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KTX를 탔다. 자리를 찾아 객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였다. 중년 여자분이 기차가 출발할까 봐 안전부절 못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중년 여성으로 보이는 이가 기차 타는 걸 배웅하러 기차에 올라탄 듯했다. 그녀는 "언니 나 기차 출발할까 봐. 내릴게." 하며 급하게 내렸고, 기차에 자리를 잡은 이는 "잉 조심히 가잉" 하고 대답했다.
나는 건너편 좌석에 짐을 풀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왼편에 누군가 계속 서있는 것이 보여 고개를 돌렸다. 아까 배웅을 받고 자리에 앉았던 중년 여성이 선 채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서둘러 내렸던 여성이 기차밖에 서있었다. 기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언능 가랑게. 언능 가." 기차 밖에선 기차 안의 말이 들리지 않겠지만. 기차 안 그녀는 계속 손을 휘휘 저으며 어서 가라는 말을 반복했다. 기차 밖의 여성은 애먼 기차의 꼬리 편을 향해 멀리 시선을 두었다가 "언능 가랑게." 하며 엉거주춤 서있는 기차 안 여성을 향해 끄덕거리기를 반복했다.
당부할 말이 많은지 방금 헤어졌으면서도 전화를 걸어 기차 안 그녀에게 이것저것을 계속 당부했고 그녀는 "알았은께 언능 가랑께. 조심히 가잉." 하고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그렇게 8분 여가 흐르고 기차가 출발했다.
창밖의 그녀가 손을 흔들었다. 기차안 그녀도 손을 흔들며 "언능 가잉." 하고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내가 근래에 본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내가 잊고 살던 귀한 마음을 그분들에게서 발견했다. 작별 인사를 건네고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던 아쉽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그렇고. 별일 없을 줄 알면서도 길을 함께 따라나와 끝까지 배웅하는 마음이 그렇다.
예전에 처음 KTX가 생겼을 때 초반에 아주 잠시. 객실 안쪽까지 여럿이서 배웅하는 게 허락되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누군가를 배웅하러 나갔던 나의 가족들이 객실안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함께 잡아주고 챙겨주지 못하게 된 일에 시무룩해하던 그날의 기억이 그랬다.
각자의 집에서 최대한 공평한 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약속을 잡거나, 기차타는 것을 배웅하러가도 기차역까지만 함께 가줘도 고마운 요즘의 나는 오랫동안 이런 마음을 타인에게는 물론이고 나에게도 기대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