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심환이 필요해

오리엔테이션이 너무 긴장돼요(공대여자 말고 그냥 나)

by mamang


수능시험날, 처음 청심환이라는 것을 먹게되었다. 어른들이 큰 걱정이 있을 때 머리를 싸매고 먹었던 청심환을 내가 처음 먹게 되었던 그때, 나는 내가 정말 어른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이제 어른들의 약을 먹어야 할 만큼 크고 어려운 일을 감당해야 할 정도로 성장했다랄까.


내가 두번째로 청심환을 먹게되었던 날은 대학교 신입 오리엔테이션 당일 아침이었다.


20살 공대 여자 : 할무니이 ~ 청심환 주세요.
70대 할머니 : 오야. 저기 찬장에 있다. 어디 가게?
20살 공대여자 : 학교가. 오늘 처음 친구들 보는 날이야.
70대 할머니 : 근디 시험 보는 것도 아닌디 이것은 뭣 헌디?
20살 공대여자 : 그냥. 필요할 거 같아.


그렇게 주섬주섬 나의 수호신을 챙겨 나왔고 버스를 타기 전에 꿀꺽꿀꺽 넘겼다.




나는 남자 울렁증이 심했다. 여중과 여고를 졸업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불특정(일면식이 없는) 다수의 남자들 앞을 지나가야 할 때에는 자기들끼리 수군대면서 내 험담을 하는 것 같고 괜히 불편한 마음이 들어서 많이 움츠러들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방학 때가 되면 "이번 방학 때는 살을 쪽 빼서 친구들을 놀라게 해 줘야지." 했다. 4.2킬로 아가로 태어난 이후 키가 가장 많이 자랐던 중2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부어있는(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상태였는데 남자애들이 뚱뚱하다고 참 많이 놀려댔다.


그럴 때면 나는 상처 받지 않은 척하면서 그놈들을 잡으러 남자 화장실도 마다하지 않고 쫓아 들어가 악의 무리들을 처단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여중, 여고로 연이어 가보니 서로가 각자의 몸무게를 감당하느라 바빴는지 내 덩치와 무게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나는 그게 참 좋았다.


다시 스무살의 내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오리엔테이션을 앞두고 내가 가장 불편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대학 가면 살 빠진다"는 엄마의 세뇌가 현실에서는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분명 짜잔! 하고 대학만 붙으면 살이 쪽 빠진다고 했는데. 아직 살이 빠지지 않아 손가락, 발가락까지 뚱뚱한 채로 새 친구들을 만나야한다니, 그것도 다수의 남자들을. 이렇게 끔찍한 일은 치과에 가는 일 이후 처음이었다.




이런저런 잡념에 빠져 걱정을 한 바구니이고 지고 오리엔테이션 장소에 도착했다. 쾌쾌하고 습기가 많은 오래된 건물 안에 있는 추운 강의실이었다. 'TV에서 보는 대학교 강의실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도 들어 잘못 찾아온 척하고 다시 돌아 나가고 싶기도 했다.


교단 쪽에 서있는 껄렁한 선배를 중심으로 몇몇 선배들이 속속 도착하는 신입생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내 이름을 묻는 선배에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 후 애매하게 흩어져 있는 무리에 합류했다.


어색한 무리에 끼어 조금 기다려보니 진짜 여학생, 진짜 남학생들이 줄줄이 들어와 본인의 이름을 이야기했다. 개중에 이름만 여자인 남학생은 "야, 여자가 한 명 더 들어온 줄 알았잖아!" 하는 선배들의 놀림에 얼굴이 빨개져서 액체처럼 조용히 흘러들어와 무리에 흡수되었다.


딱 봐도 여학생들이 아주 소수였다.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가죽점퍼를 입고 온 야무져 보이는 아이, 머리가 길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아이, 키가 크고 눈이 동그란 아이 등 쭉 훑어보았다. 대충 봐도 내가 외모로 가장 쳐졌고, 무엇보다 뚱뚱한 여학생은 나뿐인 것 같아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몇 년이 지난 후, 저 아이들과 나는 어떤 사이가 될까.




당시만 해도 오리엔테이션을 하기 전에 여러 조로 학생들을 나눈 후 각 조의 이름과 구호를 정하고 마지막에는 그 조만의 깃발을 손수 만들었다. 하루 종일 그걸 들고 캠퍼스에 숨어있는 장소들을 찾아다니면서 주어진 미션이나 게임을 해내는 것이 그날의 과제였다.

60명 정원이었던 토목공학과에는 여학생이 딱 5명이었는데, 그녀들은 알뜰하게 5개조에 딱 한 명씩 배치되었다. 우리는 각 조별로 둥글게 원을 그려 앉았다. 깃발을 꾸미고 무언가를 그리는 미션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같은 조의 남학생들은 '홍일점'인 나에게 글씨 잘 쓰겠다, 그림 잘 그리겠다며 깃발을 즐겁게 꾸며보라고 독려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미술은 발가락으로 그리는 정도고, 글씨는 나도 잘 알아보기 힘든 정도라 친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입으로만 참여하는 뻔뻔함을 시연했다.


20살 공대여자 : 내가 아이디어 내면 어떨까? 근데 말이야 나는 그림이나 글씨는 진짜 별로라서.... 미안해....
20살 남사친들 : 아! 오오 그래! 무슨 아이디어?
20살 공대여자 :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토.마.토.
20살 남사친들 : 오 ~ 그게 무슨 뜻이야?
20살 공대여자 : (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토하고. 마시고. 토하고.
20살 남사친들 : 어?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캠퍼스 라이프의 환상은 술에 취해 좋아하는 선배에게 고백을 해보고, 잔디밭에 앉아 대낮부터 막걸리에 파전을 먹고, 저녁에는 맥주잔을 부딪히며 미래에 대해 논하는 거였다.


정말로 토마토는 내가 꿈꾸던 캠퍼스 라이프였다.

(단, 숙취가 망치로 머리를 깨부수는 것 같고 종일 변기를 잡고 살려주세요, 다시는 안 마시겠습니다. 머리 좀 안 아프게 해 주세요. 하며 손이 발이 되게 변기에게 빌어야 하며, 나중에는 쓸개즙까지 토해내야 하는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정말 어른들의 세계인 줄 알았다면 토마토라는 환상은 진즉에 버렸을 텐데. 역시 뭐든 겪어봐야야 안다는 말은 정말 진리다.)





오리엔테이션 각 지점에서는 여러 명의 오빠들 사이에 한두 명의 여자 선배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 선배들은 하나같이 꽃같이 예쁘고 엄마같이 인자했다. 그런 언니들이 여자 후배들에게 했던 공통적인 질문과 격려가 있었다.

"어쩌다가 네가 이곳에 오게 된 거니?"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언니, 그럼 제가 너무 불안하잖아요.)

"힘든 일 있으면 언니들한테 꼭 연락해. 번호 저장하고." (이 말에는 또 이런 생각을 했다. 언니, 그럼 제가 너무 무섭잖아요.)


오리엔테이션 게임을 모두 마치고 공대 후문 앞 식당에 갔다.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좌식 식당이었다.


테이블당 구성은 소주 2병, 주물럭 4인분이었다. 물론 주류는 무한대 주문 가능이었으나 단, 사이다는 원하는 테이블만 추가할 수 있었다. 남자 동기들은 추가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여학생이 있는 테이블에 통성명을 하러 온 예비역 선배가 "사이다 시켜줄까?" 하고 생색을 내면서 음료를 시켜줬다.(지돈도 아니면서)


그 예비역 선배는 테이블 위에 보란 듯이 놓여있는 오프너가 눈에 보이지 않는지 갑자기 숟가락을 집어 들고 "뽕"(이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여) 소리를 내며 뚜껑을 땄다.

사람은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했던가. 나는 이 충격적인 포포먼스를 눈앞에서 처음 본 그날 토목과를 졸업하기 전에 다른 건 모르겠고 저 기술은 꼭 익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통통한 손가락을 스트레칭하며 선배에게 다가갔다. "선배님. 저도 알려주세요."


그 이후 나는 열심히 그 기술을 배웠고, 친구들은 이런 걸 왜 열심히 연습하냐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몇개월이 지났을 무렵, 시험을 마친 어느 대낮이었다. 시험을 마쳐 개운한 마음이었던 우리는 각자의 가방에 병맥주 몰래 숨겨 노래방에 갔다. 경쟁적으로 노래를 주루룩 예약하고 있던 우리는 뒤늦게 오프너의 부재를 생각해냈다. 친구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맥주는 못 먹겠다. 신곡이나 연습하자." 나는 친구의 말에 대답 대신 조용히 신고 있던 부츠를 벗었다. 가방에서 맥주병 하나를 꺼내 그 뚜껑을 노래방 테이블에 걸쳐놓았고, 부츠 굽으로 내리쳐 "뽕"하고 땄다. 그때 친구들이 나에게 보냈던 존경의 눈빛은 눈이 눈부시게 빛나는 것 그 이상이었다. 역시 사람은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주 가까운 미래에, 나의 방정맞은 손은 '그 기술'을 회사 회식에서 아주 화려하게 활용하게 된다. 시킬 때, 시키지 않을 때에도 항상 열심히 뽕뽕 맥주병을 따버리는 바람에 소맥을 말 때는 꼭 사람들이 나를 찾고는 했다. 고 한다.


분명 시작은 청심환이었는데 마무리는 여명 808이 된 모순적인 여자의 공대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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