은 투자보단 그림 자체에 대한 얘기를 할 때 표정이 밝았다.


사실 미술은 예술의 영역에 가까워 돈으로 모든 가치를 평가하기 어려운게 사실이다. 게다가 미술 관련한 직업들이 꽤나 잘나가는, 선호하는 직업이 아니다. 뜨는 직업일 순 있지만, 그것이  굉장히 처음부터 부의 차선을 바꿔줄만큼 혁명적이진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경력에 비해 사회물이 덜 뜬 느낌이 든다. 그러므로 이 바닥에서 자신의 영역 구축을 위해 혼신의 꼼수를 쓰지 않을 것 같다.


이번 일로 나는 나는 그들을 지지하기로 했다. 그림을 매만지는 손에서 진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진정한 직업인의 기준은 진정성이 아닐까. 지금 하는 일을 대하는 태도가 결국 그 사람의 진심이다. 그림이 좋아 어쨌든 시작하게 된 지금의 일들이 그들에게도 빛을 비춰줬으면 좋겠다.


다시 다소곳하게 자리에 않는 두 사람. 다시 방송을 이어간다. 언제 그랬냐는듯 아무렇지도 않게 녹화가 시작된다. 녹화가 끝나고, 엠씨는 자신의 공로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자리를 정리하고 나오는 그 둘을 보면, 내가 한 마디한다.


"가장 먼저 그림한테 달려가네요?"

"아 그러게요. 엠씨님이 다칠 수도 있있는데 사람보다 그림이 먼저였네요"

"아 뭔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아요"


웃으면서 대화를 끝냈다. 하지만 그들은 잘못이 없다. 그림을 좋아해서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다. 이런 숨은 열정을 지닌 몸을 동경한다. 몸은 속이지 않는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드러내는가 안드러내는가가 기준점이 된다. 나는 그들이 좀더 자신의 열정을 몸으로 드러내주길 바란다. 스스로의 진심을 잘 메이킹해서 오래오래 미술쪽에서 발을 딛고 설 수 있는 직업인이 됐으면 좋겠다.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결국 좋아하는 일에 배신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는 그들은 계속 미술의 중심부로 파고들어 세상 밖으로 드러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그들의 무해한 열정이 세상의 한 줌 빛이 될거라 믿는다. 나아가 선한 믿음과 열정을 지닌 세상 모든 직업인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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