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 우리 집은 흡사 병동과 같다. 지난주 내내 각자에게 무슨 일,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 우리는 마치 전쟁 영화에서 부상을 당하고 실려온 병사들과 같았다. "아. 왜 이렇게 몸이 아프지?" "오빠도 그래? 나는 목이 아파. 지난주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러게. 이상하다."
끙끙 앓고 있는 우리를 관찰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매일 퇴근을 하면 나에게 "오늘 어땠어. 누가 괴롭혔어?" 하고 물어주는 남편과 달리. 나는 내가 하루를 살아냈다는 것에만 집중하느라 님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분은 어땠는지 제대로 관심을 가져다주지 못했던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 우리 집의 스트레스 총량에 대한 관리까지 오빠에게 맡긴 것 같아 눈이 번쩍 뜨였다.
아침에 일어나 티브이 시청을 잠깐 하고서는 설거지, 행주 삶기, 재활용품 정리를 했다.
2명뿐인 가족이지만 한쪽에게만 보호의 부담을 지게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상대가 편해진 만큼 그걸 놓치고 있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어릴 적 우리 집은 불균형의 집합소였다. 집안일과 우리 4남매를 양육하는 짐은 할머니에게, 가계 경제의 구멍을 매우는 짐은 엄마에게 있었다. 반면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사냥, 낚시, 등산, 수석 및 동물 박제 수집 등 다양한 취미 생활을 누렸다. 아빠는 날씨가 추워지면 자꾸 꿩, 멧돼지 따위를 잡아와서 지상 최고의 수렵꾼 인양 가족들에게 의기양양했는데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얄미웠다.
아빠는 심지어 친구들이 많고 베풀기 좋아하며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을 즐겨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 아빠가 마음껏 날아다닐 때 엄마는 점점 커져가는 구멍을 간신히 메우며 지냈다.
지금 돌이켜보니 엄마는 우리 4남매를 보살필 시간을 돈과 맞바꿔야 했고, 그것은 고스란히 엄마의 부채감으로 남아 예민함과 날카로움, 그리고 다양한 지병으로 남게 되었다. 할머니는 "이놈의 집구석" 해가면서도 본인을 보며 입 벌리고 있는 4남매를 극진히 보살폈다. 천성이 모질지 못하고 따뜻한 할머니와 엄마는 그렇게 각자의 맺힌 마음 풀길이 없었고 그렇게 본인을 소진해 나갔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고 있는 집안의 불균형이다.
일 인분의 삶은 한쪽 어깨가 무거워지면 본인이 먼저 느낀 후 반대로 짐을 옮겨지면 되는데. 이 인분 또는 삼 인분 그 이상의 삶은 내가 지고 있는 짐에 비해 상대가 훨씬 많이 지고 있더라도 금방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일 인분에서 이 인분이 된 삶이 안심과 안락은 준다면, 어깨를 가볍게 해 준다면, 상대의 무거운 어깨를 모른 채 하게 되기도 한다. 또는 내 삶 속의 균형에만 집중하고 애쓰느라 내 가족이 나 몰래 내 짐을 뒤져 가장 무거운 짐만 골라 대신 들어주고 있던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이고 지고 있으면서도 괜찮은 척하며 오히려 나를 걱정해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내 짐을 기꺼이 나 몰래 껴안아주고 있는 사랑하는 내 가족과 내 사람들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