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들이 사랑하는 작가 박완서 작가 단편모음집 '쥬디 할머니' 중
지난 20일 소설가가 사랑하는 ‘박완서 단편 베스트 10 : 쥬디 할머니’를 문학동네에서 출간했다. 출판사의 소개글에 따르면, 『쥬디 할머니』는 박완서 단편문학의 뛰어난 성취를 새로이 조명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출판사 문학동네는 "한강 작가, 강화길 작가, 구병모 작가 등 31명의 한국 대표 소설가들에게 ‘박완서 단편 소설 전집’(전7권, 문학동네, 2013)에 수록된 97편의 단편소설 가운데 최고의 작품 2~3편을 추천받아 최종 10편을 선정해 엮었다"고 한다.
지금도 널리 회자되며 읽히는 불후의 명작 「도둑맞은 가난」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뿐 아니라, 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재에도 주목할 만한 의외의 작품 「쥬디 할머니」 「애 보기가 쉽다고?」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틀니」 등 총 10편이 수록되었다.
오늘은 이 단편집에서 1985년 6월에 발간한 「해산바가지」라는 단편 소설을 읽었다. 이 소설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생기는 유구한 고부 갈등 문제를 다룬다. 시어머니인 친구와 아들을 낳지 못한 친구의 며느리 간 긴장된 상황을 지켜보던 ‘나’가 한세월을 함께하고 돌아가신 자신의 시어머니를 떠올리는 이야기로, 가족문제를 넘어 한 인간이라는 존재를 깊은 그리움과 애끓는 연민의 시선으로 들여다보게 하는 작품이다.
아들 선호사상이 자리잡혀 있던 시대의 흔한 소재를 박작가님의 해학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소설의 전반부는 친구와 화자인 ‘나’의 대화로 시작한다. 친구의 며느리가 첫째에 이어 둘째도 딸을 낳아 타박한 내용으로 시작한다. 대화의 리듬을 살린 서사적 진행은 당시 평범한 일상의 문제를 극적으로 확대한다.
작품의 후반부에는 손녀 4명, 손자 1명을 모두 정성스럽게 뒷바라지 했던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린다. ‘나’는 친척들과 남편 앞에서는 효부로 위장하지만 정작 시어머니가 죽기를 바란다. 그런 주인공의 모습은 극적 긴장을 고조한다. 남아선호사상과 고부간 갈등이라는 평범하고 익숙한 소재는 박작가님의 맛깔나는 문장으로 가벼운 리듬으로 서사적으로 풀린다.
주인공이 시어머니를 모시며 겪는 피로와 위선을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친척과 남편 앞에서는 효부인 척하면서, 속으로는 시어머니가 죽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드러낸다. 박완서는 이런 마음을 ‘좋다/나쁘다’로 바로 결론내리지 않고, 사람이 실제로 얼마나 복잡한지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독자는 불편해도 끝까지 읽게 된다.
주인공은 남편과 함께 암자 비슷한 시골의 수용 기관을 직접 살펴보기 위해 시골로 간다. 더운 날씨에 지친 남편이 동네 어귀 구멍가게에서 술을 마시며 쉬고 있을 때 나는 지붕 위에 걸린 박을 발견하고 해산바가지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 나는 정갈한 해산바가지를 마련해 엄숙하고 경건하게 다섯 명의 손주들을 받아낸 시어머니를 생각하게 된다. 딸과 아들을 가리지 않고 그 모든 생명을 정성스럽게 대하던 시어머니의 진지하고 아름다웠던 모습이 생각난 것이다.
이 장면이 가장 인상이 깊었던 지점으로 느끼는 이유는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생활 속 사물 하나가 기억을 꺼내고, 그 기억이 ‘나’의 태도를 바꾸게 되는 소설의 전환점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더위에 지쳐 구멍가게에서 술을 마시며 쉬는 동안, ‘나’가 지붕 위의 박을 보게 되는 흐름도 생활 그대로다. 박완서 단편은 이런 생활의 결을 무리하게 꾸미지 않고, 장면 하나로 인물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시어머니가 생명을 경건하게 대했던 것처럼 주인공 자신도 시어머니의 생에 합당한 대우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주인공은 남들 앞에서 효부인 척 위선을 떨지 않으면서 비로소 만성 신경증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내용이다.
작품 속에서 ‘해산바가지’는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는 시어머니의 생명에 대한 존중 의식을 보여주는 소재다. 이는 또 ‘나’가 시어머니를 이해하고 고부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재료로도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인문학관 자료에서도 박완서 선생님이 실제로 시어머니에게서 받았던 해산바가지가 있었고, 그것이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취지로 소개한다. 작품 속 소재가 생활의 기억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해산바가지’가 단지 상징으로만 놓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해산바가지는 사전적 의미로 ‘첫 국밥을 만들 때 쓰는 바가지’인데, 잘생긴 해산 바가지로 미역 빨고 쌀 씻어 두 개의 해산 사발에 밥 따로 국 따로 퍼다가 내 머리맡에 놓아 정성껏 산모의 건강과 아기의 명복을 비는 전통이다.
이 짧은 단편을 읽으면서 주인공 ‘나’가 ‘효부인 척’하는 태도와 ‘치매걸린 시어머니’를 모시는 번거로움을 싫어하는 태도를 이해한다. 하지만 내리 4명의 딸을 나은 ‘나’를 위해 해산바가지를 해주는 시어머니를 이해하는 장면은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박작가님의 문장은 한편으로는 쉬운 단어로, 일상적인 소재를 재미있게 풀어 감동을 주었던 작가였던 것 같다. 나는 박작가님의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좋아했다. 그녀의 생각 등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1일은 故 박완서 작가의 타계 15주기인 만큼, 그녀의 소설을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