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신랑의 직장까지 대중교통으로 왕복 세 시간 정도 걸린다. 안 막히면 차로 편도 40분 거리지만 애석하게도 늘 막히는 길이라 걸리는 시간은 대중교통이랑 도긴개긴. 대중교통은 넷플릭스라도 볼 수 있어 좋다며 대중교통으로 다닌 지 오래다. 신랑은 출퇴근길 버스의 많은 사람을 피하기 위해 9시 반까지 출근하고 6시 반에 퇴근한다. 그럼 오전 8시에 집을 나서서 저녁 8시에 집에 도착한다.
사람들에게 신랑의 출퇴근 시간을 말하면 10명에 10명은 이렇게 말한다.
"마싸님 신랑 힘들겠어요~~"
노우노우 아니 아니야!!!! 아~ 진짜 불편하네~~~~
물론 신랑도 힘들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이면을 잘 알지 못한다.
한 사람의 출퇴근 시간이 길다는 건 맞벌이를 위해 다른 한 사람의 직장에 가까운 집에 살기 때문이다. 아이가 있는 집은 두 사람 직장의 절반 거리에 집이 있으면 곤란하다. (두 직장이 가까운 게 가장 베스트지만 쉽지 않다.) 한 사람은 아이들의 생활반경 안에서 직장을 다녀야 한다. 아니, 한 사람의 직장 주변에 아이들의 생활 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 집은 그 사람이 출장이 없고 시간적 조정이 간편한 내가 된 것이다.
신랑의 출퇴근 시간만큼 나는 노는 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일을 한다. (퇴근하고 다시 출근하는 느낌 아실랑가) 오전에는 신랑이 출근 준비하는 동안 나는 아이들의 아침을 준비하고 정리한다. 신랑과 아이들이 다 나간 뒤에 준비를 하고 출근한다.
퇴근 후엔 오자마자 빨래를 돌리고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 저녁을 준비한다. 다 된 빨래를 건조기 넣어 돌린 후 아이들과 저녁을 먹는다. 저녁을 먹고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한다. 신랑의 저녁을 세팅해 놓고 쓰레기와 재활용을 버리고 온다. '이제 쉬어 볼까' 하고 돌아서면 "엄마, 심심해." 타임. 신랑이 와서 저녁을 먹고 나면 건조가 된 빨래를 개고 넣는다. 아이들의 학교 행사나 평일 병원 투어는 거의 내 몫이다.
신랑이 출퇴근하는 시간 동안 나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닌데 사람들은 3시간 걸려 출퇴근하는 신랑의 노고만 치하한다. 주양육자로 지내다 보면 이런 섭섭함을 간혹 느끼게 된다. 내가 하는 건 보이지 않는다.
첫아이의 신생아 시절 나는 무척이나 화가 나 있었다. 호르몬 때문인지, 처음 겪는 일 투성인 생활 때문이었는지, 한껏 예민했고 자주 날카로웠다. 그 화살은 대부분 신랑에게 날아가 꽂혔는데 그는 처음엔 이유도 모른 채 사과만 하다가 어느 날은 억울했는지 결국 한 마디를 내뱉었다.
"나도 많이 도와주잖아."
"그래도 자긴 애 잘 때 같이 잘 수 있잖아."
당시 신랑은 밤샘 근무가 종종 있었다. 나는 집에 들어오면 온갖 고생한 티를 팍팍 내며 잠 잘 궁리만 하는 신랑이 꼴 보기 싫었는데 본인은 '밤샘 근무 하고 왔음에도 아내를 돕는 기특한 나'라고 생각했나 보다. 하루종일 신생아와 씨름하며 신랑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나는 보이지 않는 듯했다.
(오호~ 너 잘 걸렸다.)
"뭐? 도와줘? 애 키우는 게 내 일이가? 당연히 해야 될 일을 하면서 왜 도와준다는 표현을 하지? 내가 '애 젖 먹여 주잖아.' '애 기저귀 갈아주잖아.' '애 씻기고 재우고 놀아주잖아.'라고 말한 적 있나? 그라고 뭐? 애 잘 때 잘 수 있어? 나 아기 태어나고 2시간 이상 통 잠 자본적 없거든? 그라고 누우면 바로 잠이 오나? 애 잘 때 같이 잘 수 있다고 생각하냐고~~~ 어어엉어?"
내가 신생아도 아니고 자려고 눕는다고 바로 잠드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애 잘 때 같이 잔다는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억울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 신랑은 내가 아이를 놔두고 집을 나와 몇 시간 동안 (갈 데도 없고 젖 주러 들어와야 했음) 둘 만의 시간을 보낸 뒤에야 도와준다는 소리가 쏙 들어갔다.
육아를 하면서 이런 포인트들이 나를 참 화나게 하고 섭섭하게 만들었는데 이 포인트를 어떻게 명명해야 할지 잘 몰랐다. 얼마 전에 이 포인트에 대해 깔끔하게 정의된 말을 찾았다. 바로
'보이지 않는 노동'
보이지 않으니 인정받지도 못하는 노동.
밤새서 일하는 신랑 힘들겠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나는 노나?"라고 말하면 유별나게 군다고 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며 놀다 오는 것도 아니고 일하고 오는데 그만 들들 볶으라고 나한테만 잔소리했다.
신랑도 퇴근 후 집에 와서 설거지와 빨래 개기를 한다.(꽤 자주) 주말엔 청소와 집안일을 거의 다한다. 육아는 뭐 입 댈 것도 없다. '도와준다'는 말을 하고 식겁했던 신랑은 그 이후부터 "나도 많이 하잖아~."라고 말한다. 많이 하기 때문에 할 말은 없지만 본인이 다 한다는 식으로 말할 땐 속에서 천불이 난다. (내가 더 많이 하거든?)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신랑이랑 누가 누가 많이 하나 생색내기 하는거냐고, 멀리 회사 다니면서 집안일과 육아를 많이 하는 신랑 칭찬하면 좋은 거 아니냐고, 집안일과 육아에 손도 까딱 안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도 안다. 싫다는 게 아니다. 다만 나 먼저 알아주면 좋겠다. 하나하나 모든 게 불안했고 힘들었던 육아였다. 잘하고 있다고,고생이 참 많다고누군가는 말해주기 바랐다. 경제 활동을 하는 노동도 인정받아야겠지만 집에서 아이와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했다.
한 사람이라도 "신랑이 그렇게 늦게 오면 마싸님 퇴근하고 집에 가서 혼자 다 해야 하니까 힘드시겠어요~"라고 나부터 먼저 생각해 주면 좋겠다. 신랑의 고생만 언급하니 괜히 심술이 난다.
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고 이기적이다. 이런 욕구에 밀려 칭찬받아 마땅하나 받지 못하는 신랑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