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아침공기가 연일 추워지니 마음 깊은 자아가 오늘은 쉬자고 꼬드긴다.
글을 쓰다 보면 단어가 딸린다. 아니, 떠오르는 단어 외에는 생각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그래서 요즘은 좋은 문장이 있으면 수첩에 적어놓는다. 시간이 지나고 며칠이 지나고, 한두 달이 지나 적당한 단어와 문장을 찾기 위해 수첩을 펼쳐본다. 그런데 문장을 읽는데도, 수첩에 쓸 당시 이 문장을 왜 썼지, 무슨 느낌을 받아서 썼지, 그게 생각이 안 난다. 그럴 때면 나는 속으로 내 자신을 엄청 욕한다. ‘돌머리’라고.
문장이 쉽고 예쁘게 쓰이던 故 박완서 선생님도 좋은 글을 쓰고, 위로를 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에세이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는 “시를 읽는다. 단어 하나를 꿔오기 위해, 또는 슬쩍 베끼기 위해. 시집은 이렇듯 나에게 좋은 말의 보고다. 심심하고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는 문장이 있다. 저 문장을 읽으면 나는 좀 얄궂게도 안심이 된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어서다.
나는 글을 쓰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거나, 쓸쓸하거나, 죽음을 생각할 때도 책을 다시 펼친다. 스스로가 납득이 가지 않으면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다. 태그해놓은 문장들 중심으로.
‘모순’, ‘동물농장’,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같은 책을 다시 꺼낸다. 태그해둔 문장들을 중심으로 펼친다. 무엇 때문에 태그했는지는 반쯤은 모르지만, 밑줄도 치고 동그라미도 그려놓았다. 다시 읽는 문단들이, 그 페이지들이 새롭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읽는 경우도 많다. 글은 많이 읽어도, 여러 책보다는 적은 수의 책을 여러 번 읽는다. 그만큼 나는 구입하는 책도 많지만 버리는 책도 많다.
나도 선생님처럼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꿔오기 위해 책을 읽기도 한다. 매일 아침마다 쓰는 이 서문은 나에게 큰 일이자 숙제가 되어버렸다. 오늘은 무엇을 얘기하며 음악을 소개할까. 네이버를 검색하고, 책장의 책들을 꺼내고, 나는 매일 두 시간 가까이를 글을 쓸 주제를 찾아 헤맨다. 오늘 새벽에도 나는 헤맸다.
바깥의 바람이 세다. 창문이 흔들리는 걸 보니 그렇다. 창문을 살짝 열어본다. 우와, 얼음 같은 차가운 공기가 속옷만 입은 나를 덮친다. 살에 소름이 돋고 눈이 번쩍 뜨인다. 잽싸게 창문을 닫는다. 더 이상 추가할 내용도 없다. 오늘은 이 정도에서 글을 마쳐야겠다.
오늘도 무척 추울 모양이다. 집을 나설 때 어제처럼 몇 겹 입어야겠다.(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