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오글오글 : 11월호 나를 표현하는 세 가지 단어>
<월간 오글오글>은 글쓰기 모임 오글오글 작가들이 매 월 같은 주제로 발행하는 매거진입니다. 11월호 주제는 '나를 표현하는 세 가지 단어'입니다.
내가 남들보다 눈에 띄게 키가 크기 시작한 건 4학년 때쯤이다. 그때부터 뒷자리에 앉기 시작해 6학년이 되었을 땐 또래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는 지경이었다. 지금이야 큰 키가 가문의 자랑쯤 되지만 30년 전만 해도 여자애가 크다는 건 썩 좋은 일은 아니었다. 5학년때 생리를 시작했는데, 2차 성징이 나타나면 더 안 큰다고 하더니만 애석하게도 유전학 통계도 내 키를 막지 못했다. 조금씩 조금씩 더 자라더니 고3쯤에 지금의 키가 되었다. 나의 키는 174.7cm이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는 나를 보며 친구들은 물었다.
"뭐 먹으면 그렇게 크노?"
딱히 할 말이 없었다. 키가 커지고 싶었던 적이 없던지라 키가 크기 위해서 딱히 뭘 더 먹은 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거 없는데?"
솔직하게 말하면 '너만 크려고 안 알려주는 거냐' 듯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뭔가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질문하는 친구들을 실망시키기 싫었던 나는 그 시절 키와 관련된 가장 보편적인 음식을 말했다.
"콩나물"
그러면 친구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난 그렇게 콩나물 많이 먹고 키 큰 아이가 되었다.
나의 큰 키는 나의 인생에 정말 많은 영향을 끼친 요소 중에 하나이다. 어렸을 땐 큰 키를 숨기고자 어깨는 접고 등은 구부리고 다리는 늘 짝다리로 서 있었다. 내성적인 성격인데 원하지 않는 걸로 주목을 받으니 불편했다. 그렇게 생긴 신체에 대한 불만이 외모 콤플렉스를 만들었고 오랫동안 나를 힘들게 했다. 콩나물은 쳐다도 보기 싫었다.
시대 흐름의 도움을 받아 큰 키가 각광을 받게 된 어느 순간부턴 큰 키에 대한 나의 불편함은 옅어져 갔다. 그런데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턴 자유로워졌지만 스스로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접었던 어깨를 펴고 척추를 곧게 세우고 두 다리로 당당히 걷는다. 보이는 모습이 아닌 내면을 가꾸고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콩나물이 맛있어 보인다.
"자기야~ 나 이거 할 거야!" 결의에 찬 눈빛으로 신랑에게 선언을 하면
"응~ 이번엔 언제까지 가나 보자~" 하며 멕이 탁 풀리게 한다.
"우쒸~~~" 신랑에게 눈을 흘겨보지만 크게 반박할 말이 없다.
나의 열정은 성냥불 마냥 반짝 타올랐다 금세 꺼지고 만다.
그동안의 성냥불이 몇 개나 있었나 세어 본다. 하나, 둘, 셋, · · · · ·,
대략 서른마흔다섯 개 정도 되는 것 같다.
이젠 성냥불이 불쏘시개가 되어 오랫동안 타오르는 장잣불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성냥불은 바로 글쓰기다. 숯껌댕이가 될 때까지 활활 타올라 주기를..
"마싸님이 (MBTI) I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I겠어요."
난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면 늘 재밌다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나의 MBTI가 I (내향형)라고 말하면 다들 놀란다. 사람들은 내향형인 사람은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 성대모사를 하면 아이들이 똑같다며 빵빵 터졌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특징을 집어내 흉내 내는 걸 좋아했다. 요즘은 분위기에 맞는 말의 내용과 말할 때 쓰는 억양, 말투, 표정 등을 보고 재밌어하는 것 같다.
난 사람들이 내가 한 말에 웃는 게 좋다. 어색한 분위기가 이 한 몸 불사 질러 화기애애해진다면 그저 좋다. 나를 재밌는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는 것도 좋다. 그래서 더 사람들을 재밌게 해 주고 싶다.
물론 내향형인 인간으로 애로사항이 없진 않다. 모임에 다녀오면 모임에서 했던 모든 말들을 곱씹는다던지, 에너지가 모두 방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던지, 다시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던지.
이 모든 애로사항에도 난 또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면 재밌는 사람이 될 것이고 사람들을 웃기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난 "마싸님 너무 재밌어요."라는 말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