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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Sep 24. 2020

소주 3병 그리고 공대 여자

자나깨나 술조심(공대여자 말고 그냥 나)


말은 우선 조심하고 봐야 한다. 입 다물고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게 된다. 그러나 이것 또한 아쉬울 게 없는 사람들이나 가능한 일이다. 아쉬울 게 아주 많은 입장에서는 입이 금방 간지러워지기 마련이다. 도드라져 보이고 싶으니까. 대부분의 말실수는 그렇게 시작되는 게 아닐까.


여기 면접에서 세 치 혀를 함부로 내두르는 바람에 꼬박 4년을 술독에 빠져 지내야 했던 여자가 있다.


그녀가 지원했던 직종은 소수 직렬이었다. 달랑 한 명을 뽑는 채용 전형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딱 1명. 최종 면접을 앞두고 심장이 나대기 시작했다. 잔뜩 안달이 난 탓이다. 그래도 침착하자. 지금까지 잘해왔던 것처럼 긴장하지 말고. 자신감 있게 도도하게 굴자. 하고 마인드컨트롤을 하고 있었다.


마음먹기는 때로 또는 아주 자주 제멋대로 바뀌게 마련이다. 대기실에서 내 옆에 앉아있던 남자 지원자의 덩치가 조금만 작았더라면. 내가 지원한 직종에 최종 면접으로 온 여성이 나뿐이 아니었다면. 그랬다면 무리하지 않고 진정된 마음으로 면접에 임할 수 있었을 텐데. 자꾸만 조바심을 내던 그녀는 어떻게 해야 선택받을 수 있을까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급기야 면접실에 들어가기 직전 그녀의 브레이크는 고장 나버렸다. 그녀는 면접관들 앞에서 "남자보다 남자 같은 여자"라고 자신을 홍보하며 급발진을 하기에 이르는데.


면접관 : 공대 여자께서는 나중에 어떤 사람이 후임으로 들어오면 좋으시겠어요?
공대여자 : 네! 저는 회식에서 제가 집에 가기 전에 자리를 뜨지 않는 사람이 후임으로 오면 좋겠습니다.
면접관 : 회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나 봐요?
공대여자 : 네! 회식은 조직 문화를 위해 정말 중요한 자리입니다. 제가 웬만해서는 회식을 마치기 전에 집에 가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후임도 저와 함께 끝까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도발 덕분인지 탁월한 필기시험 성적 때문인지 결국 그녀는 그 회사에 입사하게 된다.


구직자가 가지고 있던 절실함이 조금 이르게 흐릿해질 즈음, 그녀는 신입직원 교육을 마쳤다. 첫 출근을 한 그녀는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합격 축하해요. 정말 여자분이 오셨네. 우리는 모두 남자직원이 올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나저나 진짜 소문대로 소주 3병은 거뜬히 마실 수 있으신가?"


그렇다. 그녀가 호기롭게 시연한 급발진 덕분에 그녀는 "회식을 중요시하는 여직원" 에서 "술을 좋아하는 여직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모든 소문과 이야기가 그렇듯 결국 "소주 3병 마실 수 있는 여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중에서야 회사 분위기를 파악한 내가 추정해본 정황은 이러하다. 우리 부서에서는 정말 남자 신입을 원했다. 일손이 정말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망한 여자 하나가 서류, 필기시험, 면접까지 당최 떨어뜨릴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부득이 그녀를 뽑을 수밖에 없었고 이 사실을 직원들에게 알려야했던 우두머리는 합리화를 시작했다. 급기야 그는 그녀가 면접 때 했던 말을 되짚어보며 "거봐 내가 남자 같은 여자 직원을 뽑았어. 잘했지?" 하며 "소주 3병 마시는 여자에 대한 설화"와 같은 이야기를 퍼뜨렸던 게 아니었을까.


물론 내 추정이다. 또 물론, 분위기와 상황을 조합하고 추측해보는 나의 넓고 빠른 눈치는 거의 틀린 적이 없기도 하다. 고로 나는 이번 회사 생활도 망하게 될 것 같았다. 정신력과 체력 그리고 술 취하지 않음과 술 취함과의 아슬아슬한 균형 잡기가 조만간 다시 시작될 것이다.


"네? 저 말씀이십니까? 소주 3병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내가 아무리 멍청한 표정과 순진한 표정과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는 무구한 표정을 지어도 그들은 관심이 없는 듯했다.


내 질문에는 도통 답을 줄 생각을 하지 않고 나를 두고 자기들끼리 떠들어댄다.


"그렇데. 진짜 3병 마신다고 했다던데? 면접에서 진짜 그랬다잖아."


소주 3병 마시는 여자는 그렇게 요란한 첫인사를 마쳤다. 신입 환영식이 제발 오지 않았으면 했다. 정말 더 본격적인 회식의 시작이라니. 나는 나의 암울한 미래가 예고방송 없이 시작돼버린 것 같아 그저 황망했을 따름이다.




물론 나의 몸도 예전 같지 않았다. 1년 6개월여의 알콜 휴식 기간 나의 나이도 그만큼 더해졌다. 간의 나이라고 따로 들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 간만의 회식에 잔뜩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새 직장에서의 첫 회식, 나를 위한 환영식 날이 정말 와버렸다. 나는 너무 걱정된 나머지 회사안에 있는 매점에 갔다. 5시경이었다. 몰래 여명808을 하나 주머니에 넣어와서는 가방 속에 쏙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식당으로 가기 위해 모두 출발하는 6시 정각, "화장실에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선배님." 하고 외투와 가방을 챙겨 잽싸게 화장실로 갔다. 문을 닫고 화장실 칸에 들어가 조용히 캔을 따고 마셨다. (이 음료는 술을 마시기 30분 전에 마셔야 효과가 가장 좋다)


나의 환영식이니까 선배들은 주로 나의 이야기를 했다. 선배들은 신입 환영식 때 손을 들고 몇 개의 질문을 했다. 신입 환영식마다 해오는 것이라고 했다. "남자친구는 있나요?" 하니 나는 "있다 없다 하지만 지금은 진짜 없습니다." 했다. 기억나는 다른 질문 하나는 "주량이 어떻게 되나요?" 였는데 나는 "저.... 사실 소주 3병은 못 마십니다. 아무래도 말이 와전된 것 같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뭐야. 이제 합격했다 이거야? 허허허" 하는 말이 들렸다. 나는 곧 입을 다물고 앉았다.


이후에도 선배들에게 내 주량을 변명해보려 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얼큰하게 술이 들어간 그들은 아무 말도 듣지 못한 것처럼 굴었다. 나도 아무 말 하지 않은 것처럼 돌아오는 술잔을 다급히 돌렸다. 무엇보다 그래야 빨리 귀염받을 수 있고 후배로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습 기간 6개월만 그렇게 지내자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생각보다 기억력이 좋아서 6개월이 지나 조금 더디 마시려고 하고 조심성 있게 회식에 임하려 하면 "이제 정직원 되었다 이거냐" "왜 다른 자리에서는 많이 마시면서 여기에서는 몸을 사리는 거냐" 하고 농을 던졌다.


그렇게 술 잘 마실 것 같은 여자는 술을 많이 마시고 토하는 여자가 되었다.




첫 직장에 다닐 때에는 주로 할머니, 엄마, 아빠의 걱정과 한숨과 잔소리를 들으며 다녔다. 숙취 해소는 주로 할머니의 담당이었는데, 이제 그 바톤을 나와 함께 사는 작은 언니가 받아들게 되었다.


두 번째 직장에 다니면서 언니가 결혼하기 전까지 언니와 한집에서 자취를 했다. 신학 대학을 졸업하고 유아 교육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언니에게 회식은 주로 파스타와 피자를 먹고 늦지 않게 귀가하는 일이었다. 주로 여초 직장에서 일하는 언니의 피로감을 전해 들으면 "역시 여자들은 피곤한 존재야"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남초에 몸담고 있는 나 자신을 위로했다.


그런데 회식 이야기를 들을 때만은 마치 아직 가보지 못한 별천지인 듯 부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 회식하면 파스타도 막 하나씩 먹고 그래? 세상에나" 회식에 "파스타라니. 파스타라니."


여자들의 세계에서 여자들의 소프트하고 안전한 회식이 나는 항상 부러웠다.


한번은 부서장님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으셨는지 회식 분위기를 바꿔보자고 하셨다. 그래서 젊은 직원들이 직접 회식 장소를 엄선하여 골랐다. 우리는 한식 뷔페를 골랐다. 아무래도 뷔페는 타이밍만 잘 맞추면 상사들과 테이블에 앉아 있는 시간을 현저히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회식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날이 왔다. 뷔페에 도착한 우리 부서 직원들은 각자의 먹을거리를 찾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광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가 많으신 선배님들께서는 팀장님들과 부서장님에게 음식을 가득 채운 접시를 대접하고 있었다. 나이 든 선배들보다 더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앉아있어야 하나 서 있어야 하나 난감한 표정이셨다. 그 광경을 본 나를 포함한 젊은 직원들은 그렇게 뭔가를 나르기 시작했다.  상대의 취향인지 아닌지 모를 초밥, 겉절이, 김치, 수육 등을 무작위로 담아 날랐다.


그날 이후 회식 장소는 고깃집을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소주 3병 설화 속의 그녀는 기꺼이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컨디션이 조금이라도 좋지 않으면 택시를 탈 수 있었던 익숙한 고향이 아닌 서울이라는 낯선 곳에서 술을 마신다는 게 처음에는 조금 무섭기도 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나는 언니와 살고 있었고, 갈아탈 필요 없이 한 번에 집으로 가는 지하철 2호선이 있다는 게 마음의 안정을 주기도 했다.


한번은 회식을 마치고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야?" 하고 언니가 물으니 회식에 최선을 다했던 그 날의 나는 "쥡에 가궈있월" 했다. "그래서 지금 어딘데?" 하는 언니에게 나는 가까스로 2호선 노선표와 바깥 풍경을 살피며 "여귀는 싸돵인뒈"


"뭐라고? 사당? 거기까지 왜 갔어? 우리 집 반대잖아." 언니가 다급하게 외쳤다. 나는 "알았얼 눼릴궤" 하고 2호선에서 다급히 내렸다.


분명 내려서 반대로 어찌어찌 갈아탔고 우리집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신도림 쯤에서 너무 속이 좋지 않았다. "반대로 오고 있어? 지금 어디야?" 언니가 전화로 다시 물었다. "언뉘 여귀 씬도륌인뒈 내가 토가 나올 거 가톼설 화좡쉴 조옴" 하고 끊었다고 했다. 언니가 그랬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신도림역 화장실에서 다급히 속을 진정시키고 나오는데 작은 언니가 나의 뒷덜미를 잡았다. "오 언뉘이 요기 웬윌이양" 언니는 그 상태로 나를 잡고 지하철을 탔고 집에 함께 왔다.


집에 와서 또 한 번 속을 비우고 샤워를 하니 정신이 들었다. "그런데 언니 진짜 아까 나 어떻게 찾은 거야?" 하니 언니가 "있어봤자 화장실이겠지 했어. 도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무섭지도 않아? 아오. 정말 놀랐잖아." 했다.


언니가 너무 어른 같아 보였고 새삼 너무 든든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언니가 어릴 때 나를 물어뜯었던 것도, 자주 발로 찼던 것도 모조리 용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언능 자." 하는 언니의 말에 나는 "응. 이것 좀 씻고." 했다. 언니가 "그게 뭔데?" 했다.


나는 속이 너무 좋지 않아서 오늘 회사에서 선물받은 비싼 팩이 들어있는 쇼핑백에 약간의 토를 해버렸다고 고백했다. 그래도 지하철 역을 더럽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고 했다. 그래도 이거는 진짜 비싼 팩이고 팩이라는 게 지금 견고한 비닐 포장 안에 들어있으니 씻어버리면 그만이라고 씩 웃었다.


나를 걱정하던 언니의 표정이 나를 물어뜯고 싶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언니는 절대 그걸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나저나 서울에서의 회식 라이프에 가장 불편했던 건 대리운전과 택시였다. 무섭다고 해야 정확하겠다. 비싸서도 무섭고 그냥 내가 겁쟁이라서도 무서웠다.


지방에서 회사에 다닐 때도 딱 2번 대리를 이용한게 다였다. 지방의 대리비는 나름 합리적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불안해서 이용하지를 못했다.


한번은 대리운전을 불러서 집에 가다가 갑자기 배가 아팠다. 회식 후 후배들과 편의점에서 마신 음료형 요거트가 문제였던 것 같았다. 너무 다급한 상황에 나는 대리 기사님께 "주유소 좀 들려주세요." 했다. 눈치가 없었던 기사님께서는 "아직 기름 많은데요?" 하셨다. 그때는 멀지 않은 거리는 만원이면 갔는데, 나는 더는 미룰수가 없는 급한 마음이었기에 낮고 근엄한 목소리로 "만오천 원 더 드리겠습니다. 기사님." 했다.


아무튼, 그 후로는 대리운전을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았다. 배가 갑자기 아파도 비교적 편하게 귀가하거나 화장실에 들를 수 있는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주로 이용했다.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와 보면, 서울에서의 회식은 정말 곤욕이었다. 내 고향에서의 나는 내가 아는 길이 아닌 길로 조금이라도 가면 눈을 부릅뜨고 비상사태에 대비할 수 있었다. 반면에 서울에서는 모든 길에 대한 지식과 확신이 없어 항상 무방비 상태였다. 택시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도시가 너무 커서 불안했고 그 대가도 너무 비쌌다.


그렇다고 지하철은 또 저녁에도 왜 그렇게 쓸데없이 밝은지.


같은 방향의 상사와 지하철에 오르게 되기라도 하면 지금 나의 아이라이너가 어느 정도 흘러내려 온 지 모르는 상태의 그 무방비함이 너무 창피스러웠다.


결론은 서울에서의 회식은 항상 약간 이상 무섭고 불편하고 창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대여자는 자주 최선을 다해 달렸다. 소규모 회식 자리에도 자주 불렸고, 거절을 지금보다 훨씬 잘 못 하는 탓에 자주 숙취에 시달렸다. 급기야 택시를 타고 출근하기도 하고 출근해서 산 송장처럼 앉아있으면 선배나 부서장이 미안해서인지 숙취 음료나 알약을 챙겨주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남자 선후배들과 "잘 들어가셨어요? 속은 괜찮으세요?" 하면서 눈을 마주치면 나도 그들의 세계에 소속된 것 같은 마음에 우쭐해졌다. 어제 일찍 집에 들어간 여자 직원들보다 내가 더 아는 이야기가 많다고 생각했다. 대화를 많이 했던 만큼 '명예 남성'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마음에 든든하고 어깨가 으쓱했다.




입사 3년 차가 되던 해, 요가를 시작했다. 잦은 야근과 회식으로 몸이 좋지 않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특히 첫 직장에서부터 키워온 왼쪽 어깨 통증을 견딜 수가 없어 시계를 왼쪽 손목에 착용할 수도 없었다.


3개월 정도 요가 수업만 듣다가 나중에는 요가 선생님이 되기 위한 과정인 요가 지도자 과정을 신청했다. 요가 선생님이 수업 중 이렇게 물어보셨다.


"여러분들의 기반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동기들은 뭔가 멋진 말을 하는 것 같았는데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고민하느라 잘 듣지 못했다.


아직 좋은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는데 어느새 내 순서가 와버렸다.


나는 문득 떠오른 생각을 말했다. "저는 제 기반이 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그랬던 것 같아요. 술을 잘 마신다고 하면 사람들이 좋아해요. 그래서 더 마시게 되고. 또 그럼 좋아하니까 마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정말 술을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처음 '술'이라는 나의 엉뚱한 대답을 듣고 웃던 동기들이 점차 조용해졌다. 나중에 하나둘씩 나에게 찾아와서 조용히 말해준다. "나도 사실 그랬어요. 나도 나의 기반이 술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아요."


내가 좋아서 마시는 줄 알았던 술이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니었구나"라는 확신이 처음으로 든 날이었다.


물론 그 후에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술과 사람들에게 끌려다녔지만, 내 마음속에서 다른 사람 중심의 기반을 걷어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입사 5 년차,

올해 초 얼굴을 포함한 온몸에 두드러기가 생겼다. 결국에는 기도 부종까지 오는 바람에 응급실을 3일 만에 5차례 방문했다. 그 직후에는 병원에 입원을 했고, 약을 먹어보기도 했지만, 차도는 없었다. 결국 두드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명하다는 체질 개선 한의원에 찾아갔다. 한의사 선생님은 나의 체질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체질적으로 모든 육식이 몸에 해롭고 간이 작다."


29년간 고깃집 딸로 살아왔던 나에게 "모든 육식"이 해롭다는 사실이 우선 놀라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근 15년간의 공격적인 음주 습관을 비웃듯 "나의 간이 작다"라니.


"내가 간이 작다니. 내가 간이 작다니. 내가 간이 작다니...."




급성 두드러기 발병 이후 나는 만성 두드러기 환자가 되어버렸다. 슬프게도 약을 매일 챙겨먹어야 하며 주의해야할 음식들도 아주 많다. 하지만 내 마음이 가벼워진 건 딱 하나 있다. 이제 술을 마시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고 못하겠구나! 내가 예쁨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서 부어대고 마시던 술에서 이제야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된 것 같아서 아주 기쁘다.


공대여자 : 나 이제 술 끊었다.
토목 여학우 1 : 나도 이제 안마셔. 못 마시겠어....
토목 여학우 2 : 나도 이제 음료수 마시잖아. 이제는 못 마셔. 안마셔....
공대여자 : 우리 몸이 맛이 가버린 걸까?
토목 여학우 1 : 우리 이제 몸 사려야 할 나이잖아.
토목 여학우 2 : 그래 이제 몸 챙겨야지. 우리 건강하자 친구들아.
공대여자 : 그래. 아프지 마라. 진짜 나만 고생한다.


그렇게 9년여간의 화려한 공대여자 회식 라이프는 두드러기의 출몰과 함께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가 두드러기가 낫는다면 다시 시작되려나. 어쨌든 중요한 건 술이 술을 부른다는 사실과 자나 깨나 입조심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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