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발인에 대한 단상

- 정치인 보다 원칙을 지키려는 공직자로서의 모습이 더 기억나는 분

by 메이슨

어제가 이해찬 전 국무총리님의 발인 날이었습니다. 고인은 나의 고향인 세종시 땅에 묻혔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발인은 2026년 1월 31일에 치러졌고, 세종에서 영면에 들었습니다.


그가 더불어민주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세종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던 일도 떠오릅니다. 세종시는 그의 세 번째 고향이 된 셈일까요. 충남 청양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그리고 마지막을 세종시에서 맞았습니다.


가장 공적인 사람, ‘공무원’이라는 명칭이 잘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유시민 작가도 그를 공적 마인드를 늘 갖추고 있는 분이라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감히 청렴하고 나라를 위해 공적인 직무를 잘 수행했던 사람으로 두 분을 꼽습니다. 한 분은 박태준 전 국무총리님이고, 나머지 한 분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님입니다.


박태준 전 총리님은 제가 포항제철에 입사할 당시 민자당의 유력 정치인이기도 했고, 포항제철의 회장님이셨습니다. 2011년 그가 돌아가신 뒤에도, 본인 명의의 집이나 주식이 없을 만큼 축재와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는 사실이 제게는 크게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큰딸 집에서 지내셨다는 이야기도 저는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포항제철소를 지을 때 설계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정이 80% 가까이 진행된 건물을 폭파하고 다시 지을 정도로 원칙과 정도를 지킨 분이었다는 일화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해찬 전 국무총리님도 공익을 추구했던 분입니다. 그가 2007년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면서 펴낸 『청양 이 면장 댁 셋째 아들 이해찬』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이 전 총리님은 자신이 ‘버럭 총리’라는 별명에 유감이 없다고 적었습니다. 사적인 영역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누가 무슨 일을 하든 개의치 않는 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공인으로 살아서인지 원칙과 관련된 일에는 예민하고, 상대방의 반응이 합리적인 기준을 넘어서면 격분하여 ‘버럭’ 소리를 지를 때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청양 면장이셨던 아버지가 늘 사상이나 이념보다 사람의 도리가 중요하다고 여기셨던 뜻을 이어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 장례를 치르며 부의금을 받지 않았다는 보도도 보았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이해찬 회고록’을 구입했습니다. 2007년에 읽었던 그의 첫 번째 회고록을 떠올리며, 저는 그를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한 공직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을 이렇게 평가하는 것이 너무한가 싶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청렴하면서 누추해 보이지 않았고 당당했으며, 직책은 총리로 화려했으나 겸손했기 때문입니다.


나의 조상들이 묻히신 선산 옆에 오신 이해찬 전 국무총리님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빕니다. 조문도 발인도 참석하지 못했지만, 성묘를 드리러 갈 때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강남역 유기뱀 출현으로 추억 소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