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혜원

단골 카페 사장님을 기다리는 마음

일상을 지키는 힘

by mamang


아침 출근 전 매일 카페에 들른다. 거의 매일 첫 손님으로 카페에 도착하는 나는 요즘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두리번거리며 사장님을 찾는다. 카페 문을 열고 커피를 내리는 일은 카페 직원분이, 주문받는 일은 키오스트가 하는데 사장님을 찾는 이유는 그분을 못 뵌 지 세 달이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2년 전, 사장님을 처음 카페에서 뵈었을 때만 해도 손님일거라 생각했다. 그분은 내가 매일 앉는 테이블 바로 옆자리에 앉는 분이셨다. 우리는 매주 월요일마다 나란히 앉아 각자의 커피를 마셨다. 하얀 머리의 할아버지는 신문을 읽으시거나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셨다. 나는 책을 읽거나 일기를 썼다.


한 번은 버스에서 내려 카페까지 걸어가는 경사로를 걸어 올라가고 계시는 어르신을 발견했다. 항상 앉아계시는 모습만 봐서 몰랐던 지팡이를 짚고 반걸음씩 힘들게 내딛는 모습이었다. 지팡이가 급한 마음을 따라오지 못했기에 뒤따라오는 다리를 재촉하며 걷고 계셨다. 뒤쪽에서 들리는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에 더 마음이 급해지시는 듯했다. 나는 발소리와 걷는 속도를 줄였다. 이후 천천히 어르신의 뒤를 따라갔다. 가벼운 유리문을 무겁게 여는 모습과 털썩 의자에 드디어 주저앉으시는 모습에 하루를 여는 아침 루틴을 위해 어르신이 얼마나 애쓰고 계시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뒤로 날씨가 많이 추워졌고, 몇 주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시다가 날이 따뜻해지는 초봄이 되어 카페에 나오셨다. 나는 인사도 한 번 제대로 나누지 못했지만 오랜만에 뵙는 어르신의 모습에 반가웠다.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가방을 풀었다.


“오셨습니까.” 처음 어르신이 말을 걸어오셨다. 오랜만에 뵙는다는 나의 말에 날이 추우면 아무래도 밖에 나오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바닥이 미끄러워 위험하고, 몸도 더 힘들어진다고 하셨다. 나는 그분이 80대이며, 이 카페의 사장님이라는 소개를 듣고 깜짝 놀랐다. 나이 많은 어르신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을 거라는 나의 생각과 그 어르신들은 커피에 대해 잘 알지 못할 거라는 편견이 부끄러웠다. “여기에서는 모카커피를 드세요. 그게 원가가 젤로 비쌉니다. 허허.” 하며 손님에게 영업비밀을 알려주시는 사장님의 해사한 미소가 좋았다.


그 뒤 월요일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할아버지 사장님은 내가 사서 마시는 커피보다 2배는 비싼 콜드브루 커피가 담긴 플라스틱 통을 건네주며 사무실에서 마시라고 하시거나. 아침 식사용으로 사서 드신다는 다른 곳에서 파는 빵을(이 카페에서도 빵을 파는데도) 나에게 나눠주시고, 본인 집에 소장하고 계시던 책들을 들고 오셔서 소개해주시거나 빌려주시고, 명절 선물로 비누를 챙겨주시고, 시아버님이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뇌경색으로 3번 쓰러지셨던 본인의 경험을 말씀해 주셨다.


한 번은 드론 자격증을 따기 위한 인터넷 수강 신청을 도와드린 적이 있었는데, 30대인 내가 봐도 회원가입, 교육 신청 과정 자체가 너무 복잡해서 할아버지 사장님의 개인정보를 수없이 여쭤보고 입력하고 또다시 입력하느라 성함과 주소,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를 거의 외울 지경이었다.


이외에도 할아버지 사장님과 나는 할 말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각자 커피를 마시며 할 일에 집중하는 느슨한 월요일들을 나눴다. 사장님은 환절기가 되면 2주 또는 한 달에 한 번 겨우 카페에 나오시는 일이 많았고, 나는 그게 겨울을 나는 사장님의 방식이라는 생각에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2년을 보내던 지난 가을, 사장님의 모습이 2주, 한 달을 지나 세 달째 보이지 않았다. 한 달 반쯤이 지나서야 카페 매니저분에게 사장님께 혹시 무슨 일이 있으신지 여쭤봤다. 조금 편찮으시기는 하지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그 뒤로 한 달반이 더 지나도 할아버지 사장님은 카페에 나오지 않으신다. 올해 초 공유해드릴 기사가 있어 사장님의 번호를 여쭤보았던 터라 핸드폰 번호는 가지고 있어 카톡 메시지를 보내볼까 고민하다가 보내질 못하고 있다. 몸이 크게 좋지 않으셔서 메시지를 보지 못하시면 어쩌나, 전화를 드려볼까 하다가 가족분이 받으시면 나를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단골손님인데 사장님이 걱정되어 연락을 드렸다고 해야 하나. 주저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만 보내고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저자 아툴 가완디는 나이 든다는 것을 이렇게 말한다. "아주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경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고 말한다. 죽음에 이르기 전에 일어나는 일들, 다시 말해 청력, 기억력, 친구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 방식을 잃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80대 할아버지 사장님의 일상을 옆테이블에서 지켜본 나는 안다. 그에게 모닝 모카커피 한 잔과 단골 손님과 나누는 인사는 미끄러져 크게 다칠 위험을 감수하고도 바깥으로 나와 꿋꿋하게 지키고자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이 더 크게 떠오른다. 도망치기엔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산사태 같은 노화 앞에 우뚝 선 채로 재난을 마주한 용감한 이들 같다.


한 걸음이 아닌 겨우 반걸음씩 힘겹게 지팡이를 짚고 걷던 사장님의 뒷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매주 한 번씩 카페에 나와 의자를 정리하고, 정리되지 않은 테이블을 정리하던 사장님은 지난 추석에는 카페 직원들을 위해 손수 살균 비누를 사들고 오셔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뿌듯해하셨다. 나는 그 옆에서 커피를 마시고 일기를 쓰고 있다가 직원도 아니면서 비누 3개를 선물로 받았다. “매일 보니까 우리 식구 같아요.” 하시던 사장님의 말씀을 기억한다. 이제 곧 설날인데 설날 선물도 염치없이 받고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아직 날이 춥지만 사장님이 따뜻한 겨울 중절모를 쓰고 지팡이를 찬찬히 짚어가며 오랜만에 카페에 들어오시는 날을 기다린다. 그럼 나는 사장님 고정석 옆, 나의 고정석에 앉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커피를 마시다가 “오셨습니까.” 하며 반겨드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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