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혜원

사루비아 꿀 몰래 먹기

아홉 살 인생

by mamang
출처 : 경기도농업기술원




혜원은 1학년의 시작을 친구 수정과 주로 보냈다. 키가 비슷한 둘은 서로에게 최초의 짝꿍이었다. 수정은 까맣고 머리가 길었다. 웃는 모습이 예뻤고 공기놀이를 무척 잘했다. 수정은 매일 머리를 예쁘게 땋고 왔다. 수정의 길고 예쁜 머리가 부러웠던 혜원은 엄마가 매일 아침 묶어주시느냐고 물었다. 수정은 이모가 묶어줬다고 말했고, 혜원은 이모랑 같이 사냐고 다시 물었다. 수정은 “우리 집은 엄청나게 커서 같이 사는 언니들하고 동생들이 아주 많아.” 하고 답했다. 그들은 모두 엄마 아빠가 없거나 따로 사는 아이들이라고 했는데, 그 어린이들을 여러 명의 이모가 보살펴준다고 했다. 한 명의 이모가 어린이 다섯 명을 챙겨주는 곳이라고도 덧붙였다.

혜원은 당황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살지 않는 친구를 만난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혜원은 수정이 말해준 이야기만큼 깜짝 놀랄만한 자신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고민했다. 혜원은 태어나서 처음 친구에게 똥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혜원은 2교시가 끝나면 나눠주는 우유를 먹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다. 이상하게도 우유만 먹으면 배가 아파지는데, 얼마 전에는 화장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엉덩이에서 똥이 나올 뻔했다고 했다. 누가 똥을 싸면 애들이 놀리려고 화장실 밖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놀리는 바람에 화장실에 갈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선생님들만 가는 화장실에 몰래 갔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옷에 똥을 쌀 뻔했고 여럿 난처해질 뻔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비밀을 꼭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들은 새끼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그들은 자주 교실을 함께 나섰다. 수정은 그의 큰 집으로, 혜원은 엄마의 식당으로 가는 길이었다. 둘은 학교의 정문을 나서기 전 동그랗고 큰 화단을 만났다. 그들은 화단 주변을 괜히 빙빙 돌았다. 화단 앞에는 교장 선생님이 가져다놓은 네모난 화분들이 놓여있었다. 화분에는 불꽃처럼 생긴 사루비아와 칠면조의 늘어진 턱살처럼 생긴 맨드라미가 가득 피어있었다. 수정이가 불꽃처럼 생긴 꽃 하나를 쏙 뽑아 들고 꽁지를 쪽쪽 빨아먹었다. 혜원은 수정의 행동에 어리둥절했다. 꽃을 빨아먹는 수정이 이상해 보였다. “너도 먹어봐.” 수정이 꽃 하나를 새로 뽑아 혜원에게 내밀었다. 혜원은 수정을 따라 꽃을 입에 가져가 맛보았다. 꿀에 물을 섞은 맛 같았고 식혜 맛 같기도 했다. 수정은 눈이 동그래진 혜원에게 꽃을 하나 더 내밀었다. 그들은 한참을 그곳에 서서 꽃을 먹다가 양손에 몇 개씩 더 쥐고는 집으로 향했다.


혜원과 달리 담임 선생님에게는 수정의 비밀을 지켜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른 반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수정의 집에 사는 아이들은 일 년에 몇 명씩 이 학교로 배정받아 온다고 했다. 각 반에 한 명씩 골고루 배정한다고 했다. 선생님들은 우유 신청서, 급식비 고지서 등을 나눠주며 숨김없이 수정의 상황을 친구들에게 알렸다. 부모의 유무와 직업을 친구들에게 모두 공유해야 했던 때였다. 혜원에게 수정의 비밀 아닌 비밀이 점점 버거워졌다. 수정의 다른 환경이 친구들 사이에도 당황스럽게 여겨지는 듯했고, 수정과 변함없이 친하게 지내는 것이 마치 다른 친구들과의 우정을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점차 수정과 따로 집에 가는 날이 늘었다. 혜원은 문구점에 들려야 한다거나, 4학년인 작은 언니를 기다려야 한다는 핑계를 둘러댔다. 수정은 점차 혜원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수정은 같은 집에 사는 친구들과 집에 가는 날이 늘었다. 혜원과 수정은 이제 함께 화장실에 가지도 비밀을 공유하지도 않는다. 혜원은 서로 매우 놀랄 것 없는 비슷한 환경 속의 친구들과 우정을 쌓아갔다.


혜원의 엄마 순자는 혜원이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머리를 기를 수 없게 했다. 순자는 발을 동동 구르는 혜원을 미용실로 끌고 갔다. 혜원을 미용실 의자에 억지로 앉힌 순자는 급하게 식당으로 돌아갔다. 혜원은 의자에 앉아 여전히 울고 있었다. 미용실 이모가 의자의 패달을 꾹꾹 눌러 키가 작은 혜원을 눈높이까지 올려 앉히고 말했다. “엄마가 바빠서 머리를 묶어줄 수가 없는가 보다.” 혜원은 이모가 따줬다는 수정의 예쁜 머리를 떠올리며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머리를 매번 하나로만 질끈 묶어주던 엄마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바쁘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혜원은 그 후 머리가 어깨에 닿을라치면 미용실로 끌려가기를 반복했다. 매번 엉엉 울며 의자에 앉아있었다. 혜원이 의자에 앉아 울 때마다 미용실 이모의 남편은 손님이 앉는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놀려댔다. “나는 네 엄마가 왜 머리를 자르게 하는지 알지.” 혜원은 울다가 말고 코를 훌쩍 마시며 물었다. “왜 그러는데요?” 아저씨는 말했다. “사실 너의 진짜 엄마는 저기 광주천 다리 밑에서 붕어빵 장사를 해. 진짜 엄마가 아니니까 머리도 기르지 못하게 하는 거지. 감겨주고 말려주고 묶어주기 귀찮으니까. 이건 비밀인데 혜원이 네가 너무 우니까 별수 없이 말해주는 거야.” 툭툭 잘려 나가는 머리를 보며 혜원은 더 크게 울었다. 잠자코 단발로 지내지 않고 계속 불평한다면 버림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저씨의 이야기는 효과가 있었고 그 후 혜원은 머리카락을 잘리면서도 울지 않게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며 수정과 다른 반이 된 혜원은 올해도 화단에 가득 핀 사루비아를 보았다. 혜원은 동그란 화단을 빙 둘러 걷다가 사루비아 꽃을 하나 따서 꽁지를 입에 넣는다. 여전히 단맛이 났다. 두 개, 세 개를 따서 한꺼번에 입에 넣고 쪽쪽 빨아먹는다. 며칠 전 교장 선생님은 사루비아 꿀을 먹는 친구들에게 경고했다. 농약을 뿌렸으니 절대 먹지 말고 꽃을 망치지도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혜원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수정이도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바닥에는 누가 이미 먹고 버려놓은 불꽃 모양 사루비아가 있다. 잔뜩 밟혀 납작해졌지만, 여전히 새빨간 꽃이 9살의 어설픈 죄책감과 함께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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