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사치일까, 벨 훅스(bell hooks)
나의 어릴 적 기억은 6살부터 시작된다. 5살까지 언니 둘과 나를 홀로 보살펴줬던 할머니에게는 미안하지만, 시골에서 보냈던 기억은 왠지 모르게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6살 때의 기억도 특정 시점에서 시작되는데, 엄마와 아빠가 먹고 자고 일했던 식당에서의 기억이다.
지금의 나보다 많이 젊었던 그들은 딸 셋을 시골에 맡겨두고 작은 식당을 이제 막 자리 잡아가던 참이었다. 그 식당은 원래 건너편 단칸방 같은 곳에서 시작했다고 했다. 식당을 키워 조그만 내실도 만들고 저녁이 되면 그곳에 있던 상을 치워 잠자리를 만들어 몸을 뉘었다.
젊은 부부는 그렇게 일과 가정의 경계가 없는 시간을 보냈다. 한참을 그렇게 보내면서 간간이 딸들과 어머니를 보러 시골에 왔다고 했다. 그중 유난히 떨어지지 않으려 했던 막내딸을 함께 울면서 헤어지지 못했다고. 그래서 별 수 없이 함께 올라와 며칠을 식당에서 함께 먹고 자고 했다고 한다.
나의 유년기 기억은 분주한 식당의 아침에서 시작된다. 바닥을 닦는 락스 냄새, 청소하는 밀대를 피해 주방 쪽으로 도망 나오면 엄마는 비디오방에 가서 만화영화를 빌려오라고 했다.
엄마 아빠와 이모들을 따라 덩달아 나까지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 3시나 4시가 되면 모두 낮잠을 잤다. 어른들은 손님이 깔고 앉았던 방석들을 가지런히 펴놓고 그 위에 누웠다. 나머지 하나의 방석을 반으로 접은 후 머리 밑에 두고 쿨쿨 잠을 잤다.
엄마가 한 번씩 낮잠을 거르고 시내에 마실을 나가는 적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도 엄마를 따라나섰다. 그때의 내 시야는 키가 작아 어른들의 하체를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번화가로 나갈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우리 마망이도 나중에 저렇게 늘씬하고 예쁜 아가씨가 돼야 해." 나는 그 말에 새차게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그 후 몇 해가 지나 소아비만 초등학생이 된 나는 더 이상 엄마의 다정한 말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는 주로 나에게 "그만 먹어." "어쩌려고 그러니." 또는 "살 빼면 저 옷 사줄게." "언니들처럼 날씬해야 사줄 거야."라는 이야기를 했다.
집에서는 음식을 내주는 할머니와 방해하려는 엄마 사이에서 먹지도 안 먹지도 못할 괴로운 상황을 만들었다. 대부분 할머니가 듣지 못하게 속삭이며 "그만 먹어" 하는 방식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괴로워 울고 싶었다. 무엇보다 계속 뭔가가 먹고 싶어 지는 나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는데도, 씹고 있으면서도 그다음에 씹을 뭔가를 찾게 되는 내가 더 이해가 안가 너무 힘들었다.
그 뒤 중학생이 되면서 살이 키로 가자 엄마는 다시 나에게 잠시 다정해졌다. 고등학생이 되자 순식간에 다시 찌기 시작했는데도 잘 먹고 건강한 것이 축복이라는 듯 무한대의 먹을 기회를 제공해주는 엄마가 너무 낯설었다. 먹어도 혼나지 않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고3은 크게 나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최근 살이 찐 채로 친정에 다녀왔다. 며칠 뒤 엄마가 전화를 했다. "항상 긴장해야 한다." 남편에게 너무 편한 모습만 보이지 말라는 거였다. 목이 딱 막힌 듯 아팠다. 친정에 갈 때마다 부었다느니 살이 쪘다느니 빠지면 빠졌다느니 외모부터 평가하는 엄마의 행동이 관심보다는 나를 통제하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사치일까'의 저자 벨 훅스는 부모의 행동을 통해 자녀가 자기애에 대해 배운다고 말한다.
자녀는 그들의 행동으로부터 배운다. 부모가 딸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긍정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이나 다른 여성이 지닌 가치를 폄하한다면 건강한 자기애의 토대를 만들어주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엄마가 '너도 저렇게 예쁜 아가씨가 되어야 해'라고 했던 말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저자는 지금의 '나'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어야 비로소 사랑받을 자격을 얻는다고 말한다.
언젠가는 사랑을 얻게 되리라 믿었던 어린 시절, 우리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환상을 꾸며내며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모습을 바꿔 다른 사람이 되기만 하면, 저 모퉁이를 돌기만 하면 그 사랑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으며 우리는 그 모퉁이를 돌겠다고 평생 동안 노력한다.
내가 스스로를 리즈시절이라고 말하는 6살 이후, 엄마에게 충분히 사랑받는다고 느꼈던 경험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다만 작고 귀엽고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어릴 적 6살의 그 아이로 멈춰있을 뿐이었다.
엄마는 딸들의 외모가 자신의 가치와 위신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예쁘게 보이지 않는다면 곧 엄마 자신이 예쁘게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첫 생리가 시작되자 나는 수치심을 느꼈다. 화장실에서 뭔가를 은밀하게 해내야 한다는 사실이 버거웠고, 부끄러웠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나에게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생리대를 잘 버려야지. 이렇게 대충 두면 어떡해! 그리고 왜 이렇게 자주 바꾸는 거야 아깝게." 첫 생리에 대한 기억은 나에게 수치심으로 남아있다.
그때 그 끔찍한 상황에서 나를 건져준 사람은 큰언니였다. 엄마의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언니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찝찝해서 그럴 수도 있죠." 그 순간만큼은 언니에게 어떤 비밀도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고 뭐라도 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는 그 후 조금 더 잔소리를 보탰던 것도 같고 말없이 갔던 것도 같다. 다만 확실한 것은 뭘 잘 모르는 엄마에게 맞설 수 있는 언니와 나 사이의 조그만 연대가 생겼다는 것이다.
큰언니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당시 거들어줬던 그 한마디는 지금도 나에게 '수치스러운 현상'에 대한 첫 긍정적인 지지로 남아있다.
스스로 자신의 살을 사랑할수록 다른 사람 역시 그 너그러움을 축복할 것이다. 여성의 몸을 사랑함으로써 우리는 그것을 토대로 자신을 향한 더 깊은 관계를, 마음과 몸과 정신을 잇는 사랑의 관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큰언니와 나 그리고 나의 여자 조카를 잇는 든든한 연대를 상상해본다. 더 나아가 조카의 첫 생리 파티에서 나는 어떤 메시지를 담아 어떤 편지를 내밀게 될까. 그리고 그녀가 긴 시간 후에 그날에 대해 어떤 모양의 기억을 떠올릴까. 누군가 나에게 보여준 든든한 연대가 뜻밖의 나비효과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