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haikovsky Piano Concerto No.1 3악장
1919년 그날도 오늘의 아침처럼 많이 추웠을까. 오늘은 도쿄에서 일본 유학생들이 모여 2·8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날입니다.
1917년 10월 11일에 1차 세계대전이 끝났습니다. 그 이듬해 1918년 6월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도쿄에 유학 온 조선 유학생들이 고무되었습니다. 당시 유학생계에서 리더 역할을 했고 학우회 기관지 학지광(學之光) 편집장이었던 최팔용이, 편집위원이었던 김을환을 만나 조국 광복을 부르짖기에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후 최팔용, 김도연, 백관수 3인이 주축이 되어 조국 광복을 외치는 일에 대해 모의했습니다.
1919년 3·1운동 한 달 남짓 전에, 2월 8일 도쿄에서 조선 유학생들이 조선청년독립단 명의로 한국의 독립을 선포했습니다. 107년 전의 일입니다. 소설가 이광수 씨가 원문과 영문을 작성하고, 조소앙 선생이 지도했으며, 백관수가 낭독했습니다. 이 선언문은 각국 공사, 일본 국회, 조선총독부 등에 발송했습니다. 낭독 직후 일본 경찰이 들이닥쳐 60여 명이 체포되었습니다. 이후 2월 12일과 28일에도 히비야 공원에서 선언문을 낭독하고 거리를 행진했습니다.
2·8 독립선언은 바로 탑골공원에서 이어진 3·1 만세운동의 도화선이었고,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퍼지게 된 용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 동안 최초의 순수한 학생운동으로 평가됩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도 일본 내 독립투사들이 활약한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 고애신의 부모가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죽습니다. 아마 고애신의 부모가 1919년 당시에 활동하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박경리 선생님의 장편소설 『토지』, 미국 여기자 님 웰이즈가 독립투사 김산의 이야기를 엮어 쓴 『아리랑』, 최근에는 김주혜 작가의 장편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 등에서도 도쿄 유학생들을 그린 장면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비록 3·1 만세운동에 가려 의미가 축소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2·8 독립선언을 하던 107년 전 오늘 아침은 그들에겐 무척 긴장되고, 떨리고, 순수한 날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언서를 낭독한다는 것은 결국 ‘문장을 읽는 일’이 아니라, 되돌아갈 수 없는 선을 넘는 일이었을테니 말입니다.
오늘은 이 마음 위에 음악을 한 곡 올려둡니다.
Pyotr Ilyich Tchaikovsky: Piano Concerto No.1 in B-flat minor op.23-Allegro con fuoco
차이콥스키는 늘 불안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공보다 실패에 민감했고, 스스로를 늘 의심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음악의 기준이라 여겼던 모차르트와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했고, 형식미와 구성력에서 부족하다고 느끼며 신경쇠약에 가까운 상태로 지내곤 했습니다. 그런 차이콥스키에게도 확신하지 못한 작품이 있었는데, 바로 피아노 협주곡 제1번입니다.
이 곡은 1874년에 작곡되었습니다. 차이콥스키는 당시 모스크바 음악원 원장이자 피아니스트였던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에게 이 작품을 헌정했고, 초연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차이콥스키는 이 곡을 제법 잘 썼다고 느꼈고, 그래서 더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혹평이었습니다. 루빈슈타인은 이 곡을 졸작이라 평가했고, 차이콥스키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몇 군데만 고치면 연주하겠다는 제안도 있었지만, 차이콥스키는 단호했습니다. “단 한 개의 음표도 고치지 않겠다.” 그는 곡을 고치지 않았고, 헌정도 철회했습니다. 차이콥스키가 후원자였던 데즈다 폰 메크(Nadezhda von Meck)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내용이 자주 언급됩니다.
이후 이 곡은 독일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에게 넘어갑니다. 뷜로는 이 작품의 가치를 알아봤고, 1875년 미국 보스턴에서 초연을 맡았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이후 유럽으로 돌아와 연주가 이어졌고, 그제야 러시아에서도 이 곡의 진가가 인정됩니다. 훗날 루빈슈타인 역시 차이코프스키에게 사과하고, 이 협주곡을 직접 연주하며 평가를 바꾸게 됩니다.
차이콥스키에게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바이올린 협주곡 역시 레오폴트 아우어에게 “연주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가 뒤늦게 명곡이 됩니다. 차이콥스키는 스스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내 협주곡은 퇴짜를 맞아야 명곡이 되는 것 같다.” 실제로 피아노 협주곡 2번과 3번은 비교적 순조롭게 연주되었지만, 1번만큼의 명성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이 협주곡은 세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악장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시작으로 유명합니다. 장중한 관현악 위에 피아노가 힘 있게 등장하고, 웅장한 서두가 청중을 단번에 끌어당깁니다. 그러나 이 주제는 이후 거의 다시 등장하지 않습니다. 화려한 시작 뒤에 긴 구조를 감당하는 악장입니다.
2악장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플루트가 조용히 선율을 시작하고, 피아노는 노래하듯 응답합니다. 짧은 중간부를 지나 다시 처음의 서정으로 돌아옵니다. 이 악장은 기교보다 호흡과 균형이 중요합니다.
https://youtu.be/x3fundHivzc?si=cyKEkeMvydztIc_2
그리고 오늘 아침에 감상할 음악은 3악장입니다. Allegro con fuoco, ‘불을 품고 빠르게’라는 뜻의 악장입니다.
이 악장은 망설이지 않습니다. 리듬이 먼저 몸을 앞으로 밀어내고,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는 춤곡처럼 움직입니다. 우크라이나 민속춤의 성격이 스며든 이 악장은, 무거운 감정에 머물지 않고 끝까지 앞으로 나아갑니다.
나는 이 악장을 들을 때마다, 통제된 세계 안에서 바깥을 향해 달리고 싶은 마음을 떠올립니다. 차이콥스키의 성격과도, 이 곡이 처음 거절당하고 돌아 돌아 인정받은 과정과도 겹쳐 보입니다. 억눌린 감정이 아니라, 끝내 밀고 나가는 힘입니다.
이병헌 배우, 윤여정 배우, 박정민 배우가 주연으로 참여한 영화 '그것만이 내세상'에서 극중 한가율의 어머니에 의해 진태가 참여한 갈라콘서트에서 이 곡을 연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진태의 어머님이 투병중에 힘들게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생각이 납니다.
오늘 아침에 감상한 곡을 연주한 타티야나 니콜라예바(Tatjana Nikolajewa, 1924–1993)는 ‘차이콥스키 협주곡의 전설’ 같은 수식보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 1906–1975)와의 연결로 더 또렷하게 기억되는 연주자입니다.
1950년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콩쿠르에서 니콜라예바의 연주가 주목을 받았고, 그 인연을 계기로 쇼스타코비치가 「24개의 전주곡과 푸가 Op.87」을 쓰게 되었다는 설명이 널리 전해집니다. 이 대작이 니콜라예바에게 헌정되었다는 점만으로도, 그녀가 ‘기교’보다 ‘구조와 집중력’으로 신뢰받던 피아니스트였다는 인상이 남습니다.
그래서 니콜라예바가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면, 듣는 이는 자연스럽게 한 가지를 기대하게 됩니다. 속도를 흔들지 않고, 감정을 과하게 풀어놓지 않고, 끝까지 음악을 붙잡고 가는 방식입니다. 그 덕분에 3악장의 추진력도 난폭하게 들리기보다, 오래 버티는 힘으로 들릴 수 있어 감동이기도 하죠.
올 겨울 가장 추운 날 아침
오늘 아침은 강풍을 동반한 강추위가 최고조에 달한 것 같습니다. 방 안에 가만히 있어도 찬기운이 창문 틈 사이로 조금씩 들어옵니다. 창밖 버스정류장을 보니 교회에 가려는 분들이 성경책을 끼고, 추위를 이겨내려는지 제자리에서 잰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 피아노 협주곡 1번 3악장의 마지막은 들을 때마다 영화 속 박정민 배우가 연주를 끝내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피아노 한 대가 저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동시에 웅장하게 울릴 수 있다는 것을 이 곡에서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2·8 독립선언이 있었던 날, 나라를 지킨다는 것을 이 곡과 함께 생각해 봅니다. 오늘은 정말 춥습니다. 외출보다는 실내가 더 좋은 날입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