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라기 [며느리 + 기 (期)] : 사춘기, 갱년기처럼 며느리가 되면 겪게 되는 '시댁 식구들에게 이쁨 받고 칭찬받고 싶은' 시기
나 마녀싸이코에게도 며느라기가 있었다. 어떤 일을 계기로 며느라기에서 해방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은 잘 보이려고 내 마음을 무시한 채 억지로 잘하려고 하지 않는다. 내 마음 가는 데로, 하고 싶은데로, 편하게 지낸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정확하게 표현한다.
명절 연휴이기도 하니 명절에 가장 핫한 키워드인 시댁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며느라기에서 벗어난 이후의 행보 몇 가지만 풀어보겠다. 참고로 고부갈등 전혀 없고 시댁과의 사이도 아주 좋다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시아버지는 형제들 중 막내이다. 우리의 결혼 전 명절에는 큰아버지댁에 다녀오셨다고 한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거나 차례를 지내지 않으셨다. 아들과 딸이 결혼을 하고 명절을 당신들의 집에서 지내게 되니 뭔가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셨는지 명절동안 먹을 만큼의 음식을 만들자고 하셨다. 며느라기 중증이었던 나는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시골처럼 많은 양을 하는 게 아니니 부침개용 큰 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바닥에 빙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만들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주방 제일 구석에 있는 가스레인지에 작은 프라이팬을 놓고 돌아가면서 전을 부쳤다. 명절에 다 함께 모여서 음식을 만든다는 느낌보단 그냥 평소의 식사 준비를 오~래 한다는 느낌이 들어 별로였다. 몇 번 하다 보니 이게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며느라기였으니까....
며느라기 해방 후 바로 이 것부터 없앴다.
"평소에 튀김이랑 전 못 먹고사는 사람 없잖아요. 이제 명절에 음식 하지 맙시다. 잔뜩 해놓고 나중에 먹으니 맛도 없어요."
그래도 섭섭하셨던지 몇 번은 두 분이서 만드시긴 하셨는데 지금은 꽤 오래전부터 명절 음식은 배달 음식(or 식당)이 되었다.
며느라기 시절 어머님은 자꾸 나한테 "아빠한테 안부 전화 좀 자주 해~"라고 하셨다. 매일 하라고 하셨던 거 같기도 한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암튼 자주 하라고 하셨다. 며느라기 때니까 어머님 분부 받들어 아버님께 전화를 하면 아버님은 빨리 끊으려고 하셨다. 지금도 콜포비아가 있는 나에겐 용건 없이 전화를 한다는 건 큰 스트레스였다. 전화가 뜸하면 어머님은 같은 말을 반복하셨는데 아버님은 별로 통화 안 하고 싶어 하시는데 어머님이 전화받고 싶으신 걸 돌려 말하시는 건가 고민하기도 했다.
며느라기 해방 후 어머님이 또 안부 전화 이야기를 하시길래
"신랑도 우리 엄마한테 전화 안 해요. 저도 엄마한테 전화 잘 안 하구요. 그리고 신랑은 일 년에 엄마 몇 번 보지도 않아요."
신랑은 행사 때나 일 년에 몇 번 엄마를 만나고 안부 전화도 거의 안 하는데 당시 우리는 시댁에 1~2주에 한 번 꼴로 방문하고 있었다.(심지어 며느라기 때 내가 가자고 해서.) 그 정도 만나면 됐지, 왜 자꾸 안부전화 하라는 건지 솔직히 짜증 났다. 어머님은 머쓱하셨던지 "넌 장모님께 전화 좀 자주 드려.." 하셨고 다음부터 안부 전화 이야기는 다신 하지 않으셨다.
나는 시댁에서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 며느라기땐 내가 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내가 하는 게 마음 편했다. 시외삼촌댁에 갔을 때도 내가 했고 시외삼촌은 나를 꽤나 좋아하셨다. 암튼 그땐 누구에게라도 잘 보이고 싶던 며느라기였으니까...
며느라기 해방 후 설거지를 하지 않게 된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는 건 아닌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이 모임에 나가서 "나 시댁에서 설거지 안 해."라고 하면 다들 "와~ 대단하네. 강심장이네" 하지만 남자들이 모임에 나가서 "난 처가에서 설거지 안 해."라고 하면 "당연한 말을 정성스럽게도 하네"라는 반응이지 않을까? 아.. 불편하다~
실제로 친정에 가서 신랑이 설거지를 할라치면 엄마는 온몸으로 막는데 시어머니는 내가 싱크대 앞으로 살짝 지나가려 한 건데 고무장갑을 끼워 주셨다.(ㅋㅋㅋ)
며느라기 해방 후 밥상을 정리하고 싱크대에 그릇이 가득 쌓이면 이렇게 말했다.
"자기야~, 설거지!"
내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신랑은 이젠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설거지를 한다. 시누이(신랑 누나) 가족들이 오면 시누이가 하기도 하고 (신랑 컨디션이 안 좋으면) 나도 가~~~~ 끔은 한다. 아들은 절대 주방에 들어오면 안 된다는 시어머니였다면 아마 큰 갈등을 빚었겠지만 울 엄니는 크게 문제 삼지 않으신다.
냉동실에 오래된 거, 유통기한 지난 거 주시는 걸 처음에는 다 받아오다가 이제는 그 자리에서 검열해서 버릴 건 버리고 필요한 것만 가져온다. 반찬 만들어서 주시는 건 먹어보고 안 먹을 거 같은 건 받아오지 않는다.
이 외에도 많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며느라기에서 해방되기로 마음먹었던 어떤 일은 어머님에 대한 작은 실망이었다.실망은 내가 잘하면 나에게도 뭔가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기대를 하니까 기대만큼 돌아오지 않는다고 실망했다. 사실 큰일이 아니었음에도 너무 큰 실망을 했던 이유는 '난 이렇게 잘하고 있는데..'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며느라기 해방은 서로에게 기대를 없애는 일이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예의를 갖추어 부담 없는 정도의 마음을 나누는 게 좋다.
이 모든 일이 갈등 없이 흘러온 건 쿨하신 시부모님과 중간에서 잘 해준 신랑이 있어서다. 그리고 우리 부부 사이에'효도는 셀프'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각자 부모님께 잘하고 서로에게 부모님 문제로 섭섭해하지 않는다. 양가 부모님도 마찬가지이다.
시누이의 시댁이 며느리 스트레스 유발하는 명절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음식 많이 만들고 손님 많이 오고 아들은 주방에 절대 들어오면 안 돼! 하는. 지금은 조금 편해지셨지만 결혼 후 초반에는 너무 힘들어하셨다. 듣는 나도 짜증이 났으니까. 올 설에 다 같이 모였을 때 이렇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