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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싸 Sep 12. 2024

아프냐.. 나도 아프다.

다정함도 연습하면 생기나요?


신랑이 나에게 가장 섭섭해하는 부분은 본인이 아프다고 말할 때 미묘하게 굳어지는 표정과 딱딱한 말투, 걱정 따윈 하지 않는 것 같은 태도이다. 두 번의 큰 수술을 받은 그가 마취가 풀리자마자 했던 말은 "자긴 왜 안 울어?"였다. (수술 잘 끝났는데 울긴 왜 우니...?)




신랑이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고? 아프다고 하는데 설마 저렇게 행동한다고? 그렇다. 모두 사실이다. 난 왜 이렇게 아픈 사람에게 냉랭해지는 걸까....?








내 기억 속 엄마는 늘 아팠다.(잔잔하게 꾸준히 아팠고 생사를 오간 적도 있다.)



"너 낳고 산후병이 생겨서, 아이를 낳고 조리를 잘하면 낫는다길래 동생 낳은 거야."



 "너 낳고 아팠다."라는 말을 항상 들었고 이 말은 어린 내가 죄책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구박받았냐고? 아니..) 엄마는 뒤에 이 말을 꼭 붙였다.



"근데 너 낳고 보니까 니가 너무 좋더라. 언니 낳았을 때는 안 그랬는데...." 



나를 싫어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감사함과 책임감으로 변하게 되는 말이었다. 엄마가 먼저 태어난 언니보다,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동생보다, 낳고 나서 병까지 얻었지만 나를 제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아플 때마다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꼈고 난 착한 딸이 되어 있었다.



나를 제일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딱히 편애를 받진 않았다. 오히려 아픈 엄마를 돌보는 것과 엄마의 공백 착한 딸인 내가 메꾸어야 했다. 늘 엄마 곁을 지켰기에 집안의 우환과 당신의 힘듦을 모조리 나에게 쏟아냈고 나는 그저 가만히 모두 들어주었다. 어리광 한번 마음껏 부리지 못했고 참 많이 외로웠다. 

머리가 커진 후론 아픈 걸 무기 삼아 나를 감정쓰레기통으로 사용했다는 생각들로 무척이나 괴로웠고 엄마를 오랫동안 미워했다. (지금은 엄마를 이해한다.)



이제 좀 살만해지나 싶을 때 암에 걸린 아빠. 아빠 일을 도우면서 20대 여성으로서 느껴야 했던 부끄러움과 '왜 나만?'이라는 억울함, 아픈 아빠를 향한 죄책감까지 느껴야 했다.

(아빠 이야기는 이 글에서 참고)



아픈 부모님은 나에게 죄책감 책임감 부담감 배신감 억울함 외로움이었다.

나에게 '아프다'라는 말은 이런 복잡하고 불편한 감정들이 뒤섞여 하나의 단어로 표현된다.



"싫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잔병치레를 하게 마련이다. 아이가 처음 심각하게 아프면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긴 하지만 곧 무뎌진다. 약을 먹으나 안 먹으나 일주일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되지만 어쨌든 어린이집에 보내려면 병원에 다녀왔다는 표시는 해야 한다. 병원 가서 한 시간 이상 대기를 하고 3분 진료받고 처방선을 제출하고 기다려 약을 받아오는 일을 상당히 자주 하게 된다.



아이 코에서 콧물이 찍, 가래가 그르렁그르렁, 볼이 불그스레 해지면 내가 해야 할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회사 조퇴하기, 병원 한 시간 대기, 열 내리기 대작전, 약 먹이기, 아픈 아이 짜증 받아주기 등등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24시간 붙어있어야 하고 잠도 편하게 잘 수 없다. 아이 혈관은 왜 이리 안 보이는지 바늘을 넣었다 뺄 때마다 자지러지는 아이를 달래느라 진땀이 난다.



아이가 아파서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이 정도만 아파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다. 그래도 솔직히 아이가 아픈 건 상당히



"귀찮다."







아이들의 잔병치레가 잦아들 때쯤 이젠 신랑이 목디스크 수술을 하고 바로 이어서 갑상선암 수술, 뒤이어 공황장애까지 생겼다. 이 모든 게 2년 동안 일어난 일이다.



이 정도 되니까 난 누군가를 아프게 할 운명을 타고났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당시 내가 가장 많이 한 생각이 '왜 나에게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였다. 아픈 부모님보다 잔병치레하는 아이들보다 신랑의 '아프다' 싫은 감정들과 귀찮음이 훨씬 크게 느껴졌다. 사람이 아픈데 나의 힘듦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간이었고 그걸 숨기지 못하고 표현하는 나였다.







난 아픈 사람을 진심으로 걱정한다는게 어떤 건지 잘 모른다. 엄마 당신의 몸이 아팠던 탓에 내가 아플 때 다정한 돌봄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는 게 변명이 될 수 있을까? (아니.. 안될 거 같은데..?)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이 귀찮고 신랑이 아픔으로 나의 일이 늘어난다는 불만이 생기는 나는 내가 아플 때 신랑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 여겨 눈치가 보였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거지 뭐.. 사실 신랑 아플 때 눈치를 많이 주기도 했고...)



하지만 신랑은 내가 아플 때 전혀 그런 게 없다. 그의 마음속 진심까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보고 느끼는 그의 행동과 말들은 다정했다. 내가 아픈 것을 걱정하고 정성껏 돌봐준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을 기꺼이 해주고 온전히 쉴 수 있게 해 준다.(아이들을 완벽히 커버해 줌.) 그런 그를 보면 너무나 고맙고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다. 받은 다정함을 돌려주지 못해 늘 미안하다.



그를 통해 다정함에 대해 많이 배운다. 나 같은 사람에겐 다정함도 연습이 필요하다. 연습하면 다정함을 가질 수 있을까?



여전히 내가 아픈 것보다 그가 아픈 횟수가 더 많지만 (ㅋㅋ) 그의 다정한 돌봄으로 나의 차가운 마음도 녹여지길 기대해 본다. (잘 될지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아프지 않는 게 제일 좋다.



제발 좀 아프지 마~란 마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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