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즐겨보는 '굿파트너'라는 드라마가 있다. 이혼변호사가 주인공이고 매 회 다른 이혼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재미있다. 한 에피소드를 보니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드라마 '굿파트너' 6회 에피소드 '부모의 자격'
매일 술을 마시고 유튜브를 하겠다며 돈도 벌어오지 않는 남편과 독박 육아와 저런 남편에게 지쳐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내가 서로 아이들을 키우지 않겠다며 양육권 다툼을 한다.(쌍둥이 남자아이 둘이다.)아내의 변호를 맡은 주인공이 이렇게 말한다.
"그런 인간한테 양육권을 넘기겠다고요?"
"조금만 더 힘내서 아이들 데리고 오시는 게 어떻겠어요?
오랜만에 모인 세븐
중학생 때 교회에서 만나 [세븐]이란 활동명으로 오랜 시간 몰려다닌 혼성멤버들이 있다. 사회인이 되고 각자의 가정이 생긴 후로는 결혼식 아니면 장례식장에서나 간간히 얼굴을 본다. 3년 전 한 오빠의 부친상에서대화를 하다가 질문을 했다.
"만약 이혼하면 애는 누가 키울 거야?"
아들 셋에 모성애 충만한 친구는 "난... 내가 키울래"라고 말했다. 결혼 후에도 자유분방하게 사는 한 오빠는 자기는 못 키울 것 같다고 말했고 옆에 있던 그의 아내는 자신이 키우고 싶다고 했다. 프랑스식 수면 분리를 훌륭히 해낸 친구는 "아빠 보고 키우라고 할 거야"라고 말했고 한 오빠가 이렇게 말했다.
"애들은 엄마가 키워야지."
2017년 10월 어느 날
둘째 돌이 막 지났을 무렵 이혼이 하고 싶었다. 8월 사소한 다툼으로 시작해 두 달여간 투명인간처럼 살다가 이혼 결심이 98%쯤 되었을 때 엄마에게 말했다.
"그냥 같이 살기 싫어"
"애들은?"
"신랑이 키우겠지"
(많은 이야기들을 했으나 기억이 안 남.)
"애들은 엄마가 키워야지 어째 그러노. 엄마가 도와줄게. 니가 키운다고 해라"
다시 굿파트너
힘들더라도 아이들을 키우는 게 좋지 않겠냐는 주인공에게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애들 옆에만 있어 준다고 잘 클까요? 애들이 사랑만 주면 크나요? 애비가 돈을 안 버는데 저라도 벌어야죠. 우리 애들 보내고 저 우울증 치료 좀 하고 바로 취업할 거예요. 애들 맡겨 두고 죽어라 돈 벌 거예요. 나 우리 애들 잘 키우고 싶어요. 그리고 내가 누구였는지 나 자신도 꼭 찾고 싶어요."
유능한 이혼 변호사인 주인공들 덕분에 양육권을 남편이 가져가게 된다. 남편의 부모님이 교육자 출신이라 좋은 보조 양육자가 될 수 있고 남편이 재판 기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조금은 양육을 충실히 해나가게 된다는 설정이 붙는다.
이런 설정과 절절한 엄마의 고백이 없었으면 서로 안 키우겠다고 했는데도 모든 비난의 화살은 엄마에게 돌아가지 않았을까? 드라마에서조차 이런 설정이라도 있어야 엄마가 애들을 키우지 않는 게 용서되는 사실이 씁쓸했다.
다시 세븐
"왜 애들은 엄마가 키워야 되는데? 이유를 설명해 봐라."
"..."
"혼자 키울 자신이 없다고 해야지. 왜 그런 말로 책임을 떠 넘기노? 오빠 와이프가 애들 못 키우겠다고 하면 우짤낀데? 어? 혼자 키울 생각 하니까 막막하제. 엄마들은 안 그럴 거 같나. 왜 엄마가 당연히 아이들을 키워야 된다고 생각하지?"
멤버들은 할 생각도 없는 이혼을 시켜 놓고 원하는 답을 하지 않는다고 혼자 열폭. (하도 많이 겪어서 그러려니 하는 멤버들..)
다시 2017년
"싫어. 힘들어. 혼자 살고 싶어."
'내 딸이지만 자는 왜 저렇노'하는 표정의 엄마.
그때의 나는 무기력하고 우울했다. 일을 하고 있지 않았는데 취업을 할 수는 있을지 불안했다. 감정은 요동쳤고 육아에 지쳐 있어 아이들을 잘 키울 자신이 1도 없었다.
혼자 벌어서 아이 둘 키우기엔 빠듯할게 뻔했다. (양육비를 받더라도..) 직장에 아쉬운 소리 해야 할 일도 생긴다. (함께 키우는 지금도 그렇다.) 일하고 돌아와 집안일에 아이들 케어까지 전부 혼자 해야 되는 그 힘든 길을 나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마 매일 아이들에게 소리치고 짜증 내겠지? 사춘기가 된 아이들은 결국 나를 싫어하게 될지도 모른다.(당시 6세, 2세.) 가끔 만나서 맛있는 거랑 선물 사주고 용돈 팍팍 주고 잔소리 하지 않는 아빠를 더 좋아하게 될 거란 생각만 해도 부아가 치밀었다. (의식의 흐름 무엇?)
도와주겠다는 엄마의 말도 믿을 수 없었다.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받더라도 솔직히 이 모든 힘듦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무엇보다 신랑은 좋은 아빠였고 적어도 나보다는 잘 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된다는 말.
아이를 키우지 않겠다는 엄마에게 향하는 비난.
아이를 혼자 키우는 엄마는 당연하면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 아빠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
난 이게 너무 불편하다.
왜 엄마라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좋다는 건 누가 정한 거지?
결혼을 하면서 두 가지를 결심했다.
1.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을 만들겠다.
2. 화목하지 못하다면 '애들 때문에' 억지로 살지는 않겠다.
2017년의 우리는 행복하지 못했고 2번의 결심을 신속하게 실행했어야 했지만 2개월여 동안 투명인간처럼 지내면서 고민했던 이유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과 따로 살아야 한다는 결정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매일 밤 울었다.
결론만 말하면 이혼하지 않고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신랑은 이혼 과정에 대해 검색을 하면서 양육권에 대해서 알아봤다고 한다. 보통 양육권은 엄마에게 가니까 불안했다고.(걱정하지 마. 아이들은 자기가 키우게 해 줄게.) 시어머니께도 이혼하면 아이들은 자기가 키울 거라고 했더니 본인은 못 도와주니 니가 알아서 하라고 하셨단다.(근데 이 말 은근 섭섭하더라.) 그래서 당황한 신랑이 화해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는지도. 혼자 키울 자신은 없었나 보다.
이때의 일로 아이들과 떨어져서 산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힘든 일임을 알았다. 둘 다 혼자서 아이들을 키울 자신도 없다.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