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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Oct 06. 2020

일복많은 공대여자

상사가 부하직원 부리는 방법(공대여자 말고 그냥 나)


나는 내 이름을 임어전씨로 바꾸고 싶었다. 말 그대로 '비상사태(emergency)'였으니까. 비상 상황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어느 날 고개를 푹 숙인 사수님이 부서장님의 방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셨다. 팀장님들도 하나둘 함께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 자기들끼리 옥상을 몇번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몹시 불안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만 모르고 있는 뭔가가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사수님의 휴직은 조용하고 빠르게 결정되었다. 6개월만 쉴 계획이라고 하셨다. 모두가 걱정하고 있었던 개인적인 사정 때문이었다. 평소 신세 지는 것을 싫어하고 미안할 일은 만들지도 않는 사수님은 이 비보를 직접 전하지도 못하셨다. 팀장님은 나를 조용히 불러 말해주셨다. 업무 분장을 다시 해야 할 것 같다고. 소수 직렬이라 딱 2명이 나눠 하던 일이었기에 업무분장은 사실 별로 의미가 없다고. 그냥 네가 사수의 일을 다 가져가면 된다고. 물론, 우선 공대여자가 일을 하다 펑크를 냈을 때 팀장들을 포함한 선배들이 적극 지원해줄 거라고. 대화인 듯 통보인 듯한 일방적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알겠습니다" 했다.


당시에는 충원이 아니라 '일단 해봐라'하는 말의 부자연스러움을 알아채지 못했다. 단지 내 앞에 닥친 상황에 너무나 절망했을 뿐이었다.


당시의 나는 내 미래를 이렇게 예상해보았다. 1. 나는 연애할 시간도 없을 것이다. 2. 웬만하면 야근하지 않고 퇴근하려던 나의 루틴은 바사삭 깨질 것이다. 3. 고로 나는 이번 회사 생활도 망할 것이다.




중고 신입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다짐했던 것이 있었다. 하나. 술을 많이 마시지 않기. 둘. 눈치 야근을 하지 않기.


술을 많이 마시지 않겠다는 다짐은 진즉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참고 : 소주 3병 그리고 공대 여자)


건강한 정년퇴직이 목표였던 나는 아쉬운 대로 남은 하나라도 지키려고 노력했다. 매사에 성실하고 꼼꼼한 사수님의 잦은 야근으로 나의 다짐은 자주 위태해졌다. 뻔히 보이는 눈치 앞에서도 나는 눈치 없는 사람인 척하기로 했다. 자주 야근으로 남아계시던 사수님께 "퇴근 안 하십니까?" 하고 해맑게 물었고 사람 좋은 사수님은 "어서 퇴근해. 잘 들어가." 하셨다. "뭐라도 도와드릴까요?"라고 한마디라도 덧붇이면 진짜 도와주라고 하실 것만 같아서 "네. 죄송하지만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하고 총총 급한 걸음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복잡하고 힘들고 머리 써야 하는 일을 도맡아 하시던 사수님이 자리를 비우게 되신다니. 아주 막막하고 두려웠다.


공대여자 : 사수님 힘들지는 않으실지 걱정이야. 어서 개인적인 일이 잘 해결되셨으면 해.
당시 남자친구(지금의 남편) : 그러게.
공대여자 : 그런데 정말 무서운 게 뭔지 알아?
당시 남자친구(지금의 남편) : 뭔데?
공대여자 : 사실 사수님 걱정보다 내 걱정이 더 크다? 처음 그 소식 듣고나서 한동안 멍했어. 나 이제 어쩌지? 싶어서. 되게 이기적이지?


나는 평소 사수님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동기들을 만나는 자리에도 나를 데리고 가주셨고 각별히 챙겨주셨다. '우리 공대여자 우리 공대여자' 하면서 살뜰히 아껴주셨다. 나는 사수님의 보살핌 덕분에 중고 신입이지만 정말 신입처럼 알뜰히 비호를 받는 기분으로 자라고 있었다.


그랬던 분의 안위가 걱정되기보다는 나 자신이 먼저 걱정되었다니. 내가 생각보다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에 아찔했다.




관심받기 좋아하는 공대여자


그런데 정말 요상한 일이었다. 사수님의 부재와 함께 나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걱정이 생각보다 너무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선배들은 나의 크고 작은 실수를 너그럽게 이해해주었다. 평소 일 처리가 빠르지 못한 내가 동분서주하고 있노라면 선배들이 천천히 하라며 응원해주셨다. 하루에도 업무 수첩을 몇 장씩 빼곡히 채워가며 일하는 나를 보고는 업무 분장에 대해 팀장님과 한번 의논해보라며 제안해주셨다. 야근을 하는 나를 뒤로하고 퇴근하던 그들은 나를 항상 연민 어린 눈으로 바라봐주었다. 일이 주는 상상 이상의 고단함은 내가 힘들다는 것을 알아주는 몇 마디 위로, 응원으로 눈 녹듯이 손쉽게 사라졌다가 또 빠르게 재생되기를 반복했다.


사수님 휴직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직 뭘 잘 모르는 어리바리 병아리일 뿐이었다. 반면에 일 처리도 빠르고 성격도 좋은 사수님은 널리 좋은 평을 듣고 계셨다. 사수님은 항상 여기저기 바쁘게 불려 다니셨다. 바쁘게 불려 다녔던 과거를 지나온 나는 근질근질함을 느꼈다. 그의 유능함에 샘이 나고 멋져 보였다. 사람들에게 불려 다닐 만한 능력과 경력도 한참 부족했다.


사수님의 부재와 함께 그의 일은 나의 일이 되었다. 그가 불려 다니던 자리는 나로 대체되었다. 아주 많은 버거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쉴 새 없이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로 인해 드디어 나도 쓸모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사수님의 몫까지 2인분의 일을 해내기로 마음먹으면서 목표했던 것이 있었다. 우선 첫 번째로 우리가 속한 소수 직렬 고유의 업무를 지켜내고 싶었다. 인원이 원래 몇 없기도 했고, 다른 직렬의 직원들에게 잘난 체, 아는 체 할 수 있는 업무는 꼭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일복은 팔자를 따라서 오는 게 아니라 쓸데없는 걱정까지 미리 하는 성격 탓이 아닌가 싶다. 그 덕분에 나는 내가 좋아하던 우리 직렬 고유의 업무를 지켜낼 수 있었고, 지금은 그렇게 지켜낸 일로 인해 아주 완벽히 고통받고 있다. 이런 게 자업자득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두 번째로는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나는 업무를 조금 떼어가 주십사 하고 선배들에게 부탁하는 법을 우선 몰랐다. 어떻게 말을 꺼내건간에 일을 대신에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듯했으며 해결책이 없는데 불평을 한들 무슨 방법이 있겠냐 싶었다. "업무 분장에 대해서 팀장님과 의논 좀 다시 해보지 그래?" 하셨던 여자 선배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도 고민해봤는데요. 팀장님들도 해결책이 없으실 것 같아요. 제가 말하면 징징거린다고만 생각하실까 봐 걱정이 돼요." 여자든 남자든 업무 범위 조정을 요청하는 것은 정당한 행동인데, 나는 그게 어느 시점에서 이야기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내가 대안을 가지고 말을 꺼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 사수님이 복귀하셔서 우스갯소리로 "이걸 어떻게 다했어? 울면서 못하겠다고 해버리지." 하고 말씀하셨다.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업무를 배분해주고 나눠주는 것까지 내가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구나. 고유 업무란 사실 존재하지 않고, 주어지면 하기 마련이구나. 회사에 이직하면서 무리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는데, 하다 보니 귀엽받는것만큼 신이 나고 인정받는 것만큼 가슴 벅찬 일이 없는 것 같았다.


돌이켜보니 내가 꾸역꾸역 2인분의 일을 해내고 있는 동안 위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팀장님과 부서장님이 나를 부려 먹기 위해 썼던 갖은 회유와 궁디팡팡과 응원 기술로 인해 나는 앞만 보며 달리는 말처럼 달리게 된 것 같다.




공대여자 길들이기


하루는 공무원과 유선 업무 협의를 하다가 억울함과 분함에 못 이겨 내가 눈물을 줄줄 흘렸던 날이었다. 그날따라 공무원의 만행이 너무 억울했고, 사수님께서 진행하시던 일을 내가 이어받아서 하던 중에 생겼던 문제라 답답하고 속이 상했다. 전화 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내가 울어버렸고 상대 공무원은 사과하며 급하게 전화를 마무리했다. 마침 나는 팀장님, 부서장님을 모시고 출장을 나가야 했다. 급하게 나서서 그분들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팀장님께서 나를 보고 놀라며 말씀하셨다. "뭐야. 공대여자. 왜 울어! 누가 그랬어어억! 말해봐아!"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했지만 입술은 쭈굴쭈굴 울먹이고 있었다. 부서장님은 "뭘 그런 걸 물어봐. 그냥 모르는 척해줘." 하고 출장길에 올랐다.


출장을 가서 볼일을 다 본 부서장님 포함 우리 셋은 등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뻐끔뻐끔 팀장님은 "도대체 공대여자는 왜 울었을까"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다. 나는 "이야기하면 또 울어버릴 것 같아요. 공무원 한 명하고 통화했는데, 제가 너무 억울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했다. 말 안 하는 척하고 다 말해버렸다.


그랬더니 팀장님은 지갑에서 5만 원을 꺼내셨다. "공대여자 이번 주말에 집에 내려간댔지? 이걸로 머리도 하고 그래. 힘내고." 진지한 눈빛과 함께 영롱한 금빛 지폐를 건네셨다. 이러지 마시라고 여러 차례 거절했다. 사실 나는 진짜 거절할 생각이 없기도 했거니와 팀장님의 성의를 더 거절할 수 없다는 생각에 조심히 돈을 받아 주머니에 예의 바르게 구겨 넣었다.


옆에서 일련의 과정을 보시던 부서장님은 "5만 원 가지고 머리를 어떻게 하나?" 하고 팀장님을 놀리셨다. 그리고 이 또한 지나갈 거라고, 사람들이 모두 다 공대여자 칭찬하는 것 아냐고 다독거려 주셨다.


나는 본디 선행이 내뿜는 따뜻함에 몹시 취약하다. 나를 위해 본인의 돈까지 써가며 응원해주시는 팀장님을 위해서라도 힘을 내고 싶었다.


그리고 또 다른 팀장님 한 분은 다른 부서의 직원들에게 내 칭찬을 너무 널리 퍼뜨려놓으셨다. 나는 본디 칭찬을 너무 불편해하는 사람이지만, 나를 칭찬해주는 사람의 정성에 자주 탄복하는 편이기도 했다. 팀장님이 이곳저곳에 깔아주신 칭찬 밑밥 덕분에 부서간의 업무 협의를 하면서 혜택을 본 경험이 아주 많기도 했고,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 덕분에 일 자체를 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도 있었다.


6개월로 시작되었던 사수님의 휴직이 한 번 더 연장되고 1년을 채우게 되었다. 2인분의 일에 파묻혀 있었던 그 1년이라는 기간 동안 내가 몰랐던 사실이 있었다. 그 시간에 매몰되어 정신없이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는 나 혼자 인내심이 커서, 일 처리 하는 방식이 많이 개선되어서, 일머리가 늘어서인 줄 알았다. 멀리에서 다시 보니 나를 포기하지 못하게끔 사방에서 진을 치고 적재적소의 공대여자 교란 작전이 성공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일이건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말이다.




한참 일에 치여서 울먹이며 야간 근무와 주말 근무를 하면서 일을 쳐내고 있을 때였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했던 나와 남편은 연애 초기부터 아주 큰 위기를 맞았다. 생글생글 한참 웃고 다녀야 할 연애 초 나는 누렇고 까맣게 떠가고 있었다.


공대여자 : 오빠. 그거 기억나?
남편 : 뭐가?
공대여자 : 우리 처음 사귈 때 나 맨날 야근하고. 주말에도 일하고. 그래서 오빠가 내가 주말에 나가서 복사라도 도와줄까? 나 캐드도 도와줄 수 있어. 그랬잖아. ㅋㅋ
남편 :  맞아 그랬지. 그때 공대여자 진짜 불쌍했어. ㅠㅠ


일도 하고 연애도 했던 그때. 모든 게 불확실하고 불안한 것들 뿐이었지만 하나 딱 확실한 게 있었다. 말을 예쁘게 할 줄 아는 이 남자는 진짜구나. 사람은 위기 속에서 뜻밖의 보물을 발견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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