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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싸 Sep 09. 2024

세금 내는 기계, 보험 청구 그리고 요리

"안 해봐서 못 해" 하지 말라고~~~~


은행으로 외근을 갔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데 창구에 있는 사람이 너무 오래 걸려 슬슬 짜증이 났다. 은행 안으로 한 할머니가 들어오시더니 청원 경찰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신다. 청원 경찰도 뭐라 대답을 했는데 할머니가 계속 물으니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재산세 내러 왔는데 난 저거 어떻게 하는지 몰라"

"저기에 쓰여 있는 데로 따라 하시면 됩니다."

"난 한 번도 안 해 봤어."

"설명대로 그대로 따라 하시면 돼요."

"아니.. 안 해 봐서 어떻게 하는지 몰라"



(대충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고 있었다.)



아... 불편하다.



(요즘은 공과금이나 세금을 창구에서 수납을 안 해주고 기계에서만 납부를 해야 한다.)


그냥 가서 해주면 되지 설명 보고 따라 하라고 한 청원경찰이 불편했냐고?





해보지도 않고 안 해봤으니 무조건 못 하겠다고만 하는 할머니가 불편했다.









어느 날 엄마가 병원과 약국 영수증 한 뭉텅이를 가지고 와선 팩스로 보험 청구를 해 달라고 했다. 


"엄마 누가 요새 팩스로 청구하노.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어서 바로바로 청구하면 되는데."


"난 그런 거 안 해 봐서 할 줄 모른다."



아... 불편하다.



스마트폰으로 보험 청구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불편한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고 말투는 퉁명스러워지면서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그런 나의 모습에 화가 난 엄마가



"왜 이리 싸가지가 없노! 치아라~ 언니한테 해 달라고 할끼다."



나와는 다르게 세상 친절하고 다정한 언니가 몇 번 더 가르쳐 주었지만 결국은 언니가 보험 청구를 해주고 있다. 많은 나이가 아님에도 배우고 익히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엄마를 보면 짜증이 났다.



이 일 이후로 엄마는 나에게 뭘 가르쳐 달라거나 해 달라고 하지 않는다. 나는 싸가지가 없으니까.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저녁으로 뭘 먹을지가 항상 고민이다. 반찬 가게 밴드를 보며 오늘은 무슨 반찬을 사갈지 고민하다가 저 번달 식비가 평소의 두 배 이상 나온 게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뭘 해 먹고 사는지 궁금해서 과장님(남자)께 물었다.



"과장님은 반찬 뭐 먹어요? 해 먹어요? 사 먹어요?"



대부분 반찬을 해 먹고 아내보다 본인이 더 자주 만든다고 했다. (대단하세요~~)



"뭐 해 드시는데요?"



나물도 만들어 먹고 수육도 만들어 먹는다며 수육 만드는 거 쉬우니 한 번 해 보라고 했다.



"전 요리하는 거 너무 힘들어요. 레시피 보고 만들어도 다음에 만들 때 다시 봐야 하고.. 재료 손질도 오래 걸리고 음식하고 나면 주방이 난리가 나요. 그래서 더 하기 싫은 거 같아요."



과장님은 수육 레시피를 열심히 알려주고 있는데 나는 요리 못 하는 (하기 싫은) 이유를 주저리주저리 읊고 있었다.







아..... 젠장....



한참 하소연을 하다 보니 은행의 할머니가, 보험 청구를 못하는 엄마가 생각났다.

와.. 똥 묻는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했던가? 내가 딱 그러고 있었다. 나물을 무치는 방법과 좋은 수육 고기 살 수 있는 정육점을 알려주고 있는 과장님께 결국 한다는 소리가



"난 못 할 거 같아요."



였다. 



엄마에게 "우엉조림 내가 하니까 맛없어. 우엉 조림 해줘", "엄마~ 전복죽 먹고 싶어. 전복 사다가 전복 반 찹쌀 반 전복죽 끓여줘." 할 때 엄마는 나에게 왜 배우고 익히려고 안 하냐며 잔소리하지 않았다. 왜 해보지도 않고 못한다 소리하냐고 짜증 내지도 않았다.



은행의 할머니와 엄마는 숨 쉬듯이 눈 감고도 하는 요리를 매일 못한다고 징징거리면서 고작 세금 내는 기계, 스마트폰으로 보험 청구 좀 할 줄 안다고 깝죽거린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반찬 가게 밴드창을 닫고 퇴근하면서 마트에 들려 양배추와 애호박을 샀다. 양배추는 살짝 쪄서 쌈장에 싸먹고 애호박은 전을 만들어 먹었다. 다음엔 수육도 만들어 볼테다.



똥 묻은 마싸야... 니 똥이나 잘 닦자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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