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지방이 5%쯤 빠지자 트레이너가 말했다.
“이제 달릴 수 있는 몸이 된 것 같아요.
러닝을 시작해 봅시다.”
마침 그때 트레이너도 달리기에 푹 빠져 있던 터라, 나를 단련시켜 러닝메이트로 만들겠다고 했다.
무엇보다 “달릴 수 있는 몸이 되었다 “는 트레이너의 말에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마치 무술 영화에서 물동이만 나르던 제자가 드디어 사부에게 “이제 네게 무술을 가르치겠다”는 인정을 받는 순간처럼 설레었다.
마지막으로 달렸던 건 고등학교 체력장 때였다. 내 운동에 대한 자신감은 바닥이었고, 체력장의 마지막 순서인 오래 달리기가 가장 괴로웠다. 숨은 턱턱 막히고, 나보다 한 바퀴 더 돌아온 친구가 스치듯 앞질러 가는 순간에 느꼈던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무력감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다시 38세의 현재.
며칠 전 트레이너와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기 자세를 배우고, 드디어 실외에서 혼자 2km 달리기에 도전했다. 경사는 자신 없어 평지를 골랐다. 아파트 놀이터를 일곱 바퀴 돌면 대략 2km가 된다. 운동복을 입고, 허리에 핸드폰을 차고, 나이키런 앱을 켜고 달리기 시작했다.
두 바퀴쯤 돌자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달리기를 멈추자마자 나이키앱에서
“운동을 중단했습니다.”라고 말한다.
고작 두 바퀴 돌고 이렇게 죽을 것 같다고? 말도 안돼.
숨을 고르고 다시 달렸다.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또 한 바퀴 돌고 멈추자 다시 들려왔다.
“운동을 중단했습니다.”
나름 1년 동안 운동을 해왔으니 심폐 지구력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달리기를 시작하자마자 숨이 턱턱 막히니 18살 체력장이 떠오르며 그때와 같은 좌절감이 밀려왔다.
슬슬 나이키런의 ‘중단’이라는 단어에 약이 올랐다.
“내가 멈추고 싶어서 멈춘 게 아니야.”
혼잣말을 내뱉으며 이를 악물고 다시 달렸다.
고비가 오자 이번에는 멈추지 않고 걷기로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운동을 중단했습니다’라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 얼굴이 일그러지며 눈물이 터져 나왔다.
걷기만 했는데도 앱은 ‘중단’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 멈추지만 않으면 되는 거다.
느리게 걸어도 멈추지 않으면 된다.
내 인생도 멈춘 게 아니다.
비록 남들이 보기엔 가정주부일지 몰라도,
나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단지 내 인생의 ‘걷는 시기’를 지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울면서 2km를 완주했다.
아이 키우며 행복하다고 생각했지만,
내 안의 나는 무언가를 더 원하고 있었다.
아내와 엄마로서의 나 말고,
‘나로서의 나’로 살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날 결심했다.
나는 앞으로 더 많이 달릴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글로 기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