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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Feb 03. 2023

할머니의 방



설날 연휴를 이틀 앞두고 친정에 도착했다. 비좁은 동생방을 썼던 지난 명절과 달리 이번엔 넓은 할머니 방에 이불이 깔려 있었다. 방의 주인은 집 어디에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나와 남편은 긴 이동에 지쳐 깊은 잠을 잤다. 다음 날 늦은 아침 눈을 떴고, 할머니 없는 할머니 방에서 잠들었다는 것이 실감 났다.


할머니는 작년 가을, 집 앞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1톤 트럭 운전자가 할머니를 보지 못하고 할머니를 차로 친 것이다. 할머니의 왼쪽 종아리, 허벅지, 골반뼈가 부러졌다. 90대인 할머니는 고령의 나이로 인해 전신 마취를 할 수 없었다. 때문에 부분마취만으로 살을 열어 뼈를 맞추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할머니의 부러졌던 뼈와 상처는 점차 회복했고, 할머니는 다시 걷는 일을 위한 재활에 열심이었다. 그 의욕이 무색할 만큼 할머니는 단 며칠의 재활운동도 견디지 못했는데. 재활 중 2번의 저혈압 쇼크를 겪었고, 그때마다 중환자실에서 일주일 이상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할머니는 이후 재활 운동을 거부했다. 할머니는 이후 침대에 누워 생활하고 있다. 사고 이후 3달이 지났고, 대형 병원에서는 할머니를 위한 더 이상 가능한 처치가 없다고 했다. 아빠는 할머니는 옮겨서 모실 병원을 수소문했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요양병원으로 할머니를 모셨다.


자유롭게 면회가 가능했던 대형병원과 달리 요양병원은 일주일에 딱 한 번의 면회만 가능했다. 나와 배우자는 그날을 맞추기 위해 하루 연차를 내고 집에 온 것이다. 집에서 면회 시간을 기다리는데 엄마의 핸드폰이 울렸다. 할머니가 걸어온 전화였다. 할머니는 귀속에서 덜커덩 덜커덩 소리가 난다며 귀이개를 가지고 와달라고 했다. 쇠로 된 아주 작은 숟가락 모양의 귀이개와 할머니를 위한 간식거리를 챙겨 집을 나섰다. 아빠, 엄마, 나 그리고 할머니의 손주 사위(나의 배우자) 이렇게 넷이었다.


병원에는 환자와의 면회를 위한 공간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이 있는 15층으로 올라갔다. 복도나 통로 비슷한 곳에 어정쩡하게 서있으니 간호사 2명이 침대를 밀고 왔다. 그 침대에 할머니가 누워있었다. “할머니. 나 왔어.” 나는 한 손으로는 할머니의 이마와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른 한 손으로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인사를 건넸다. 할머니는 침대 안으로 점점 꺼져가고 있는 것 같아 보였고, 이전보다 말라 보였다. 주기적으로 뽀글뽀글 파마를 하고 정성스럽게 동백기름을 머리에 바르고 빗질을 하던 할머니는 대충 잘린 더벅머리를 하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어색한 머리를 손으로 계속 쓸어 넘기며 할머니를 알아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 노인이 나의 할머니가 맞을까 생각하는 중에 "오야. 왔냐잉." 하며 나의 손을 꽉 움켜쥐는 할머니의 완력에 안도했다.


"할머니 귀 봐드려야지." 배우자가 말했다. 나는 핸드폰의 손전등을 켜고 귀속을 비춰봤다. 납작하고 큰 귀지 덩어리가 있었다. 쇠로 된 귀이개를 이용해 몇 번 방향을 달리하며 귀속을 뒤져보니 새끼손톱만 한 넓적하고 큰 귀지가 딸려 나왔다. “할머니. 시원해? 이~만한 게 귀에서 나왔네? 할머니 무지 답답했겠다.” “오메. 고맙다잉." 할머니의 반대쪽 귀에서는 새끼손톱보다 더 큰 귀지가 나왔다. 마찬가지로 할머니에게 보여주었다. “고맙다잉. 그것이 고로코롬 덜그덕 거리드만.” 한참 큰 귀지를 할머니에게 보여주며 칭찬을 받고 있는데 간호사가 다가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면회 시간이 다 끝났습니다. 다음 보호자분들도 기다리고 계셔서요.” 면회 시간이 10분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깜빡 잊고 있었다. 할머니의 양쪽 귀지만 파다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누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나는 왼손에 할머니의 귀지를 꽉 쥐고 오른손으로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할머니 나 또 올게?” 할머니는 조심히 들어가라고 말하며 손을 휘휘 저었고, 간호사들이 끄는 침대에 무력하게 실려갔다.


우리 넷과 할머니의 귀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에서 1층으로 내려갔다. 병원 안 어디에도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아 나는 할머니의 귀지를 그대로 꼭 쥐고 건물 바깥으로 나왔다. “저기 있다.” 엄마가 담배꽁초 통을 가리켰다. 나는 할머니의 귀지를 담배꽁초 사이에 던졌고 손은 털지 않았다. “즈그 할머니라고 더럽지는 않은갑서.” 뒤에서 엄마가 사위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집에 돌아온 나는 그대로 할머니 방으로 들어가 오랜 서랍과 옷장을 하나씩 열어봤다. 작은 서랍 안에서는 할머니의 나이 많은 손목시계가 잘못된 시간을 가리킨 채 멈춰 있었고, 옷장 안에는 할머니가 맵시나게 소화하던 수십 년된 코트와 신문지를 곱게 접어 모양을 잡아놓은 흰색 고무신이 있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있는 반갑고 익숙한 물건들을 이곳에 두고, 귀를 파고 싶으면 일주일은 기다려야 하는 낯선 침대 속에 파묻힌 할머니가 자꾸 생각났다.


혼자 있고 싶은 시간에도 병원에서 엮어준 낯선 룸메이트들과 방을 공유해야 하는 할머니의 시끄럽고 불편한 시간이 상상되자 마음이 참을 수 없이 불편해졌다. 남들은 귓속이 가려우면 새끼손가락으로라도 후빌 텐데. 할머니의 손가락은 일을 쉬어본 일이 없어 귓속에 넣기엔 너무 두꺼워져버렸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할머니에게 목숨을 빚진 나는 귀지 한 번 파 준 일로 이렇게 뿌듯해하며 글을 짓고 있고. 전화 속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나면 내 마음이 며칠 동안 아플까 무서워 전화하는 일은 또 미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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